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없는 스탠딩 오케스트라 참신...‘포항음악제’ 7일간 음악 신세계 펼쳤다

통영·평창 이어 이젠 ‘클래식 메카 포항’ 자리매김
정경화·손민수·박혜상·카잘스콰르텟 등 최강라인업 출연
​​​​​​​관현악·실내악 코어 공략하면 대한민국 대표음악제 성큼

김일환 기자 승인 2023.11.13 14:01 | 최종 수정 2023.11.13 14:22 의견 0
피아니스트 손민수가 ‘2023포항음악제’ 개막공연에서 지휘자 없는 스탠딩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있다. ⓒ포항음악제 제공


[클래식비즈 김일환 기자] ‘철의 도시’가 ‘현의 도시’가 됐다. 지휘자 없는 스탠딩 오케스트라의 참신한 개막공연으로 시작한 ‘포항음악제’가 7일간 클래식 음악의 신세계를 펼쳤다. 정경화, 손민수, 김태형, 박혜상, 문지영, 카잘스 콰르텟 등 최강 라인업이 출연해 못잊을 감동을 남기며 화려한 축제를 마무리했다.

지난 3일(금)부터 9일(목)까지 포항문화예술회관 및 포항시 일원에서 열린 ‘2023포항음악제’가 성황리에 끝났다.

축제를 시작한 2021년(‘기억의 시작’)과 2022년(‘운명, 마주하다’)은 대표적인 산업도시 포항이 음악 축제와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라는 선입견과 팬데믹, 태풍 힌남노 등이 덮쳐 음악제를 홍보하기에 제약이 있었다.

하지만 ‘신세계? 신세계!(A NEW WORLD? THE NEW WORLD!)’라는 주제로 열린 올해 포항음악제는 전국에서 음악계 주요 인사들이 극장을 찾을 만큼 훌륭한 출연진과 프로그램, 감동적인 연주, 그리고 차분한 진행으로 성공적으로 치러져 내년 축제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올해 축제는 예년보다 완성도가 높았다는 평가다. 포항문화재단은 산과 바다, 자연과 산업이 어우러진 포항시를 문화도시로 확장해가기 위해 포항시와 관내 기업, 경상북도의 지원을 받아 음악제를 진행했다.

‘2023포항음악제’ 개막공연에서 지휘자 없는 스탠딩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있다. ⓒ포항음악제 제공
‘2023포항음악제’ 개막공연에서 지휘자 없는 스탠딩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있다. ⓒ포항음악제 제공


피아니스트 손민수의 협연과 세계 최고 기량의 연주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만든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스탠딩 무대로 화려한 축제의 개막(3일)을 알렸다. 피아니스트와 첼리스트를 제외하고는 모두 일어서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과 드보르자크 ‘신세계로부터’를 연주했다.

세계적인 현악사중주단 카잘스 콰르텟(6일)과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피아니스트 김태형과 호흡을 맞춘 리사이틀(8일)을 보기 위해 포항을 처음 방문한 음악 애호가들의 발걸음도 눈에 띄었고, 포항음악제에서만 볼 수 있었던 실내악 프로그램은 포항에 머물며 음악제를 참관하던 전문가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올해 축제 프로그램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고 평한 음악평론가 신예슬은 “2023포항음악제는 음악감독의 특성을 고스란히 반영한 듯, 현악 레퍼토리에서 큰 강점을 보였다. 익숙한 고전도 있는 반면에, 실연으로 처음 듣는 프로그램도 있어 새로운 작품을 만나는 발견의 즐거움도 컸다. 무엇보다 압도적이었던 것은 한자리에서 만나기 어려운 연주자들의 존재, 그리고 그들의 몰입도 높은 연주였다”고 언급했다.

‘2023포항음악제’ 개막공연에서 지휘자 없는 스탠딩 오케스트라가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포항음악제 제공


포항음악제는 제1회 때부터 톱클래스 출연진이 참가했다. 1회는 피아니스트 백건우·임윤찬, 첼리스트 양성원, 소프라노 서선영, 노부스 콰르텟이 함께 했다. 2회에는 벨체아 콰르텟과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바리톤 김기훈, 바이올리니스트 벤자민 베일만 등이 무대에 섰다.

