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리뷰] 빨랐던 블레하츠 vs 느렸던 바르샤바필...티격태격과 밀당 ‘상반된 해석’

안제이 보레이코 지휘 부천아트센터 공연
제대로 못살린 슈만 협주곡 ‘아쉬운 평가’
브람스 교향곡 2번도 액센트없는 밋밋연주

민은기 기자 승인 2024.02.14 19:26 | 최종 수정 2024.02.15 10:32 의견 0
피아니스트 라파우 블레하츠가 13일 부천아트센터에서 슈만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한 뒤 지휘자 안제이 보레이코와 손을 맞잡고 인사하고 있다. ⓒ부천아트센터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매일 홈런을 칠 수는 없다. 어떤 때는 단타와 볼넷만으로 승리를 거머쥐는 날도 있다. 시원한 한방은 없지만, 쥐어 짜내고 짜내 차곡차곡 점수를 쌓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다.

안제이 보레이코가 지휘하는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그리고 협연자로 나선 피아니스트 라파우 블레하츠가 그랬다. 13일 부천아트센터. 세계 유명 오케스트라와 최고의 연주자를 선보이는 ‘BAC 프라임 클래식 시리즈’의 올해 첫 공연이 열렸다.

바르샤바필 음악감독으로서 다섯 번째 시즌을 맞은 보레이코는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폴란드 현대 음악가 비톨드 루토스와프스키의 ‘작은 모음곡’으로 오프닝을 열었다. 1950년 바르샤바 라디오의 위촉을 받고 챔버 오케스트라용으로 만들었으나, 이듬해 심포니 오케스트라용으로 재탄생한 곡이다. 폴란드 민속음악 특유의 생기와 에너지가 넘치는 네 개의 소품으로 구성됐다.

피콜로와 금관이 일으키는 옅은 긴장감(제1곡 ‘피리’)과 유머·해학이 믹스된 익살스러운 목관의 움직임(제2곡 ‘후라 폴카)이 인상적이다. 이어 클라리넷·플루트·오보에 등 목관 파트의 앙상블로 시작해 현악 파트의 따뜻한 화성과 부드러운 선율이 강조됐고(제3곡 ‘노래’), 앞 곡에 등장한 긴장과 대조의 요소가 하나로 합쳐지며 피날레로 나아갔다.(제4곡 ‘춤’) 10분을 살짝 넘기는 러닝타임은 바르샤바필의 ‘반갑습니다 인사’ 같았다.

피아니스트 라파우 블레하츠가 13일 부천아트센터에서 슈만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고 있다. ⓒ부천아트센터 제공
피아니스트 라파우 블레하츠가 13일 부천아트센터에서 슈만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고 있다. ⓒ부천아트센터 제공
피아니스트 라파우 블레하츠가 13일 부천아트센터에서 슈만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뒤 지휘자 안제이 보레이코와 포옹하고 있다. ⓒ부천아트센터 제공


이어 제15회 쇼팽 콩쿠르(2005년) 우승자 라파우 블레하츠가 나왔다. 로베르트 슈만이 남긴 유일한 피아노 협주곡(Op.54)을 들려줬다. 한국에서의 첫 협주곡 연주다. 원래 단악장으로 작곡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판타지’에 새로 2악장과 3악장을 덧붙여 피아노 협주곡으로 만들었다. 클라라 슈만의 제안을 따른 것인데, 이 ‘사랑스러운 격려’에 힘입어 낭만주의 피아노 협주곡의 기념비적인 작품이 나왔다.

화려하고 패기 넘치는 피아노 도입부 이후에 오보에가 아름다운 멜랑콜리 선율을 풀어 놓으며 1악장이 시작됐다. 블레하츠는 다소 빠르게 달렸고 오케스트라는 그에 비해 느렸다. 깜놀할 정도의 엇박자 템포가 당황스러웠다. 서로를 배려하지 않은 티격태격으로 읽혀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긴장감 넘치는 밀당으로 해석될 수도 있었다.

2악장은 템포의 차이보다는 짧게 끊어가는 피아노 리듬과 길게 뽑아내는 오케스트라 선율 라인이 대조를 이뤘다. 블레하츠 특유의 서정적 터치는 관현악의 노래에 반짝임을 덧입혔다.

3악장은 피아노의 빠른 템포와 순간적 변화가 전면에 부각됐다. 조급해 보였다. 안정적 보다는 위험을 무릅쓴 과감한 터치다. 이것 역시 케미가 안맞은 불안정한 상태로 인식할 수도 있지만, 전체 과정에 일부러 낯선 일관성을 뿌려 놓았다는 느낌도 들었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색다른 슈만이다.

