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리뷰] 키안 솔타니 ‘드보르자크 첫사랑’ 두번 어루만졌다...첼로 협주곡·앙상블로 울컥 눈물

마르코 레토냐 지휘한 서울시향 무대 데뷔
앙코르에서 가곡 편곡버전 연주해 감동 더블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5번 다채로운 매력 발산
​​​​​​​타악기 주자들의 부지런한 연주 흥미진진

민은기 기자 승인 2024.03.20 18:51 | 최종 수정 2024.03.22 09:16 의견 0
첼리스트 키안 솔타니가 마르코 레토냐가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호흡을 맞춰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을 연주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첼리스트 키안 솔타니(1992년생)는 올해 서른두 살이다. 서울시향이 매달 발행하는 매거진 ‘SPO’ 3월호에 인터뷰가 실렸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브레겐츠라는 아주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사방이 산과 자연으로 둘러싸인 곳인데 “소들과 말들을 이웃처럼 느끼며 살았던 시골이다”고 말했다. 이란 출신의 부모님은 음악가였다. “그들을 통해 음악과 첼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4세 때 처음 첼로를 시작했고, 12세에 바젤 음악원에서 이반 모니게티의 수업을 들었다. 모니게티에 대해서 “인생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주신 분이다”라며 “음악적으로 말해 전문 연주자가 되고 싶도록 해주었다”고 밝혔다. 2014년 안네-소피 무터 재단의 장학생으로 선발됐고,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무터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전문 연주자로서의 자세를 많이 배웠다. 무대에서의 존재감과 표현에 대해서도 배웠다. 멋진 경험이었다”고 설명했다.

2023년부터 빈 국립음대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들로부터 배우는 것이 많다고들 하는데, 진짜다”라며 “제 자신의 연주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놀라운 일이다”라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2023/24 시즌 동안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의 ‘포커스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음악은 어떤 면에서 위험하고, 그것 때문에 언제나 안전한 템포를 가져갈 필요는 없다”라며 “가끔은 순간의 흥분을 자아내는 부분을 돌파해서 위험을 감수하는 게 필요하다. 제가 말한 위험이란 100% 완벽하지 않더라도 음악이 흥미진진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안전제일주의 대신에 도전하는 음악이 자신의 모토임을 밝힌 것이다.

첼리스트 키안 솔타니가 마르코 레토냐가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호흡을 맞춰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을 연주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15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키안 솔타니는 마르코 레토냐가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안토닌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Op.104)’을 협연했다. 전날(14일)도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프로그램으로 팬들을 만났다. 서울시향 데뷔 무대였고, 레토냐와도 첫 공연이었다. 공연에 앞서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을 선곡한 이유를 밝혔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첼로 협주곡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40분이 넘는 대규모 작품이죠. 1악장에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어요. 영웅적이죠. 2악장은 훨씬 더 비극적이에요. 드보르자크는 짝사랑했던 여인(처형 요세피나)의 부음을 듣고 2악장에 노래를 넣어요. 그의 가곡 ‘혼자 있게 내버려 두세요(Op.82-1)’로, 연인이 가장 좋아했던 노래죠. 작곡가는 2악장에서 사랑하는 이에게 헌정한다는 인용을 하고 있어요. 이 내용은 2악장을 아주 비극적으로 만들죠. 3악장은 민요의 요소들과 리듬으로 가득해요. 악장 말미에는 다시 어두워졌다가 가곡이 회상되죠. 슬픈 레퀴엠 같은 마무리예요. 완벽한 작품이고 멋진 협주곡입니다.”

솔타니는 한때 루이지 보케리니가 연주했던 ‘런던 엑스 보케리니’ 스트라디바리우스 첼로로 드로보자크의 ‘첫사랑’을 애절하게 어루만졌다. 드보르자크는 체코 보헤미아의 작은 마을에서 여관과 정육점을 운영하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들이 정육점을 이어받기를 원했지만, 아들은 음악에 대한 열정을 포기할 수 없었다. 큰아버지의 응원 덕에 음악의 꿈을 이어갈 수 있었다.

프라하의 싸구려 하숙집을 전전하며 피아노 가정교사 노릇을 했다. 이때 금세공사의 두 딸인 요세피나 체르마코바와 안나 체르마코바를 가르쳤다. 소프라노 가수 지망생인 요세피나를 사랑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자신의 처지 때문에 고백을 하지 못했다. 결국 요세피나는 귀족과 결혼했다.

