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김일환 기자] ‘디어(Dear)’는 상대방을 높이는 단어다. 영어로 편지를 쓸 때 으레껏 붙이는 상투적인 말이지만, 그 기본 바탕은 당신을 가장 존경한다는 마음을 담고 있다. ‘친애(親愛)하는’ 정도로 번역되는데, 이 세상에 ‘친밀하게 사랑한다’는 말처럼 멋진 말이 어디 또 있겠는가.
메조소프라노 백재은은 ‘한국의 카르멘’으로 불린다. 초등학생 때 비제의 ‘카르멘’을 처음 본 뒤 주인공에게 매료돼 오페라 가수의 길로 들어섰다. 뇌쇄적인 눈빛과 열정적인 춤사위, 내 삶은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 찾아가겠다는 주체성, 닮고 싶은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카르멘’은 소프라노가 아닌 메조소프라노가 주인공을 맡는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래서 ‘카르멘=최고의 메조소프라노’로 통용된다. 지난 9월 초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야외 오페라 무대에서도 그는 집시 여인으로 변신해 ‘하바네라’를 불렀다. 서울 한복판을 숨죽이게 만들었다.
별명에 걸맞게 국내외 굵직한 공연과 오페라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그가 ‘디어 마이 오페라(Dear My Opera)’라는 제목으로 첫 책(그래도봄·296쪽·1만9800원)을 출간했다. ‘친애하는 나의 오페라에게’를 펼치면 우리 인생에서 꼭 들어야 하는 열한 편의 작품이 파노라마처럼 흐른다. ‘카르멘’ ‘라보엠’ ‘라트라비아타’ ‘돈조반니’ ‘탄호이저’ 등 친숙한 오페라도 있고, ‘팔스타프’ ‘폰토의 왕 미트리다테’ ‘라 체네렌톨라’ ‘아틸라’ ‘예브게니 오네긴’ ‘캔디드’ 등 자주 보지 못하는 작품도 들어있다.
백재은은 ‘탐구적 성악가’다. 그동안 수많은 작품으로 무대에 섰는데 가사만 달달달 외우지 않았다. 깊이 있게 공부했다. 오페라 속 인물을 연기하고 감정을 실어 노래하기 위해 역사, 문학, 시대 배경, 심지어 그 배역을 맡아 노래한 성악가들까지 샅샅이 스터디했다. 쓸데없이 오지랖이 넓다고 핀잔 받을 수도 있지만 결국은 피가 되고 살이 됐다. 클래식 음악에 한 걸음 다가가고 싶은 당신에게 보내는 열 한통의 러브레터가 완성됐으니 그동안의 애씀이 헛되지 않았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오페라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다.
그는 미국 뉴욕과 버지니아, 폴란드, 중국, 그리고 한국 국립오페라단에서 가수로 활동하며 어릴 적 푹 빠져 보던 오페라에 담긴 다채로운 이야기를 풀어내기로 마음먹었다. 오페라에는 온갖 고난 끝에 피어나는 삶이 들어있고, 또한 인생의 모서리로 몰려 비극을 맞이하는 사연들도 풍부하지 않은가. 이를 오케스트라의 유려한 연주, 성악가의 연기와 어우러진 노래와 함께 큰 무대 위에서 보고 듣다 보면 한 인간을 압도하는 세상사의 감각을 느낄 뿐만 아니라 삶의 희로애락을 이해하게 된다. 아 저 무대 위에 우리 이야기가 있구나, 비극의 한켠 역시 바로 우리네 삶이구나, 그리고 그것이 꼭 절망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체감한다.
저자는 그 어느 장르보다 반짝이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오페라가 단순히 ‘어렵다’는 이유로 외면 받는 것을 늘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이 책을 썼다. 오페라라는 매혹적인 장르를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고 싶었다. 이와 더불어 오페라가 독자들에게 클래식 음악의 입문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이야깃거리가 오페라를 통한다면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동료들과 함께 노래했던 경험들, 다양한 오페라 무대 위에 벌어졌던 성악가들만 알고 있는 숨겨진 뒷이야기를 특유의 호쾌하고 유쾌한 언어로 풀어냈다.
알고 보면 오페라는 신화와 역사 그리고 주인공과 작곡가의 가정사까지 모두 담긴 ‘버라이어티 드라마’다. 작곡가가 어떤 역사나 신화를 두고 오페라를 만들었는지, 왜 원작의 주인공과는 다른 버전의 주인공을 만들었는지 등 그 배경을 살펴본다면, 오페라 감상이 훨씬 쉬워질 것이다. 각 노래에 담긴 주인공의 심정과 당시의 상황을 알고 본다면, 오페라가 한층 더 깊이 있게 다가올 것이다.
