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저희의 가장 치열한 경쟁자는 소비재가 아닌 경험재를 제공하는 더현대·인스파이어 같은 백화점·호텔입니다. 저희도 전통적 영역을 뛰어 넘어 관객 속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겠습니다.”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이 백화점과 호텔을 강력한 라이벌로 꼽으며 MZ세대 취향저격에 나섰다. 미래를 바라보는 눈이 날카롭다. 세종문화회관을 단순히 공연을 감상하는 공간을 넘어 시민의 삶 속에서 함께하는 장소로 탈바꿈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안호상 사장은 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2024년 사업설명회에서 “여의도 더현대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보기 위해 번호표를 뽑아야 하고, 인천 인스파이어는 문을 열며 엔터테인먼트를 전면에 내세웠다”며 “이미 세계에서 가장 핫한 한국 관객들에게 세종문화회관이 조금이라도 새로운 곳으로 인식됐으면 하는 생각으로 변화를 시도한다”고 설명했다.
먼저 관객 확대를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도입된다. 티빙·밀리의서재·아티제와 함께 하는 ‘구독 서비스’가 신설된다. 세종시즌 공연을 최대 40% 할인하는 혜택을 연 3만9600원에 제공한다.
친근한 형태의 ‘장르 패키지’, 세대별 맞춤형 ‘동행 패키지’와 함께 고급화 서비스도 눈길을 끈다. 기존 티켓값에 1만~2만원을 더하면 이용할 수 있는 ‘스위트석 제도’가 만들어진다. VIP룸이 제공되고 신속한 티켓 발급 서비스와 케이터링, 굿즈도 받아볼 수 있다.
2022년부터 시작해 매년 여름 세종문화회관을 젊은 예술 감각으로 변화시키는 컨템포러리 시즌 싱크넥스트(Sync Next)가 2024년에는 더욱 다양한 아티스트와 폭넓은 장르의 작품으로 돌아온다.
시각예술 우국원 작가가 시즌 키비주얼을 맡아 시즌 아티스트로도 참여해 기대를 한층 높이고 있다. 또한 유럽 무대에서 주목받는 이란의 극작가이자 연출가 아미르 레자 쿠헤스타니는 최신작 ‘블라인드 러너’로 처음 한국 관객을 만난다. 싱크 넥스트 24의 참여 아티스트들과 전체 라인업은 5월 초 성수동에서 진행하는 ‘세종 팝업’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공연의 기본은 더 단단하게 다진다. ‘예술단 중심 제작극장’으로의 지향점을 명확히 해 올해 세종시즌은 서울시예술단의 작품 24편을 비롯해 기획 2편·공동주최 3편까지 총 29개 작품으로 구성됐다. 모두 229회의 공연이 열린다. 올해 새롭게 출범하는 서울시발레단 공연 등 일부 공연은 추후 공개한다.
세계 최정상 오페라 디바 안젤라 게오르규가 오는 9월 서울시오페라단 ‘토스카’를 통해 한국 관객과 만난다. 지난해 7월 뉴욕 링컨센터 전석 매진으로 찬사를 받은 서울시무용단의 ‘일무’는 오는 5월 완결된 4막 구성의 뉴욕 버전을 국내에 처음 선보인다. 10월에는 한국 무용계의 살아있는 전설 국수호와 한국 현대무용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평단의 기대를 받고 있는 김재덕이 신작 ‘국수호, 김재덕의 사계’를 선보인다.
● 서울시극단 : 관객과 함께 이 시대의 답을 모색하는 시간
서울시극단은 ‘나와 시대’를 이야기한다. 아무리 찾아도 잘 모르는 ‘나’를 향한 질문 ‘욘’과 ‘트랩’, 시대의 격랑 속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연안지대’와 ‘퉁소소리’까지 서울시극단만의 관심이 담긴 신작 4편을 공개한다.
고선웅 단장은 각각 1편씩 각색·연출에 나선다. 국내에서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욘’(3월 29일~4월 21일)은 헨리크 입센 만년의 작품으로, 작가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며 한 인간의 번영과 몰락을 다뤘다. 고소설 ‘최척전’을 극화하는 ‘퉁소소리’(11월 11~27일)는 동아시아적 풍치 속에서 민중이 겪는 파란만장한 수난사와 그 속에 끈질기게 살아남은 이들의 역사를 조명한다.
