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근 “고음만 죽어라 연습 쓸데없는 짓...느낌·감정 잘 표현해야 굿테너”

늦게 꽃피운 학구열로 유럽무대 석권
연륜에서 오는 디테일 살려 연기·노래
​​​​​​​목소리 관리 잘해 60 넘어서도 공연 꿈

송인호 객원기자 승인 2023.09.14 16:10 | 최종 수정 2023.09.14 17:07 의견 0
테너 신상근이 후배들에게 “고음만 죽어라 연습하기 보다는 느낌·감정을 잘 표현하는 것에 신경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상근 제공


[클래식비즈 송인호 객원기자] 그의 목소리는 처절함과 비장함 그리고 어쩔 수 없는 분노가 교차되고 있었다. 공간을 타고 흐르는 애절함도 섞여 있었다. 노래를 하지 않아도, 비올레타를 바라보는 알프레도의 눈길은 목소리가 되어 복잡한 감정을 쏟아내고 있었다. 화려함이라고 하기엔 깊음이 있고 기교라고 하기엔 넘나드는 폭이 넓다. 그렇게 그는 2시간 30분 내내 관객을 몰입하도록 만들었다. 지난 8월 4일과 5일 서귀포오페라페스티벌의 ‘라 트라비아타’ 공연에서 주역으로 출연한 테너 신상근의 이야기다. 엄청난 포스를 뽐낸 그를 만났다.

-상당히 놀랐다. 최근에 본 ‘라 트라비아타’ 오페라 중에서 단연 으뜸으로 꼽고 싶을 정도다. ‘라 트라비아타’ 공연은 얼마나 했나?

“과찬의 말씀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 트라비아타’ 공연은 횟수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했습니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 같이 호흡을 맞춘 소프라노 김순영 선생과는 아마도 가장 많이 했을 겁니다. 지금은 눈빛만 봐도 어떻게 움직일지 다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게다가 저랑은 목소리의 음색, 즉 보이스털러가 아주 잘 맞습니다. 그래서 저희 두 사람을 자주 초청합니다.”

-이번 서귀포오페라축제 공연에서 목소리의 변화가 화려하다는 것을 느꼈다. 즉 관객의 심리적 변화를 이끌어 낸다고 하겠다. 물론 역할에 따라 다르겠지만 테너로서 본인의 생각하는 자신의 노래 스타일은?

“특별한 스타일이 있다기 보다는 모든 오페라가 그렇듯이 스토리의 상황과 역할에 따라 노래의 감정선이 다 다르다고 봅니다. 그에 맞춰서 노래를 합니다. 슬픈 것도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죠. 기쁜 것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감정처리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래도 그렇게 됩니다. 제가 유럽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보니까 지휘자들이 아주 디테일합니다.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면서 요구를 하지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훈련이 되고 무대에서 실제로 하니까 그렇게 되더군요. 결국 연습과 노력입니다. 연륜이라 하겠죠.”

-성악 공부는 언제부터?

“저는 예고를 다니지 않고 인문계 학교에 다녔습니다. 고등학교 때 친구 따라 합창반에 들어갔다가 그길로 성악을 하게 된 거죠. 처음엔 취미삼아 했는데 이게 점점 재미있어 지는 거에요. 나중에는 대학을 성악으로 한 번 해도 되겠다 싶었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개인 레슨을 받으며 입시를 준비하고 나중에 한양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테너 신상근은 지금까지 50여편의 오페라 작품에 출연했다. ‘리골레토’ ‘라트라비아타’ ‘토스카’ 등에 단골 출연했다. ⓒ신상근 제공
테너 신상근은 지금까지 50여편의 오페라 작품에 출연했다. ‘리골레토’ ‘라트라비아타’ ‘토스카’ 등에 단골 출연했다. ⓒ신상근 제공


-좀 한다는 친구는 대학교 때부터 여러 콩쿠르에 입상하고 그러는데 본인은 대학교에 입학해서는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던 것 같다.