동생 안나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드보르자크와 결혼했다. 결혼 이후에도 드보르자크는 짝사랑녀 요세피나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고, 음악 활동을 하면서도 그의 남편인 카우니즈 백작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드보르자크는 비록 세 아이를 연속적으로 잃는 아픔을 겪었지만 알토 가수였던 안나와의 관계도 매우 좋았고 그 후 6명의 자녀를 뒀다.

솔타니는 요세피나의 흔적이 새겨진 ‘첼로 협주곡의 제왕’을 연주했다. 낭만 가득한 선율들과 비르투오소적 기교를 절묘하게 믹스해 첼로 고유의 매력을 극대화했다는 점, 극적인 악상과 치밀한 구성을 훌륭하게 구현해 브람스 스타일의 ‘교향적 협주곡’을 온전히 구현했다는 점에서 ‘제왕’이라는 별명은 적확한 표현이다.

또한 이 곡에는 드보르자크가 뉴욕의 국립음악원 원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거둔 음악적 성과들이 완숙한 필치로 집대성돼 있다. 신대륙의 대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웅대한 악상이 담겨있고, 음악원에서 만난 인디언과 흑인 학생들이 향유하던 음악에서 착안한 소재들도 녹아있다.

첼리스트 키안 솔타니가 마르코 레토냐가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호흡을 맞춰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을 연주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1악장은 나이아가라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관현악의 압도적 울림으로 출발했다. 솔타니의 거침없는 보잉이 이어졌다. 당당하고 활기찬 1주제는 슬라브인의 활력과 기상을 부각시켰고, 유려하고 애틋한 2주제는 그 내면에 자리한 향수를 자극했다.

2악장은 눈물 왈칵 악장이다. 보헤미아 숲과 들판의 정경이 아련히 떠오르고, 머나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절절해졌다. 중간부에서 비통하게 울려 퍼지는 선율은 드보르자크의 젊은 날의 가곡(4개의 가곡 Op.82 중 제1곡 ‘Lasst Mich Allein’)에서 가져왔다. 첫사랑이기도 했던 처형 요세피나에 대한 추억을 담고 있다.

3악장 자유로운 론도 형식의 피날레는 귀향 행진곡이다.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만 고향으로 다가갈수록 가슴은 두근거린다. 중간 중간의 에피소드를 구성하는 선율과 리듬은 보헤미아의 향토색으로 가득하다. 마지막은 드보르자크가 요세피나의 임종 소식을 듣고 덧붙인 진혼곡풍의 코다(종결부)가 장식했다.

첼리스트 키안 솔타니가 마르코 레토냐가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호흡을 맞춰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을 연주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연주를 마치고 퇴장했다가 커튼콜에 다시 나온 솔타니는 마이크를 잡고는 “감사합니다”라고 또렷한 한국말로 인사했다. 그리고는 “첼로 협주곡에 쓰인 가곡 원곡을 제가 직접 첼로 앙상블을 위한 곡으로 편곡했다”며 "영어로 번역하면 ‘혼자 있게 내버려 두세요(Leave me alone)’다”라고 말했다.

솔타니는 서울시향 첼로 단원 8명과 함께 애절하고 아름다운 슬픔을 토해냈다. 협주곡에 이어 첼로 앙상블 버전으로 드로브자크의 첫사랑을 한 번 더 어루만졌다. 관객 모두는 이제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자신의 리즈 시절을 회상하며, 나만의 그 사랑을 떠올렸으리라.

첼리스트 키안 솔타니가 마르코 레토냐가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호흡을 맞춰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을 연주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솔타니는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하는 베르린 슈타츠카펠레와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 음반을 발매했다. 여기에도 ‘혼자 있게 내버려두세요’가 실려 있다. 바렌보임은 솔타니의 음악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처음 만난 건 2013년 여름 스위스 바젤에서였어요. 그가 이끌던 서동시집 관현악단 오디션을 봤죠. 연주가 생각대로 잘 안 됐는데 다행히 그는 마음에 들어 했었던 것 같아요. 저를 첼로 수석으로 초청했죠. 그때부터 오케스트라 밖에서도 협업을 시작했어요. 그와 실내악을 비롯해 여러 연주를 했죠. 바렌보임과 연주하는 건 근사한 일이었습니다. 머릿속에 수많은 역사가 기록된 위대한 명인과 함께 하는 것과 같았죠. 그는 음악과 인생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솔타니는 이번 내한공연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서울의 이모저모를 발견하고 비빔밥과 불고기를 많이 먹고 싶다고 했다. 바라는 대로 모든 것을 하고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유난히 따뜻했던 음색과 섬세하고 풍부한 표현력을 유감없이 선보였다. 벌써 다음 만남이 기대됐다.

