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리뷰] 엄청난 오케스트라 소리 뚫은 세명의 헬덴성악가...어려운 바그너가 들렸다

음악감독 얍 판 츠베덴의 첫 정기연주회 ‘발퀴레’
홍콩필하모닉 음반서 호흡 맞춘 성악가와 랑데부
​​​​​​​업그레이드 서울시향 연주력 극적인 흥분감 유지

민은기 기자 승인 2024.02.13 17:25 | 최종 수정 2024.02.15 11:15 의견 0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이 리하르트 바그너의 ‘발퀴레’로 첫 정기연주회 신고식을 마친 가운데 출연 성악가들이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판 츠베덴 감독, 베이스바리톤 팔크 슈트루크만, 소프라노 앨리슨 오크스, 테너 스튜어트 스켈턴. ⓒ서울시향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서울시향 음악감독으로서 첫 정기연주회 프로그램을 바그너로 선택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관현악을 먼저 작곡하고 노래 선율을 썼던 바그너의 악극은 거대한 세계를 총체적으로 구현하는 ‘교향적 오페라’이기에 중요합니다.”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이 리하르트 바그너의 ‘발퀴레’로 첫 정기연주회 신고식을 마쳤다.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4부작(라인의 황금·발퀴레·지크프리트·신들의 황혼) 중 두 번째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바그너는 바이에른의 국왕 루트비히 2세의 전폭적인 지원과 후원 덕에 바이로이트 극장을 지었고, 1876년 ‘니벨룽의 반지’ 전작을 개관 기념작으로 올렸다.

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판 츠베덴과 서울시향은 1막만을 콘서트 버전으로 선보였다. 오페라 버전의 전막 공연은 러닝타임이 거의 5시간 정도로 길다. 엄청난 의상과 무대세트와 조명과 소품 등이 필요한 대작이다. 하지만 콘서트버전은 시각적 요소가 거의 배제된 상태이기 때문에 온전히 바그너의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어렵다는 바그너 오페라와의 첫 데이트로 안성맞춤 초이스다.

소프라노 앨리슨 오크스와 테너 스튜어트 스켈턴이 1막 3장에 나오는 ‘겨울 폭풍은 5월 봄기운에 밀려나고’와 ‘그대가 바로 봄입니다’를 부르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이 리하르트 바그너의 ‘발퀴레’로 첫 정기연주회 신고식을 마친 가운데 출연 성악가들과 함께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테너 스튜어트 스켈턴, 판 츠베덴 감독, 소프라노 앨리슨 오크스, 베이스바리톤 팔크 슈트루크만. ⓒ서울시향 제공


세 명의 성악가가 무대에 섰다. 지크문트 역은 테너 스튜어트 스켈턴이 맡았다. 호주 출신으로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요즘 가장 주목받는 헬덴테너로 손꼽힌다. 바그너 오페라 전문 가수들은 거대하고 장중한 오케스트라 소리를 뚫고 나오는 드라마틱하고 강렬한 소리를 가지고 있어서 헬덴테너(helden tenor·영웅적 테너)로 불린다. 지클린데를 부르는 소프라노 앨리슨 오크스는 영국 출신으로 독일에서 공부한 드라마틱 소프라노다. 훈딩 역을 맡은 베이스바리톤 팔크 슈트루크만은 독일 출신으로 바이로이트 무대에 선 헬덴바리톤이다. 빈 국립오페라와 베를린 슈타츠오퍼에서 궁정가수로 임명됐다.

세 사람 모두 이번이 첫 한국 방문이다. 스튜어트 스켈턴과 팔크 슈트루크만은 2015년 판 츠베덴이 지휘한 홍콩 필하모닉의 역사적인 음반 ‘니벨룽의 반지’에도 참여했다. 이미 한번 호흡을 맞춰보았으니 더 편안하게 노래할 수 있었다.

‘라인의 황금’에서 절대 반지를 둘러싼 게르만 신화의 주신 보탄, 거인족, 난쟁이 알베리히 등의 싸움을 보여준 바그너는 예고된 신들의 멸망을 막기 위해 보탄이 낳은 쌍둥이 남매 이야기를 ‘발퀴레’ 1막에서 들려준다.

거센 폭풍우와 추적의 긴박감을 표현하는 전주곡이 울리며 1장이 시작됐다. 뒤쫓는 무리들의 공격을 피해 도망친 지크문트가 사냥꾼 훈딩의 오두막으로 달려들어 온다. 훈딩의 아내 지클린데는 탈진한 지크문트를 위해 벌꿀 술을 준다. 지크문트와 지클린데는 만나자마자 서로에게 격렬하게 끌리는 감정을 느낀다. 사실 두 사람은 보탄 신이 인간 여인에게서 낳은 쌍둥이 남매다.