“저는 그냥 대학생활을 즐겼습니다. 남들 한다는 미팅도 하고 동아리 활동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해보고 하면서 캠퍼스 생활에 푹 빠졌죠. 친구들하고 어울리고 그게 재미있더라고요. 또 제가 사진 찍기를 좋아해서 카메라 들고 엄청 돌아다녔습니다. 노래는 학교수업에만 충실했죠. 제 위에 선배 기수들과 제 밑에 후배 기수들에 워낙 노래를 잘 부르는 친구들이 많아서 기가 조금 죽은 것도 사실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갔다. 그것도 유럽으로 말이다.

“이상하게 생각하시겠지만 그때만 해도 저는 악착같은 게 없었던 같습니다. 졸업하고 1년 정도 빈둥거렸어요. 그러다가 이쪽저쪽 기웃거리다보니까 유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새로운 환경에 접해 보고 싶기도 했고요. 그래서 찾다가 이탈리아 노바라 국립음악원으로 가게 됐습니다. 사실 가서도 열심히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노느라 정신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결혼을 하게 됐고 그때서야 공부를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뭐 늦게 철들었다고 할까요. 하하”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유럽 여러 나라에서 공부를 했다.

“네, 노바라 국립음악원을 끝내고 오페라 무대에서 활동하면서 라스칼라극장 아카데미를 다녔고 다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국립음악원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다시 독일 드레스덴 국립음대를 졸업하고 프랑스 휘에이말 메종 음악원에서 최고연주자과정을 수학했죠. 그러고 보니 정말 많이 다녔네요. 대부분 오페라단에서 일하면서 공부를 병행한 것입니다. 이상하게도 오페라 무대에 서서 노래를 하면 거기에 몰입하게 돼 있어요. 연출가나 지휘자가 요구하는 것들이 많고 거기에 부응을 해야 하니까 더 배우고 싶고 그래서 그런 것 같아요. 덕분에 공부는 원없이 한 것 같아요.”

-처음 데뷔작은? 그리고 이후 활동은?

“‘오텔로’에서 조연으로 첫 오페라 무대에 섰습니다. 주역으로 데뷔는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에서 에드가르도 역으로 했습니다. 이때부터 유럽 여러 오페라 무대에서 초청을 받기 시작했고 ‘아, 나도 이제 오페라 가수로서 먹고 살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독일 베를린·라이프치히·슈투트가르트·하노버·칼스루에, 프랑스 샹제리제·렌느, 스위스 루체른, 노르웨이 오슬로·베르겐, 그리스 아테네 등에서 활동했습니다. 진짜 많이 했네요.”

테너 신상근은 지금까지 50여편의 오페라 작품에 출연했다. ‘리골레토’ ‘라트라비아타’ ‘토스카’ 등에 단골 출연했다. ⓒ신상근 제공
테너 신상근은 지금까지 50여편의 오페라 작품에 출연했다. ‘리골레토’ ‘라트라비아타’ ‘토스카’ 등에 단골 출연했다. ⓒ신상근 제공


-오페라 몇 작품을 했나?

“글쎄요. 한 번도 헤아려보지 않아서 가늠이 안되는데 아마 한 50여편을 한거 같아요. 웬만한 오페라 작품은 거의 다 해 본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현대작품도 했어요. 옆에서 노래 부르다가 이상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고쳐서 연습을 이어나가는 그런 작품도 했죠. 데뷔 초기에도 현대 작품들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현대 오페라 작품은 하기가 참 힘듭니다. 결과가 잘 없거든요. 누가 보러 와서 비평을 해 주는 것도 없고 다른 작품과 비교할 대상도 없고 그러다보니 지치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에는 고전 작품을 더 많이 했습니다.”

-많은 작품에 출연을 하다보면 노래가 헷갈리는 경우도 있겠다.

“아직은 그런 경우는 없었습니다. 워낙 연습량이 많아서 그런지 거의 다 외웁니다. 예전에 유럽에서 활동할 때 매일 다른 작품을 가지고 1주일동안 공연한 적도 있었습니다. 차로 몇백km 이동하면서 공연을 하던 때라 차 안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다 외웠습니다. 그게 되더라고요.”