‘연안지대’(6월 14~30일)는 레바논 출신의 연출가이자 극작가 와즈디 무아와드의 자전적 작품으로, 내전과 망명 등으로 그와 가족이 겪어야 했던 절망과 참상을 김정 연출이 감각적으로 형상화한다.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단편소설을 연극으로 만드는 ‘트랩’(9월 27일~10월 20일)은 우연히 휘말린 재판 게임이 실제 공방전까지 이어지는 흥미진진한 상황을 보여준다. 집요한 추리와 심리적 함정을 하수민 연출이 섬세하게 풀어낸다. 쏟아지는 정보와 휘몰아치는 이슈 속에서도 이 시대의 연극은 계속된다.
● 서울시뮤지컬단 : 시대를 위로하고 세대와 공감하는 작품들
서울시뮤지컬단은 신작과 레퍼토리 작품을 각각 1편씩 공연한다. 2022년 공연예술창작산실 연극·뮤지컬 대본 공모 선정작인 ‘더 트라이브’(4월 19일~5월 5일)는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 앞에 불현듯 나타난 원시 부족이 일상에 변주를 만들어내며 웃음과 감동을 피워내는 작품이다. 주목받는 신예 창작진 작가 전동민, 작곡가 임나래 콤비가 의기투합한다.
호평 일색 입소문으로 흥행에 성공한 서울시뮤지컬단의 레퍼토리 ‘다시, 봄’(5월 8일~6월 7일)은 2024년 LG아트센터로 자리를 옮겨 관객을 만난다. 중년 여성들의 인생 2막 이야기를 무대 한가운데로 올려 열렬한 지지를 받았고, 50대 베테랑 배우들과 연출 이기쁨, 작가 김솔지, 작곡가 연리목 등 장르 불문 맹활약 중인 젊은 여성 창작자 3인이 머리와 마음을 맞대어 만들어 그 의미가 특별하다. 또, 평일 낮 공연 회차를 편성해 실버세대 접근성을 높인다.
● 서울시오페라단 : 안젤라 게오르규, 사무엘 윤, 이지현, 황수미 등 화려한 출연진
서울시오페라단은 ‘만남’을 주제로 오페라 명작 3편과 연말의 화려한 마침표를 찍는 ‘오페라 갈라’까지 풍성한 라인업을 선보인다. 베르디 대표작 ‘라 트라비아타’(4월 25~28일)는 190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오페라극장의 주역 가수로 활동 중인 소프라노 이지현이 비올레타 역으로 국내 데뷔 무대에 오른다.
하반기에는 푸치니 오페라 중 가장 드라마틱한 작품으로 손꼽히는 ‘토스카’(9월 5~8일)를 선택했다. 현존 최고의 푸치니 스페셜리스트라 불리는 안젤라 게오르규가 토스카 역을 맡아 세계적인 디바의 무대를 한국 오페라 애호가들에게 선사한다.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의 주역으로 활동하며 유럽 무대에서 인정받은 사무엘 윤이 스카르피아 역으로 호흡을 맞춘다.
가난하지만 예술을 사랑하는 젊은 보헤미안들을 그린 푸치니 걸작 ‘라보엠’(11월 21~24일)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 후 세계적인 소프라노로 거듭난 황수미가 미미 역으로 출연하며, 수원시립교향악단의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인 최희준과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합류하며 음악적 완성도를 높인다.
● 서울시무용단 : 뉴욕 무대를 사로잡은 한국무용의 저력
서울시무용단은 2023년 뉴욕을 뜨겁게 달군 ‘일무’와 신작 ‘국수호, 김재덕의 사계’로 다시 한 번 기지개를 켠다. 세종문화회관의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 잡은 ‘일무’는 뉴욕 링컨센터 버전을 처음으로 한국 관객에게 선보인다. 2022년 초연 시 서울시무용단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정구호와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았던 ‘일무’는 지난해 5월 재공연에서 초연의 ‘가인전목단’을 덜어내고 3막 ‘죽무’를 추가해 총 4막 구성으로 수정한 버전을 선보인 바 있다.
이어진 7월 뉴욕 링컨센터 코리안 아츠 위크 초청 공연에서는 ‘죽무’를 3인무로 더욱 간결하게 수정, 보완해 한국무용 특유의 정중동의 호흡을 살리고 공연에 내재된 에너지를 극대화함으로써 현지 관객의 열렬한 호응을 끌어냈다.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현지 언론, 아티스트와 관객들의 열광 속에 전 회차 매진을 기록한 뉴욕 버전의 ‘일무’(5월 16~19일)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신작 ‘국수호, 김재덕의 사계’(10월 31일~11월 3일)는 한국무용의 거장 국수호와 역동적인 안무로 압도적인 무대를 선보여온 김재덕이 손을 잡았다. 탄생과 소멸, 끝없이 순환하는 ‘사계절’을 모티브로 삼아 춘하추동의 아름다움을 한국무용으로 승화해 낸다. 대가 국수호의 완숙미에 역동적인 김재덕의 안무가 더해지는 ‘사계’는 M씨어터에서 펼쳐진다.
