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장한나가 스승인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와 함께 15일 서울 서초구 코스모스아트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손가락 하트’ 포즈를 취하고 있다. ⓒ크레디아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기자] “제 연주 인생의 전환점이 된 세 분이 모인 공연입니다. 아주 영광이죠. 연주자의 삶을 알려주신 마이스키 선생님, 첼리스트 커리어의 시작이었던 로스트로포비치 콩쿠르에서 연주했던 드보르자크, 그리고 지휘자라는 꿈에 불을 붙여준 베토벤까지. 이렇게 뜻깊은 세 분이 모두 모였습니다.”
첼리스트에서 지휘자로 변신한 장한나(41)는 스승 미샤 마이스키(75)와 함께하는 연주회에 대한 설레는 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15일 서울 서초구 코스모스아트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나이가 34세나 더 많은 스승에게 ‘손가락 하트’를 시범 보이고는 기자들 앞에 함께 내밀며 포즈를 취했다. 다정한 사제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흐뭇했다.
두 사람은 오는 9월 23일과 24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장한나 & 미샤 마이스키 위드 디토 오케스트라’ 공연을 한다. 지휘자와 첼리스트로 한국에서 호흡을 맞추는 것은 2012년 8월 이후 11년 만이다. 서울 공연에 앞서 17일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19일 대전 예술의전당, 21일 경주 예술의전당 무대에도 오른다.
장한나는 한껏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는 “한국에서 선생님과 연주하는 것은 11년 만이지만 해외에서 마지막으로 협연한 것은 지난 5월이다”라며 “그간 지휘자로 선생님과 해외에서 여러 차례 협연하며 선생님의 해석과 자유로운 연주가 몸에 뱄다. 11년 전 국내 연주회에 오셨던 분들이 계신다면 이번에는 새로운 콜라보(협연)를 보게 되실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휘자 장한나가 스승인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와 함께 15일 서울 서초구 코스모스아트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손가락 하트’ 포즈를 취하고 있다. ⓒ크레디아 제공
이번 연주회에서는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과 함께 23일에는 베토벤 교향곡 5번, 24일에는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을 연주한다.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은 장한나에게도 아주 의미 있는 곡이다. 1994년 로스트로포비치 국제 콩쿠르 우승을 안겨준 곡으로, 난도가 높고 화려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마이스키는 “연주자 입장에서 쉽지 않은 곡이다”라며 “원곡의 정신과 의도에 충실한 연주를 들려주겠다. 음악의 예술성을 최대한의 경지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장한나는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에도 큰 도전이다”라며 “다른 협주곡은 솔로 악기가 빛날 수 있도록 반주가 받쳐주기도 한다. 반면 이 곡은 솔리스트가 오케스트라에 홀로 대항하는 느낌이라 무게감이 다르다. 선생님이 추구하는 해석과 저의 해석이 하나가 되도록 애쓰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함께 하는 디토 오케스트라에 대해선 백지 상태였다”라며 “그런데 리허설을 해보니까, 아주 뜨거웠다. 서로의 음악을 알아가며 즐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92년 마이스키의 내한 공연에서 시작해 3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마이스키는 열 살 장한나의 첼로 연주 영상을 보고 자신의 마스터클래스에 초대한 것이 사제 관계로 발전했다.
“공연이 끝난 후 선생님이 로비에서 사인회를 했어요. 동행했던 가족이 선생님에게 저의 연주 모습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를 건넸고, 2주 후쯤 선생님의 아내로부터 ‘마스터클래스에 초대하고 싶다’는 편지를 받았어요. 선생님은 10세 소녀에게 ‘악보는 음표가 전부가 아니다. 작곡가의 혼이 들어가 있다’는 깨우침을 주셨죠.”
지휘자 장한나와 스승인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와 함께 15일 서울 서초구 코스모스아트홀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있다. ⓒ크레디아 제공
마이스키도 그때를 일을 바로 어제의 일처럼 떠올렸다. 그는 “30년 세월이 흘렀지만 처음 한나의 연주를 들었을 때 받았던 강렬한 인상이 잊히지 않는다”며 “압도적이고 강렬한 첼로를 처음 듣고서 ‘환생’이라는 말을 믿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마이스키를 사사한 장한나는 11세에 미국 줄리어드 음악원에 특별 장학생으로 입학했고, 12세에 로스트로포비치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하며 ‘천재 첼리스트’로 불렸다. 마이스키는 장한나를 자신의 유일한 제자로 꼽을 만큼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 왔다. 하지만 2007년 25세에 돌연 지휘자로 전향했다. 지휘자로 데뷔한 이후로는 첼리스트 활동을 멈췄지만 두 사람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어렸을 때 같이 찍은 사진을 남기지 못한 것이 후회로 남아 지금은 선생님을 볼 때마다 셀카를 찍어요. 나이를 먹은 것은 억울하지만 선생님과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사이가 되어 좋답니다.”
장한나의 첼로 연주를 가까이서 지켜본 스승은 지휘자로 이름을 알리는 장한나를 보며 ‘복합적인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그는 제자가 첼리스트로서의 경력을 희생한 것에 아쉬운 마음도 들지만, 제자의 결정을 충분히 존중한다고 말했다.
지휘자 장한나와 스승인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와 함께 15일 서울 서초구 코스모스아트홀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있다. ⓒ크레디아 제공
“지휘자 장한나는 직관력과 지성, 에너지 등 다양한 자질을 갖췄어요. 관객의 귀와 눈을 즐겁게 하면서 마음마저 울릴 수 있는 보기 드문 훌륭한 지휘자입니다. 앞으로의 지휘자 활동에도 큰 기대를 품고 있어요.”
마이스키는 그러면서 “지휘 일정으로 바쁘지만 장한나가 잠시 첼리스트로 돌아와서 슈베르트 ‘현악 오중주’(이 곡은 기본 현악 사중주에 첼로를 한 대 더 편성한다)를 함께 연주하면 좋겠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장한나는 “오케스트라가 모일 수 없었던 팬데믹 기간 첼로 연습을 했는데 만족스럽지 않았다. 스스로 첼로를 연주할 준비가 됐다고 느낄 때 전화 드리겠다”며 웃었다.
스승에게 음악인의 삶을 배운 장한나는 지휘자로도 성공적인 경력를 쌓아왔다. 2017년부터 노르웨이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고, 지난해에는 독일 함부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 객원지휘자도 맡았다.
장한나는 유년 시절 천재 첼리스트의 면모를 그리워하는 팬들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현재로서는 지휘자 활동에 충실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선생님은 악보 앞에서 한결같이 겸손하고 음악 앞에서 한없이 낮아집니다. 30년간 스승을 꾸준히 존경하는 이유죠.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 안에서 나를 찾고, 내 안에 있는 음악을 찾는 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주자든 지휘자든 어떤 형태로 나타나든지 충실한 모습과 자세로 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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