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경화, 정명훈, 지안왕 트리오가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트리오 a단조 ‘어느 위대한 예술가의 추억’을 연주하고 있다. ⓒ크레디아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정경화는 1948년생, 올해 75세다. 정명훈은 1953년생, 70세다. 누나는 바이올리니스트로서 한 시대를 쥐락펴락했고, 동생은 피아니스트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거장 지휘자의 반열에 올랐다. 두 사람이 오랜만에 한 무대에서 ‘남매 케미’를 뽐냈다. 누나는 쑥스러운 듯 뒤로 물러서는 동생의 손을 잡더니 아예 깍지를 낀 채 무대 중앙으로 이끌었다. 머리를 쓰다듬고 등도 토닥였다. 누나는 더 과감해졌다. 볼에 뽀뽀를 하고는 쓱쓱 립스틱 자국을 지워주는 애정표현도 아끼지 않았다. 10대로 돌아간 모습이다.
실수 조차로 아름다웠다.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3번 3악장을 연주할 때다. 피아노가 첫 소절을 시작했는데 바이올린이 들어가는 타이밍을 놓쳤다. 피아니스트는 미소를 짓고 연주를 다시 시작해 바이올린을 불러들였다. 차이콥스키 피아노 3중주 a단조의 2악장에서도 에러가 발생했다. 아홉 번 째 변주에서 바이올리니스트는 자신의 연주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피아니스트에게 다시 시작하자는 사인을 보냈다. 하지만 음악은 그대로 흘러갔다.
한마디로 ‘안 봤으면 어쩔 뻔’ 무대였다. 지난 5일 정경화와 정명훈은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했다. ‘정트리오’의 맏이인 첼리스트 정명화(79)는 이미 은퇴했기 때문에 아쉽게도 완전체 정트리오는 아니었지만, 가족처럼 남매처럼 친하게 지내고 있는 중국 첼리스트 지안왕(55)이 빈자리를 메웠다. 경화·명훈 남매가 듀오 연주를 한 것은 2011년 12월 어머니 이원숙 여사를 기리는 추모 음악회 이후 처음이다. 공식 공연으로는 1993년 듀오 콘서트 이후 30년 만이다. 2012년 1월 서울시향 공연에 함께 선 적은 있지만, 그때는 협연자와 지휘자로 만났다.
정경화·정명훈 남매가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을 연주한 뒤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크레디아 제공
정경화·정명훈 남매가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을 연주한 뒤 포옹하고 있다. ⓒ크레디아 제공
먼저 지안왕은 정명훈과 호흡을 맞춰 드뷔시의 ‘첼로 소나타 d단조(L.135)’를 연주했다. 두 사람은 12분 동안 간결하고 차분하게 음악을 이끌어 갔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에 따른 공포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다시 찾아온 창작열에 행복했던 드뷔시를 잘 포착했다. 유기적으로 연결되기 보다는 서로 독립된 개별 작품을 연주하는 듯한 형식을 취한 드뷔시의 개성을 솜씨 좋게 잘 살려냈다.
1악장(프롤로그)은 침울했지만 2악장(세레나데)은 변화무쌍한 즉흥곡을 보는 듯 가볍고 익살맞았다. 바로 이어진 3악장 피날레는 고전적인 론도로 가벼운 서정미기 돋보였다. 그냥 툭툭 무심하게 뒤를 받쳐주는 피아노와 또 역시 무심하게 앞서 나가는 첼로가 묘한 앙상블을 이뤘다.
지안왕과 정명훈이 드뷔시의 첼로 소나타 d단조를 연주하고 있다. ⓒ크레디아 제공
프로그램북을 살펴보니 정경화가 다섯 살 터울 동생과 바이올린·피아노 듀오로 ‘데뷔’했던 순간을 적어 놓았다. 동생은 어렸을 때부터 놀라울 만큼 좋은 피아니스트였다고 칭찬했다.
“명훈이가 열다섯 살이었을 때, 그러니까 제가 리벤트리 콩쿠르에서 막 우승한 후 카네기홀에서 자선 음악회를 열었어요. 피아니스트를 찾아야 하는데, 어머니께서 동생과 함께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셨죠. 처음엔 말도 안된다고 했어요 콩쿠르 우승 이후 저를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아무리 동생이라도 그건 아니다 싶었거든요. 하지만 결국 무대를 잘 마쳤어요. 그때 동생이 저한테 구박을 많이 받았지만(웃음), 어느새 하나의 목소리처럼 호흡이 잘 맞게 됐어요.”
정경화·정명훈 남매가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을 연주하고 있다. ⓒ크레디아 제공
정경화와 정명훈은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 d단조(Op.108)’를 들려줬다.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과 2번은 본질적으로 서정적이다. 내면적으로는 가곡 선율이 흐른다. 하지만 3번은 또 다른 세계를 그리고 있다. 우울하고 격정적인 분위기가 두드러진다.
1악장은 전통적인 소나타 형식이다. 주제는 아름다운 칸타빌레로 표현되지만 그 나지막한 바이올린 음성과 불안한 피아노 파트에는 긴장감이 담겨있다. 2악장과 3악장은 비교적 짧다. 어딘가 헝가리풍이 느껴지는 느리고 낭만적인 바이올린이 주도하는 2악장과 정열과 사색이 공존하는 피아노가 리드하는 3악장은 좋은 대조를 이룬다. 반면 타란텔라 리듬으로 빠르게 몰아치는 4악장은 오케스트라에 버금갈 정도로 격렬하고 스케일이 크다. 정경화는 바이올린과 맞닿은 목 부분에 댔던 작은 수건이 땅에 떨어질 만큼 연주에 정성을 다했다. 코랄풍의 차분한 선율이 중간준간 분위기를 바꾸지만 다시 정열적인 감정을 분출하며 마무리됐다.