-이번에 공연한 ‘라 트라비아타’는 몇 번 했나? 가장 많이 한 작품은?

“음, 대략 50번 넘게 한 것 같아요. 52번짼가? 암튼 알프레도 역할로만 그렇게 했네요. 더 많이 한 작품은 ‘리콜레토’네요. 103번 했습니다. 그리고 ‘토스카’도 많이 했고 ‘카르멘’도 많이 했습니다. 아, ‘투란도트’도 많이 했네요. 요즘은 의외로 ‘투란도트’가 출연 요청이 많이 들어옵니다. 마침 10월에 서울시오페라단에서 ‘투란도트’ 작품에 출연을 합니다.”

-따로 특별히 애착이 가는 작품은? 그리고 아리아는?

“특별히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기 보다 저는 ‘푸치니’ 작품들을 좋아합니다. 물론 베르디의 작품들도 훌륭하지만 푸치니가 테너를 좋아했나 봅니다. 푸치니의 작품들은 테너의 아리아가 참 좋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푸치니의 작품들이 더 애착이 갑니다. 저는 프로이기 때문에 어떤 작품이 들어와도 멋지게 잘 해내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죠.”

-테너의 생명의 바리톤이나 베이스에 비해 조금 짧다. 언제까지 노래를 할 생각인가?

“다들 테너는 50대 중반만 넘어가도 힘들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본인이 목 관리만 잘 하면 훨씬 더 오래 노래를 할 수 있습니다. 무리하지 않고 컨디션 조절하면 60세 이상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저야 불러만 준다면 나이랑 상관없이 언제든지 무대에 설 자신이 있습니다.”

테너 신상근은 지금까지 50여편의 오페라 작품에 출연했다. ‘리골레토’ ‘라트라비아타’ ‘토스카’ 등에 단골 출연했다. ⓒ신상근 제공


-좋아하는 테너는?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좋아하고 또 독일의 프리츠 분덜리히를 좋아합니다. 고교 시절 우연히 이 사람의 음반을 들었는데 뭔가 모를 느낌이 팍 꽂히더군요. 그때부터 음반을 죄다 사 모았어요. 이 분은 오페라쪽 보다는 가곡을 많이 불렀습니다. 목소리가 감미로운 미성을 지녔다고 할까요. 서른여섯 살 젊은 나이에 요절했습니다. 참 아깝죠. 너무 젊은 나이에 돌아가셔서 녹음된 음반이 생각보다 별로 많지 않아요. 발매되는 대로 다 사 모았어요. 나중에 독일에 있을 때는 무덤에도 찾아가서 꽃을 바치고 왔습니다. 생가도 가 봤고요. 하이델베르그 근처 쿠젤이라는 곳이에요. 저도 우리나라 가곡을 많이 부르고 있습니다.”

-대학(경희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가장 많이 강조하는 것은?

“저는 표현을 더 많이 하라고 가르칩니다. 기교는 누구나 따라 잡을 수 있죠. 대부분 학생들은 고음을 내기 위해 죽어라 연습을 합니다. 저는 각 노래마다 그 느낌과 감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노래로 표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칩니다.”

-앞으로 계획은?

“크고 작은 자잘한 공연들이 쭉 잡혀 있습니다. 일단 10월에 서울시오페라단 공연이 잡혀 있고 내년 초에 유럽 여러 곳에서 공연이 잡혀 있습니다. 엔데믹이 되니까 여기저기서 공연이 많이 생기네요. 저의 팬들을 위해 연습을 많이 해야겠네요.”

-끝으로 당신에게 노래란 무엇인가.

“제게 노래란 ‘직업’ 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좋아서 시작했지만 이게 제 삶의 전부가 되니 직업이 돼 버렸습니다. 노래가 마냥 편하게 즐길 수만 없기도 하고 그렇다고 마냥 무겁게 있기도 하지 않습니다. 뭐랄까 양날의 검이랄까. 좋을 때도 있고 싫을 때도 있는 그렇지만 좋든 싫든 해야 하는 ‘직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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