● 서울시합창단 : 잃어버린 낭만을 찾아서, 음악사적 걸작 등 다채로운 레퍼토리
서울시합창단은 2024년 ‘낭만’을 주제로 합창의 매력을 뽐낸다. 음악사적 걸작과 소품곡들을 균형 있게 구성해 여러 작곡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M 컬렉션 시리즈’ 그 첫 번째는 ‘고전과 낭만’(4월 4·5일)을 주제로 하이든의 후기 작품과 브람스의 뛰어난 성악 작곡 기술이 돋보이는 곡 등을 들려준다.
두 번째 시간 ‘낭만적인 낭만’(10월 17·18일)은 낭만주의를 풍미했던 슈만과 브람스를 중심으로 마음을 밝혀주는 하모니를 들려줄 예정이다.
‘가곡시대’(6월 21일)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우리 가곡으로 만나는 무대로, 방송인 이금희의 구성력 있는 작품해설로 만날 수 있다. 전석 매진을 기록하는 인기 공연 ‘한여름의 메시아’(8월 8·9일)는 서울시립교향악단 부지휘자 데이비드 이가 합류해 앙상블을 완성한다. 아름다운 하모니로 꾸려지는 서울시합창단의 크리스마스 선물 ‘송년음악회’(12월 5일)는 클래식과 캐럴, 대중음악 등 폭 넓은 레퍼토리로 축제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다.
● 서울시국악관현악단 : 전통을 흡수하고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는 실험과 도전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은 우리 음악에 대한 흥미로운 탐색의 시간을 안겨주기 위한 무대를 준비한다. 동시대 최정상 연주자를 조명하는 ‘명연주자 시리즈’(3월 22일), 현대적 관점으로 국악을 재해석하며 새로운 전통을 쓰는 ‘실내악 시리즈’(5월 10일/10월 25일), 국악의 다양한 변주 가능성을 넓히는 정기연주회(7월 3일/9월 26일/11월 29일)까지 2024년에도 국악관현악의 무한한 확장을 실험한다.
지난 2년간 김성국 단장의 재임기간 동안 놀라운 변화와 성장을 보여줬던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은 새로운 수장을 맞이하는 2월 이후 세부 프로그램을 추가 공개할 예정이다.
● 기획공연·공동주최 : 장르의 외연을 넓히고 기획의 다양성을 선사
세종문화회관은 서울시예술단 공연뿐만 아니라 기획공연과 공동주최 공연을 통해 시대를 넘어 영감을 주는 명작들을 새로운 관객에게 전달한다.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를 초청해 선보이는 세종문화회관 기획 시리즈는 안토니오 파파노가 이끄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21세기 건반의 여제’ 피아니스트 유자 왕의 공연(10월 1일)을 준비한다.
‘가장 완벽한 필름콘서트 경험’ 해리 포터 필름콘서트가 다섯 번째 시리즈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인 콘서트’(5월 11·12일로 돌아온다. 해리 역의 다니엘 래드클리프는 게리 올드만과 같은 대선배들과의 작업으로 ‘불사조 기사단’을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로 꼽기도 했다. 대형 스크린 위의 마법 세계, 그 위로 더해지는 오케스트라의 선율은 필름 콘서트 경험을 한 차원 더 높은 곳으로 이끌어 준다.
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 등으로 유명한 일본 스타 극작가 미타니 코키 작품 ‘웃음의 대학’(5월 11일~6월 9일)은 국내 2008년 초연 이래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연극으로, 오는 5월부터 6월까지 S씨어터에서 관객들의 웃음을 책임진다.
김성녀의 뮤지컬 모노드라마 ‘벽 속의 요정’(10월 31일~11월 10일)은 연출가 손진책, 극본가 배삼식까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의 이름이 나란히 올라가 있는 작품으로, 배우 김성녀가 1인 32역을 완벽하게 소화해 낸다.
러시아 황실 발레의 세련미, 정교함, 화려함을 자랑하는 유니버설발레단 ‘호두까기인형’(12월 19~30일)은 2024년에도 어김없이 대극장에서 축복이 가득한 크리스마스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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