앙코르에서 블레하츠는 ‘우리가 알고 있는 본색’으로 돌아왔다. 쇼팽의 왈츠 Op.64-2와 프렐류드 Op.28-7을 들려줬다. 왈츠는 자기 마음대로 슬로와 퀵을 오가며 속도조절하는 스킬이 놀라웠다. 1분이 채 안되는 프렐류드는 굿바이 시그널을 알리는 끝마침 음악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발을 둥둥둥 구르며 한곡 더를 유도하는 장면은 흐뭇했다. 맨 뒤쪽에 있는 팀파니 연주자가 블레하츠와 보레이코가 포옹하는 장면을 사진 찍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음악평론가 류태형(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은 “슈만 피아노 협주곡은 오케스트라와 안맞은 부분이 많았고 그 과정에서 피아니스트의 몫도 분명히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앙코르 왈츠는 자유자재의 손놀림을 보여줬다. 속도를 늘이고 줄이는 아티스트다운 해석이 곧 있을 리사이틀(2월 27일 예술의전당)을 기대하게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지휘자 안제이 보레이코와 바르샤바 필하모닉이 13일 부천아트센터에서 브람스의 교향곡 2번을 연주하고 있다. ⓒ부천아트센터 제공
지휘자 안제이 보레이코와 바르샤바 필하모닉이 13일 부천아트센터에서 브람스의 교향곡 2번을 연주하고 있다. ⓒ부천아트센터 제공


보레이코와 바르샤바필은 2부에서 요하네스 브람스의 교향곡 2번(Op.73)을 연주했다. 브람스는 뒤에서 들려오는 ‘거인’(베토벤)의 발자국 소리에 중압감으로 느끼며 무려 21년 만에 교향곡 1번을 내놓았다. 1번의 성공에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었을까. 교향곡 2번은 불과 4개월 만에 완성됐다.

보레이코는 1악장과 2악장을 맨손으로 지휘했다. 온화한 소리다. 밝음과 편안함이 흘렀다. 물 흐르듯, 단원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듯한 지휘다. 그게 약점이 됐다. 너무 포근해 나른함이 몰려와 아쉬웠다.

3악장과 4악장에서는 지휘봉을 사용했다. 목관의 따뜻한 기운 위로 현의 날카로운 충돌이 잠시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들었지만 끝까지 몰아가지 못했고,(3악장) “나를 한번 봐주세요”라고 큰 소리를 낼 법도 한데, 전체적으로 그냥 바닥에서 소리가 조용히 흘렀다.(4악장) 액센트 없는 밋밋한 억양이다. 그래도 점수 후하게 주면 ‘감칠맛 나는 연주’다.

앙코르는 폴란드 작곡가 그라지나 바체비치의 ‘오베레크’를 선사했다. 지휘자는 무대 중앙에서 크게 박수를 치며 악단을 위한 격려를 유도하기도 했다.

류태형 평론가는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한 ‘작은 모음곡’과 ‘오베레크’가 가장 멋졌다”며 “구석구석 잘 보이는 소리가 다이아몬드처럼 작품을 빛나게 했다”고 말했다. 정작 메인디시보다는 반찬으로 배를 채웠다고 에둘러 표현한 것.

그러면서 브람스 교향곡 2번에 대해서는 “곡에 충실한 명연주는 아니었지만 음향에 포커스를 맞추니 곳곳에서 관과 현이 어우러지는 부분들이 많았다”라며 “악기로서의 홀의 중요성이 다시금 부각되는 순간이었다”며 부천아트센터의 어쿠스틱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블레하츠와 바르샤바필이 100%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은 열흘간의 아시아 투어에서 9번의 공연 강행군에 따른 피로 누적 때문이리라. 11일 요코하마에서 밤에 연주를 마치고 한국으로 들어와 12일 하루를 쉬고 13일과 14일 연속으로 무대에 서는 일정은 컨디션 조절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백브리핑> 바르샤 필하모닉은 쇼팽 콩쿠르와 한몸이다. 우승자를 가리는 결선은 예외 없이 이 악단이 협연을 맡는다. 곡목도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아니면 2번이다. 우승한 피아니스트는 바르샤바필과 세계 각지에서 협연한다.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 조성진도 이듬해 이 악단과 뉴욕에서 공연했다. 폴란드 출신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 비에니아프스키를 기리는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역시 이 악단이 결선 무대를 관장한다.

1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안제이 보레이코가 지휘하는 바르샤바필 공연에서는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협연했다. 마치 콩쿠르 현장에 있는 듯한 설렘과 긴장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했다. 앙코르는 쇼팽의 녹턴 2번.

바르샤바필은 1부에서 부천아트센터 공연과 마찬가지로 루토스와프스키의 ‘작은 모음곡’을 들려줬고, 2부에서는 베토벤 교향곡 7번을 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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