첼리스트 출신의 박유신 음악감독은 “신생 음악제일수록 연주의 질과 프로그램 수준이 중요하다. 음악제를 꼭 찾고 싶은 곳이 되도록 최고의 연주자들을 섭외했다. 포항은 ‘철의 도시’고 철은 현악기에서 현을 구성하는 중요한 소재다. 도시 이미지와 연결해 매년 세계적인 현악사중주단을 초청했는데, 다른 축제와 구분되면서도 도시를 상징할 수 있는 현악기 중심의 특화된 프로그램과 출연진을 꾸준히 선보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 덕분에 만날 수 있는 무대는 각별했다. 손민수, 조성현, 토비아스 펠트만, 김홍박 등 현악과 건반, 관악의 조화로 만들어낸 재즈 클래식 공연(4일), 자주 무대에 오르지 않는 말러의 피아노 사중주와 소프라노 박혜상이 들려준 레스피기의 곡으로 구성한 음악회(5일), 그리고 슈베르트의 가곡 공연(7일)은 축제의 품격을 높였다.

9일 열린 ‘2023포항음악제’ 폐막공연에서 무용수들이 멘델스존과 바르기엘의 곡에 맞춰 여느 축제와는 차별화되는 역동적인 무대를 보여주고 있다. ⓒ포항음악제 제공


출연진들이 대거 참석한 마지막 9일 공연에는 멘델스존, 바르기엘 현악8중주를 최수진을 위시한 무용수들과 함께 만들며 여느 축제의 폐막과는 구분되는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알차고 진중한 프로그램과 연주는 포항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의 놀라운 울림과 함께 관객들에게 잘 전달됐다. 매년 음악제에 참석했던 세계적인 톤 마이스터 최진 감독은 “포항문화예술회관은 별도 확성 없이 클래식 악기의 소리를 잘 전달할 수 있는 매우 좋은 음향을 갖춘 곳이다”라고 했다.

발코니가 없는 963석 규모의 대극장은 솔로 리사이틀부터 실내악, 오케스트라 규모까지 소리의 굴절 없이 앞 좌석부터 맨 뒷좌석까지 울림이 잘 전달된다는 강점을 갖고 있다. 연주자들의 훌륭한 연주를 불편함 없이 고르게 잘 감상할 수 있다는 극장의 이점도 큰 몫을 했다.

이밖에도 출연 아티스트의 특별 무대를 마련한 ‘포커스 스테이지’와 포항의 도서관과 미술관, 체인지업 그라운드 로비 등에서 진행한 ‘찾아가는 음악회’, 포항 출신 음악가를 소개하는 ‘아티스트 포항’과 마스터클래스 등은 문화도시 포항의 순수예술 진흥 프로젝트로 계속 확장해 나갈 예정이다.

9일 열린 ‘2023포항음악제’ 폐막공연에서 무용수들이 멘델스존과 바르기엘의 곡에 맞춰 여느 축제와는 차별화되는 역동적인 무대를 보여주고 있다. ⓒ포항음악제 제공


포항음악제를 성공적으로 마친 시점에서 신예슬 평론가는 “포항음악제는 프로그램의 차원에서도 연주의 차원에서도 클래식 페스티벌에서 가장 중요한 것, 즉 ‘밀도 높은 음악적 경험’을 충실히 갖추고 있었다. 남은 과제는 축제의 열띤 분위기를 더해줄 관객과 그들의 호응이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포항음악제를 참관한 류태형 음악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은 “바다와 제철소가 있는 도시 포항은 호연지기의 도시였다. 눈앞에 펼쳐진 풍광에 힘이 있었고 스케일이 컸다. 이곳에서 열린 포항음악제의 첫인상은 그에 비해 조용하고 차분했지만 빼어난 실력의 연주가들이 저마다 마법 같은 연주로 뜨거운 공감을 자아냈다. 포항음악제에는 정중동의 큰 움직임이 있었다. 포항 청중들의 수준은 높았다. 음악을 존중했고 함께 나눌 줄 알았다”고 평했다.

아울러 “통영과 평창이 걸어온 다양한 프로그램의 길을 향후 포항음악제에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계속 관현악과 실내악이라는 클래식 음악계의 코어를 공략하면서 청중의 저변을 넓히는 여러 가지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라고 팁을 줬다.

/kim67@classicbiz.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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