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리뷰] 벌레도 풀내음도 참여...평창 찾은 900여명 음악으로 알프스 올랐다

제20회 대관령음악제 개막 ‘알프스 교향곡’ 선사
50분간 세밀하게 산행의 과정 멋진 선율로 표현
???????양성원·양인모·윤홍천 ‘베토벤 삼중 협주곡’ 연주

민은기 기자 승인 2023.07.28 15:30 | 최종 수정 2023.07.29 06:26 의견 0
최수열이 지휘하는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제20회 평창대관령음악제 개막공연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을 연주하고 있다. ⓒ평창대관령음악제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연주 중간에 나방과 벌레가 무대로 ‘난입’했다. 비교적 큰 놈들은 한껏 조명을 받으며 오케스트라 위를 가로질러 야간비행을 즐겼고, 작은 놈들은 악기에 앉으려다 연주자가 휘젓는 활에 쫓겨나기도 했다. 얼굴 쪽으로 용감하게 달려든 벌레에 놀라 움찔하는 연주자도 있었다. 공연 직전 한바탕 쏟아진 비 때문에 풀내음이 가득했다. 청량하고 신선했다.

26일 밤, 산으로 둘러싸인 강원도 평창군 알펜시아 야외공연장(음악텐트)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이 울려 퍼졌다. 올해 20회째를 맞은 평창대관령음악제의 개막공연은 관객들에게 거대한 산을 오르내리는 듯한 경험을 선사했다. ‘자연’을 주제로 삼은 음악 축제의 시작을 알리기에 탁월한 곡이었다.

오프닝 공연의 2부를 꽉 채운 ‘알프스 교향곡’은 작곡가가 열다섯살에 경험했던 고향 독일 뮌헨 근처의 알프스 산행을 담아낸 곡이다. 악장 구분 없는 교향곡으로 악보에는 ‘숲속으로’ ‘꽃밭’ ‘길을 잃어버리다’ ‘정상’ ‘피어오르는 안개’ ‘일몰’ 등 22개 섹션이 표시돼 있다. 산행 과정을 음악으로 세밀하게 묘사했다.

최수열이 지휘하는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제20회 평창대관령음악제 개막공연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을 연주하고 있다. ⓒ평창대관령음악제 제공


지휘자 최수열과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이어지며 섹션이 바뀔 때마다 공연장 나무 벽에는 조명으로 해당 섹션의 이름이 새겨졌다. 음악을 제대로 즐기게 하려는 세심한 배려다. 심벌즈가 힘차게 소리를 내면 ‘일몰’이 펼쳐지고, 하프 소리가 아름답게 울리면 ‘폭포의 요정’이 춤을 췄다.

대규모 오케스트라 편성인 ‘알프스 교향곡’은 악기들의 다채로운 소리와 거대한 사운드로 관객을 압도했다. 보통 때는 무대에 잘 오르지 않는 하프도 2대나 등장했고, 오르간도 한자리를 차지했다. 현악기도 다른 교향곡 편성보다 현저히 많았고, 자연의 소리를 내기 위한 윈드머신(풍음기), 선더머신(뇌음기) 등 다소 낯선 악기도 동원됐다.

윈드머신은 ‘폭풍우 전의 고요’ 끝부분에 등장해 ‘뇌우와 폭풍우, 하산’ 섹션에서 빠르게 돌아가며 바람을 쏟아냈다. 이 부분에서는 거대하고 두꺼운 은박지 모양의 선더머신도 힘을 보탰다. 연주자가 선더머신을 흔들면, 밖에 천둥이 치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900여명이 단체로 50분간 알프스 산행을 무사히 마쳤다.

이날의 연주는 공연장의 분위기와도 잘 맞아떨어졌다. 정식 명칭이 ‘대관령 야외공연장’인 음악텐트는 돔 형태 공연장의 천장을 텐트와 같은 튼튼한 천막으로 덮은 구조다. 실내 공연장과 유사하지만, 천막과 공연장 벽 사이에 틈이 있어 강원도 산골의 차가운 밤공기가 공연장 안으로 훅 들어왔다.

첼리스트 양성원,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피아니스트 윤홍천이 최수열이 지휘하는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춰 베토벤의 삼중협주곡을 연주하고 있다. ⓒ평창대관령음악제 제공

이 틈 사이로 나방과 벌레들 들어와 한자리를 차지했다. 이놈들의 공격에 연주자들은 괴로웠을 수 있지만, 관객들은 색다른 환경에서 음악을 즐길 좋은 기회였다. 중간 휴식 시간에는 공연장 밖으로 나가 강원의 밤을 즐겼다.

공연 직전 한바탕 쏟아진 비로 차가워진 산골의 밤공기는 1부 첫 곡 그리그의 ‘페르귄트 모음곡 1번’ 중 ‘아침의 기분’과도 잘 어울렸다.

양성원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이 “맑은 공기의 평창에서 아침 산책하는 느낌을 줄 것이다”라고 귀띔했던 곡이다. 아침 산책 대신 밤 산책을 나온 듯한 기분을 안겼다.

1부 두 번째 곡으로 양성원 예술감독이 첼로를 잡고, 주목받는 차세대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와 피아니스트 윤홍천이 선사한 베토벤의 ‘삼중 협주곡’도 공연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양성원 평창대관령음악제 에술감독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평창대관령음악제 제공


양성원 예술감독은 공연 시작 전 “매 공연 자연과 연관된 곡을 들려줄 것이다”라며 “전 세계에 자연재해로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자연과 관련된 아름다운 곡들을 들으면서 어떻게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 자연을 보호할 수 있을지 생각한다면 뜻깊은 공연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개막공연은 티켓 오픈 1주일 만에 매진을 기록했다. 성공적인 공연으로 축제의 서막을 연 음악제는 앞으로 19회의 콘서트, 8회의 찾아가는 음악회, 6회의 찾아가는 가족음악회를 비롯해 대관령아카데미, 부대행사 등 다채로운 행사를 진행하며 8월 5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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