정경화, 정명훈, 지안왕 트리오가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트리오 a단조 ‘어느 위대한 예술가의 추억’을 연주한 뒤 환하게 웃고 있다. ⓒ크레디아 제공
이번 프로그램은 정명훈이 짰다. 정경화는 “브람스 소나타와 차이콥스키 트리오는 모두 명훈이가 하자고 했다. 이 사람은 내가 뭘 물어보면 바로 대답을 안한다(웃음). 하지만 고심한 끝에 내놓은 답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정경화·정명훈·지안왕 트리오는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트리오 a단조(Op.50)’을 연주했다, ‘어느 위대한 예술가의 추억’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차이콥스키는 1880년대로 접어들면서 작곡가로서 확고한 위치에 올랐다. 하지만 “영감이 메말라 아무것도 표현할 수 없을까 봐 두렵다”고 말했을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었다.
안톤 루빈시테인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러시아 역사상 첫 음악원의 문을 열었고, 차이콥스키는 바로 이 학교의 1회 졸업생이었다. 안톤의 동생 니콜라이 루빈시테인이 모스크바에 새로 음악원을 오픈한 뒤, 차이콥스키를 교수로 임용했다. 차이콥스키는 니콜라이 원장 집에 방 하나를 빌려 살았다. 위대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던 니콜라이는 차이콥스키의 여러 작품을 초연하며 ‘작곡가 차이콥스키’로 활동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좋은 시절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연히 갈등도 있었다. 니콜라이가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연주를 거절하면서 불화를 겪은 게 대표적 사례다.
1881년 3월, 니콜라이는 파리에서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마침 파리에 있던 차이콥스키는 장례식에 참여했고 모스크바로 운구하는 기차도 전송했다. 은인의 죽음에 차이콥스키는 크게 흔들렸다. 그해 말부터 니콜라이를 추모하는 피아노 트리오를 쓰기 시작해 이듬해인 1882년 1월에 완성했다. 차이콥스키는 본질적으로 관현악 작곡가였다. 열렬한 후원자이자 정신적 연인이었던 나데즈다 폰 메크 부인이 피아노 트리오를 써달라고 요청했을 때 거절했을 정도로 이 형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니콜라이를 추모하는 작품을 계획하면서 이 장르에 주목했다.
피아니스트를 위한 작품답게 전편에 걸쳐 피아노가 음악을 주도한다. 베토벤 후기 소나타의 선례를 본받아 소나타와 변주곡을 결합했다. 그 결과 ‘세 개의 악기를 위해 만든 관현악곡’이라고 표현할 만큼 웅장한 작품이 탄생했다. 차이콥스키의 이 작품 이후 러시아 작곡가들은 친구와 동료를 추모하기 위한 피아노 트리오를 쓰는 전통을 이어가게 됐다.
정경화, 정명훈, 지안왕 트리오가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트리오 a단조 ‘어느 위대한 예술가의 추억’을 연주한 뒤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크레디아 제공
정경화, 정명훈, 지안왕 트리오가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트리오 a단조 ‘어느 위대한 예술가의 추억’을 연주한 뒤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크레디아 제공
1악장은 낭만적 감정이 가득하다. 눈 덮인 자작나무 숲이 떠올랐다. 작품의 핵심은 2악장. 먼저 주제를 제시하고 뒤를 이어 12개의 변주가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 12번째 변주는 코다와 결합돼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악장이자 장송행진곡 포맷을 갖추고 있다. 차이콥스키는 이렇게 화려하고 장엄한 방식으로 니콜라이 루빈시테인을 추모했다. 세 사람의 연주는 ‘마치 우리를 기억하라’는 선언과도 같았다.
클래식 스타들의 무대답게 객석의 분위기도 후끈 달아올랐다.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곳곳에서 “멋져요”라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앙코르로 멘델스존 피아노 3중주 1번 2악장, 하이든 피아노 3중주 43번 3악장을 들려줬다. 정경화는 관객을 향해 ‘손 하트’ ‘손 키스’를 보내며 기뻐했다.
허명현 평론가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었다. “오늘은 멘델스존 피아노 트리오 1번 중 안단테 악장이 흘러나오는데 그 순간이 귀했다. 완벽한 음악을 들었을 때의 그런 놀라움이 아니라, 뭐라고 정의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에 대한 탄식이었다. 요즘은 보기 드문 어딘가 옛 연주 스타일을 간직한 음유시인의 노래였다. 젊은 시절 정트리오 음반 속 정명훈의 연주는 완벽하게 관리된 창고에서 나온 와인 같았다면, 이제는 오랜 시간 잘 숙성된 홈메이드 와인 같았다. 무심하게 ‘차린 건 없지만 맛있게 드슈’ 라고 이야기 하는 것 같지만, 귀한 무언가를 자꾸 꺼내 오신다. 대충 치는 것처럼 보이는 하이든도 사실은 놀라웠다. 지휘자가 아니라 피아니스트의 길을 걸었더라도, 분명 굉장한 예술가로 남았을 것 같다. 그나저나 정명훈을 이렇게 막 다루는 건 누나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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