디아나 담라우 “밤의여왕 내려놓았지만 새로운 여왕들의 아리아로 승부”

6년 만에 내한 ‘왕관 아래 놓인 영혼과 아픔’ 노래
“어렸을 때 백설공주의 못된 계모 캐릭터에 더 끌려”
목소리 보호 위해 15년째 ‘마술피리’ 출연은 자제

박정옥 기자 승인 2023.04.25 09:34 | 최종 수정 2023.04.25 12:37 의견 0
‘레전드 밤의여왕’으로 통하는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디아나 담라우가 오는 5월 18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두 번째 내한공연을 연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어렸을 때부터 백설공주보다는 공주를 괴롭히는 못된 계모 캐릭터에 더 끌렸어요. 이때 이미 ‘밤의 여왕’이 될 준비가 되어있었나 봐요. 나중에 오페라 가수로 데뷔해 노래하고 연기하면서, 여왕이 왜 그렇게 화를 내고 심술을 부렸는지 제가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6년 만에 다시 한국을 방문하는 디아나 담라우는 이 시대 최고의 ‘밤의 여왕’답게 여왕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오는 5월 18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두 번째 내한공연을 앞두고 25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2006년 유럽 최고의 음악축제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모차르트 ‘마술피리’의 여왕 역을 맡아 세계적 스타가 됐다. 남녀 주인공인 타미노와 파미나에 비해 조연이지만 ‘지옥의 복수심이 내 마음을 불타게 하네’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의 폭풍고음을 뽐내며 이름을 알렸다. 강렬한 등장이었다.

담라우는 지금까지 스무 가지 정도의 ‘마술피리’ 버전에 출연해 매번 다른 모습의 여왕을 선보였다. 가장 많이 맡은 배역이다. 첫 여왕 역을 맡았던 시절을 떠올렸다.

“1996년 뷔르츠부르크에서 데뷔했을 때가 생각나요. 6m 높이의 달 세트에 매달려 있었어요. 후반부 20분이 지난 뒤 아리아를 부를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죠. 정말 힘들었어요. 하지만 공중에 떠있는 상태에서도 차분하게 명상하고 모차르트에게 기도했어요. 결국엔 달을 뚫고 나오며 멋지게 노래했어요.”

환상적인 프로덕션이었고 거대한 스펙터클을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코벤트 가든에서 공연했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 데이비드 맥비카 프로덕션 버전이라고 밝혔다. 그는 “의상, 메이크업, 여인들, 조명, 대사, 드라마 등 모든 것이 밤의 여왕에게 딱 맞았다”고 설명했다. 이 공연은 현재 유튜브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담라우는 2007~2008 시즌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공연에서 밤의 여왕과 함께 파미나 공주를 동시에 연기해 화제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이처럼 ‘영원한 레전드’로 통하지만 2008년 이후 더 이상 밤의 여왕을 맡지 않고 있다. 성대에 큰 무리를 줄 수 있는 작품인 만큼 오래도록 좋은 목소리를 지키며 활동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제 생각에 밤의 여왕은 일정 기간 동안만 맡아야 하는 역할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목소리는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벨칸토에서 주요 역할로 설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젠 올림픽에서 100m 달리기와 같은 극한의 도전적인 역할을 그만두고 미래와 성장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한국 투어의 테마는 ‘오페라의 왕과 여왕(Kings and Queens of Opera)’이다. 2017년 첫 내한 때와 마찬가지로 남편인 바리톤 니콜라 테스테가 이번에도 함께 한다. 유명 오페라 속에 들어 있는 왕과 여왕의 노래로만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아이디어가 좋다. 비록 밤의 여왕은 내려놓았지만 새로운 여왕들에게 집중하는 셈이다. 공연에서는 불가리아 출신 지휘자 파벨 발레프가 지휘봉을 잡고, KBS교향악단이 연주를 맡는다.

2020년 발매한 앨범 ‘튜더 퀸즈(튜더 왕가의 여왕들)’가 모티브가 됐다. 이 음반에는 가에타노 도니제티의 여왕 3부작인 ‘안나 볼레나’ ‘마리아 스투아르다’ ‘로베르토 데브뢰’의 대표곡이 수록돼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저희 부부가 무대에서 맡았던 배역들도 오직 왕과 여왕에 관해 노래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영감을 주었어요. 하지만 정말 흥미로운 것은 왕관 뒤에서 또는 왕관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여왕과 왕도 우리처럼 자신의 감정이나 지극히 평범하고 사적인 문제로 고민해요. 어떤 작곡가들은 왕관의 화려함과 외로움 사이에서 그들의 영혼과 아픔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레전드 밤의여왕’으로 통하는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디아나 담라우가 오는 5월 18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두 번째 내한공연을 연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공연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벨칸토 오페라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안나 볼레나’에 나오는 ‘젊은 날에는 순진했었지...아무도 나의 슬픔을 들여다보지 못해(Come innocente giovane...Non v´ha sguardo’, ‘마리아 스투아르다’ 중 스투아르다와 탈보트의 듀엣곡 ‘오 귀여운 나의 탈보트!(Oh mio buon Talbot!)’ 등을 부른다. 빈첸조 벨리니의 ‘노르마’ 중 ‘정결한 여신이여(Casta Diva)’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담라우는 끊임없이 새로운 역할을 선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카프리치오’에서 백작부인 역을 맡았고, 올해 말에는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에서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박쥐’의 로잘린데 역으로 데뷔한다.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컨디션이 최근 맡고 있는 역할과 얼마나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인생은 우리가 성장하고 발전하는 여러 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저는 흐름에 따라, 그리고 제 마음이 준비된 것에 따라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기간 동안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앞으로는 모국어로 노래하고 연기하며 기쁨을 선사하고 싶은 슈트라우스 레퍼토리에 더 중점을 두고자 합니다. 그것과 함께 리트(독일 예술가곡), 오페레타, 모차르트와 벨칸토 역할은 제 레퍼토리에 계속 남아있을 것입니다.”

지난 한국 방문에서의 기분 좋은 추억도 털어 놓았다. 그는 “서울도 즐거웠고, 제주도에서 아이들과 함께 보낸 짧은 휴가도 정말 즐거웠다”며 “정말 마법 같았다. 곧 다시 돌아올 수 있어서 기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내한공연에서 “마법 같은 순간, 기쁨, 깊은 감정, 함께하는 아름다운 음악을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제 막 데뷔한 후배 가수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가 물었더니 대답이 심플했다. “노래를 즐기세요.”

담라우는 지난 내한 공연에서 한국가곡 ‘동심초’를 앙코르곡으로 불러 화제가 됐다. 이번에도 이런 서프라이즈 선물이 있을까 궁금했다. “제가 공연하는 나라의 노래를 부르는 것은 멋진 일이죠. 저는 이러한 도전을 사랑해요. 이번에도 최선을 다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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