‘디어 마이 오페라’는 열한 편의 오페라를 소개한다. 한국에서 주로 소개된 오페라부터 풍부한 이야깃거리와 타고난 작곡가의 능력이 만들어낸 오페라 등을 엄선해 골랐다. 장마다 수록한 큐알코드를 통해 저자가 추천하는 열한 편의 오페라 영상을 만나볼 수 있다.
9장 ‘라 트라비아타’를 살짝 맛보면 이렇다. 이 작품의 가장 성공적인 프로덕션은 루키노 비스콘티 연출,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 주연의 라 스칼라 극장 초연작이다. 여기엔 한 가지 일화가 있는데, 마리아 칼라스가 살을 빼면서 아름다운 주인공 비올레타에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살을 뺀다는 건 성악가들 입장에선 어떨까? 그뿐만 아니라 비올레타가 불러야 하는 극강의 고음 아리아에 대해 성악가들은 실제로 어떻게 느끼는지 성악가인 저자가 들려주는 에피소드를 통해 알 수 있다. 무대에 서기 위한 성악가들의 노력과 어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셀럽 3명의 추천사도 감동이다. 금난새 지휘자는 “기존 오페라책의 문법을 과감히 넘어선 시선이다. 자신이 무대에서 노래하고 연기하기 위해 공부한 작품들인 만큼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호흡하려는 글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누군가 오페라를 보러 간다면 가기 전에 이 책만큼은 꼭 읽어보라 권하겠다”고 말했다.
박용만 예술의전당 이사장은 “백재은은 이야기꾼, 작곡가 혹은 주인공이 되어 오페라가 지어내는 환상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저자는 공부의 과정에서 얻어진 이야기들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냈다. 오페라의 문턱을 넘어 클래식에 한 걸음 다가가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또한 김소현 뮤지컬 배우는 “무대 혹은 방송에서 백재은이 들려주는 음악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입담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드디어 한 권의 책으로 그의 생동감 넘치는 오페라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니 무척 설렌다. 평소 오페라를 좋아하거나 오페라가 궁금한데 선뜻 다가가지 못했던 분들에게 최고의 입문서가 되어줄 것이다”라고 강추했다.
오페라는 오래전 벌어진 사연을 바탕 삼아 만들어졌다. 이 사연들은 각 작품을 선택한 작곡가들의 삶의 궤적 어딘가에서 어떤 식으로든 연결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작곡가들이 각 작품에 끌린 건 나름의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된다.
베르디 이외에도 모차르트, 푸치니, 로시니, 차이콥스키 등 당대 유수의 작곡가들은 오페라에 알게 모르게 자기 이야기를 담았다. 원작자와 작곡가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의 사연이 한데 모여 그렇게 한 편의 오페라가 탄생할 수 있었다.
저자가 ‘작가의 말’에 썼듯 영화 ‘필라델피아’에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톰 행크스가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속 막달레나의 노래에 위안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그의 노래에는 잔인한 현실 가운데서도 인생의 숭고함을 잃지 않으려는 한 인간의 존엄함이 담겨 있다. 막달레나의 노래가 들려오는 순간, 영화를 보는 이들 역시 그 감정에 압도되어 눈시울을 붉히고 만다. “클래식은 영원하다”란 말은 바로 이럴 때 쓰이는 게 아닐까?
<백브리핑> 마음이 예쁘다. 백재은은 이번 책 출간으로 들어오는 인세를 전액 기부한다. 반으로 나눠 ‘같이걷는길 노인도시락 봉사단체’와 ‘시리아 전쟁난민 보호소 어린이·여성 학교’에 전달한다. 그는 “특히 이슬람 사회에서 소외받는 여성들의 문맹 퇴치와 갈 곳 없는 어린이들의 미래를 위한 교육에 힘을 보태게 될 것이다”라며 “‘이거 가지고 세상이 변하겠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티끌모아 태산’이고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입담이 좋다. 백재은은 머리 속에 들어있는 지식을 꺼내 다른 사람들의 머리로 쏙쏙 잘 배달한다. CPBC 가톨릭평화방송의 ‘장일범의 유쾌한 클래식’과 함께 유튜브로 ‘백재은의 행복한 오페라 시즌2’를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 놓은 오페라의 찐매력을 대방출하고 있다. 한번 들어보면 홀딱 반하는 오페라 일타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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