음악평론가 류태형(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은 “드로르자크 협주곡에서 솔타니의 첼로는 승차감 좋은 고급 스포츠카 같았다. 이따금 RPM을 올리며 의외의 순간을 만들어 갔다”며 “협주곡과 앙코르 모두 아름다운 과거가 슬픔과 위안을 머금고 주마등처럼 스쳐갔다”고 말했다.

마르코 레토냐가 서울시향과 호흡을 맞춰 프로코피예프의 교향곡 5번을 연주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슬로베니아 출신의 마르코 레토냐(1961년생)는 2부에서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교향곡 5번(Op.100)’을 지휘했다. 관현악과 오페라에서 방대한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있는 그는 2018년부터 브레멘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이자 상임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 전에는 슬로베니아 필하모닉 음악감독, 태즈메이니아 심포니 상임지휘자, 바젤 심포니 및 바젤 극장 상임지휘자, 스트라스부르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등을 역임했다.

프로코피예프가 이 곡을 쓰던 때는 2차 세계대전의 전황이 ‘붉은 군대’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던 시기였다. 1944년 여름에 작곡됐는데 “전쟁이 일어나 모두가 조국을 위해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을 때, 나도 무언가 위대한 일에 몰두해야 한다고 느꼈다”고 술회했다. 1945년 1월 독일군의 퇴각을 축하하는 행사장에서 작곡가 자신의 지휘로 초연돼 대성공을 거뒀다.

그는 작곡 동기에 대해 ‘자유롭고 행복한 인간, 그 막강한 힘과 순수하고 고귀한 영혼에 대한 찬가’를 쓰고 싶었다고 밝혔다. 모처럼 만에 선보인 ‘절대음악’이지만 배경에는 고난과 비애를 견뎌내고 도달한 승리와 환희가 자리하고 있으며, 민족적 색채도 완연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 곡은 당시 소비에트 당국이 창작가들에게 강요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의식하며 고심 끝에 내놓은 역작이기도 했다. 팀파니, 스네어 드럼, 탬버린, 트라이앵글, 베이스 드럼, 탐탐, 우드블록, 심벌즈 등 타악기를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피를 끓게 하고 심장을 뛰게 하는 선전 음악의 모습도 엿보인다.

마르코 레토냐가 서울시향과 호흡을 맞춰 프로코피예프의 교향곡 5번을 연주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마르코 레토냐가 서울시향과 호흡을 맞춰 프로코피예프의 교향곡 5번을 연주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민요풍의 소박한 주제 선율이 점진적으로 확장·고조돼 가는 가운데, 다양한 소재를 대위법적으로 어우러지게 만드는 작곡가의 완숙한 솜씨가 돋보인다. 여유로운 흐름 속에서 목가적 정취, 민중의 열정과 투쟁, 장엄한 축전에 대한 기대 등이 떠오른다.(1악장)

이어 프로코피예프 특유의 토카타풍 스케르초가 이어졌다.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활달함이 질주하는 가운데 관악 앙상블이 도드라지는 삽입부가 돌출됐다.(2악장)

환상적인 음률을 배경으로 투명한 서정성과 향수 어린 애상감이 교차했다. 중간의 어둡고 격렬한 고조부에서 칸타타 ‘알렉산드르 넵스키’의 전투 장면이 연상됐다.(3악장)

4대의 첼로가 코랄풍으로 연주하는 도입부를 지나면, 활달하고 즐거운 흐름이 큰 물결을 이룬다. 사이사이 다채로운 에피소드들이 고개를 내밀며 떠들썩하고 열띤 ‘축전적’ 종결을 향해 질주했다.

류태형 평론가는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5번이 이렇게 다채로운 곡이었나”라며 “레토냐는 음반에서 들을 수 없었던 풍부한 색채감과 곡의 육체적 운동성을 부각시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지런히 움직인 타악기 주자들과 프로코피예프의 신랄함을 표현한 클라리넷 수석 임상우의 연주가 돋보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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