소프라노 앨리슨 오크스, 테너 스튜어트 스켈턴, 베이스바리톤 팔크 슈트루크만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2장이다. 집에 돌아온 훈딩은 낯선 젊은이가 자기 아내와 닮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의구심을 품은 훈딩이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자 지크문트는 출신을 밝히며 어린 시절 온 가족과 헤어지게 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강제 결혼을 당하는 처녀를 구하려고 싸우다 도망쳐 왔다고 말한다. 훈딩은 지크문트를 추격하던 사람들과 자신은 한편이라고 말하고 “손님에 대한 예의로 하룻밤은 재워 주겠지만 내일은 결투를 준비하라”고 말한다. 훈딩은 지클린데를 침실로 보내고 자기도 자러 간다.

3장이다. 혼자 남은 지크문트는 ‘위급할 때 칼을 주겠다’는 아버지의 약속을 기억하며 ‘칼의 독백’을 노래한다. 이때 지클린데가 훈딩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침실에서 나와 지크문트에게 온다. 지클린데는 납치되어 끌려와서 결혼식을 치를 때 한 노인이 나타나 거대한 물푸레나무에 칼을 꽂아 놓고는 “영웅만이 이 검을 뽑을 수 있다”고 예언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침 밖은 보름달이 환히 비추는 봄밤이다.

두 사람은 과거를 이야기하다가 불같은 열정을 느끼며 노래를 시작한다. 지크문트는 ‘겨울 폭풍은 5월 봄기운에 밀려나고’를 노래하고, 지클린데는 ‘그대가 바로 봄입니다’라고 화답한다. 이름을 지어 달라는 요청에 지클린데는 ‘승리’라는 뜻의 지크문트라는 이름을 정해주고, 지크문트는 물푸레나무에서 칼을 뽑아 ‘노퉁’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폭풍 같은 사랑과 환희에 휩싸인 두 주역은 함께 음악의 절정에 도달한다. 하프 6대가 쏟아내는 음악이 카타르시스를 더블로 만들었다.

음악평론가 류태형(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은 “바그너는 헤비메탈 음악의 비조다. 맨손으로 소도 때려잡을 듯한 풍채와 강력한 가창력의 세 명 성악가의 노래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라며 “업그레이드 된 서울시향 연주력은 극적인 흥분감을 유지시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년 국립오페라단과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도 기대하게 한다”고 덧붙였다.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이 모차르트의 교향곡 40번을 연주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판 츠베덴과 서울시향은 1부에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교향곡 40번을 연주했다. 모차르트의 모든 교향곡(41곡) 가운데 가장 잘 알려져 있고 가장 자주 연주되는 작품이다. 빈에서 모차르트와 피아노 경연을 벌이기도 했던 이탈리아 작곡가 무치오 클레멘티는 7중주로 편곡된 이 곡을 듣고는 “모차르트는 과거의 현재의 거장들, 그리고 후대에 올 거장들까지 모두 뒤로 제치며 음악의 한계를 뛰어 넘었다”고 평가했다.

1악장의 주제 선율은 누구나 들어보면 ‘아 이거’라고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유명하다. 초조함과 조금함이 믹스된 소리는 한쪽 방향으로 힘껏 몰아붙이는 힘을 가지고 있다. 사실 이 선율은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케루비노의 아리아 ‘내가 누군지 나도 몰라요’의 리듬과 일치한다. 사춘기 소년의 내면을 지배하는 극도의 흥분을 표현한 리듬인 셈이다. 안단데 2악장은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세계를 보여준다.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음악은 갈수록 투명해지고 개별 악기의 선율이 명료한 울림을 들려준다.

3악장 미뉴에트는 여러 면에서 궁정 춤곡인 미뉴에트의 본질과 어긋난다. 음악적 긴장감이 고조된다. 4악장은 1악장과 수미상관을 이루며 이중 반복의 소나타 형식을 보여준다. 모든 과정이 정확하고 치밀한 계산 안에서 진행된다.

류태형 평론가는 “판 츠베덴은 토스카니니와 아르농쿠르를 합쳐 놓은 듯한 개성 있는 지휘로 모차르트 40번을 선보였다”라며 “빠르게 지나가는 악구 속에서 치밀하게 직조된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접하며 새삼 감탄하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eunki@classicbiz.kr

저작권자 ⓒ ClassicBiz,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