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손민수 객원기자(음악칼럼니스트)] 일반적으로 우리가 많이 알고 듣는 수난곡은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마태수난곡’과 ‘요한수난곡’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마가수난곡’이 공연된다고 해 상당한 관심을 가졌다. 지난 3월 14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렸다.
공연시간을 보자면 마태수난곡은 약 2시간 30분, 요한수난곡은 2시간이란 긴 시간동안 연주돼 여차하면 지루해 질 수 있다. 이번 마가수난곡 공연은 1시간이 조금 넘는 곡이라 부담이 덜했다.
음악 애호가와 가톨릭이나 기독교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듣지는 않았어도 수난곡이란 이름을 대부분 경험했을 것이다. 수난곡은 종교적인 곡으로 부활절을 앞둔 고난 주간에 예수의 수난사를 읽는 가톨릭의 전통에서 시작됐다. 초반엔 단순히 낭독으로 되었고 점차 음악의 발전에 따라 배역이 생기고 반주, 아리아, 레치타티보가 생기면서 바로크시대에 이르러 오늘날의 수난곡 형태가 완성됐다.
복음사가는 복음서를 쓴 사람을 일컫는 말로 수난곡을 이끌어가는 중심이라고 보면 된다. 테너 홍민섭이 복음사가를 맡았고 베이스 윤종민이 예수를 맡았다. 소프라노 송승연, 카운터테너 윤진태, 테너 유종훈이 출연했다. 그리고 박승희는 바흐솔리스텐서울 콰이어와 바흐솔리스텐서울 바로크앙상블을 지휘했다.
이번 공연의 작곡가인 라인하르트 카이저(1674~ 1739)는 우리가 흔히 듣는 작곡가는 아니다. 그가 쓴 작품에 비해 오늘날 전해지는 악보가 적은 것이 원인일 수 있다. 이 마가수난곡도 진위여부의 논란이 있다. 원본이 아닌 바흐가 필사로 작곡가를 표기한 필사본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라인하르트 카이저는 독일의 오페라 작곡가로 100편이 넘는 오페라를 썼다. 요한 아돌프 샤이베는 카이저를 요한 쿠나우,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게오르크 필리프 텔레만과 동등하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작품은 수십 년 동안 거의 잊혀졌다.
카이저는 오르간 연주자이자 교사인 고트프리드 카이저(1650년경 출생)의 아들로 태어나 마을의 다른 오르간 연주자로부터 교육을 받았고, 11세부터 라이프치히에서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직계 선배인 요한 셸레와 요한 쿠나우와 공부했다. 함부르크에 정착했던 시절 중 1703년부터 1709년까지 카이저는 귀족을 위한 오페라 하우스와 다르게 오페라 하우스를 공공 기관에서 일주일에 2~3회 공연하는 상업 시설로 바꾸기도 했다.
마가수난곡 첫 부분은 ‘Jesus Christus ist um unsrer Missetat willen verwundet(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로 상처를 입었다)’라는 구절로 합창이 시작됐는데 이 구절이 원제이기도 하다. 먼저 바로크앙상블의 전주가 시작되고 이어 합창의 첫 구절이 시작됐는데 약간의 긴장감이 느껴졌지만 무난한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복음사가를 맡은 테너 홍민섭의 레치타티보가 시작되자 왜 그를 초청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초연이라고 느낄 수 없도록 안정적으로 풀어나가며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어 다른 배역을 맡은 솔리스트들이 등장하며 한 작품의 역할들을 보여주었다. 또한 전면에 스크린을 두어 관객에게 한글자막을 보여줘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집중도를 올려주었다. 공연장에서 만난 지인은 수난곡을 처음 접했다고 한다. 그러나 종교적 내용을 알고 있으니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연주 초반에는 필자도 모르는 곡이라 리플릿에 적혀있는 가사를 보면서 귀로만 연주를 감상하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리플릿을 접고 공연에만 눈과 귀가 집중 할 수 있는 연주가 되어 있었다.
솔리스트 대부분이 독일어권에 공부를 해 딕션(발음)에 대해선 불안함이 없었으나 종종 무슨 연유인지 발음이 들리지 않는 부분들도 꽤나 흥미롭게 느껴졌다. 아리아를 노래할 때 앞으로 나오는 위치 이동이 있었다. 대부분 발소리를 죽여 계속 진행되는 레치타티보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중간에 인터미션이 22번곡인 ‘O hilf, Christe, Gottes Sohn’이 끝나고 있었는데 그냥 쭉 이어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인터미션이 끝나고 2부가 시작됐다. 복음사가의 레치타티보로 시작되는 부분인데 살짝 해프닝이 발생했다. 복음사가가 다른 부분을 노래했지만, 차분히 다시 원래 위치를 찾아 시작됐다. 페이지를 잘못 넘겨 놓은 것 같았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자연스럽게 다시 이어가는 모습에 바흐솔리스텐과 솔리스트의 노련함이 묻어났다.
얼마 후 소프라노의 아리아가 이어졌다. 바로크 목관악기 특성상 키가 없어 연주하기 어렵지만 음정과 호흡이 불안해 프레이즈가 끊기곤 했다. 리드가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포지티브 오르간 소리도 다른 악기에 비해 볼륨을 너무 절제한 느낌이 들었다.
후반부에 솔리스트들의 소리는 초반의 긴장감이 많이 풀어져 듣기 편안했다. 그렇지만 정작 긴장을 해야 하는 다른 곳에서는 긴장이 풀린 느낌이 조금 아쉽기도 했다. 지극히 개인적 생각이지만 간혹 솔리스트 중 배역에 맞지 않는 선택이 아쉬웠지만 전체적으로 그들의 노력을 충분히 보여준 연주였다.
연주가 끝났을 때의 감정은 바흐가 쓴 수난곡의 모델이 된 마가수난곡이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왔음은 사실이다. 또한 수난곡 연주에서는 일반적으로 앙코르가 없지만 이번 연주에서는 합창부분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들려주었는데 그 또한 참신했다.
음악감독이자 지휘자인 박승희의 앙코르 전 멘트대로 바흐의 수난곡에 비해 길지 않고 많이 연주되기를 바란다는 말에 필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라면 라인하르트 카이저와 마가수난곡을 검색해 보길 바란다. 그가 어떤 작곡가였고 이 곡이 어떠한 곡인지 이 글에 모두 담지 못해 아쉽다. 이와 더불어 이 마가수난곡이 우리나라에서 많이 알려지기를 바란다.
이번 공연이 좋은 점도 있었고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그것을 떠나 바흐솔리스텐 서울이 보여주고 알리고 싶은 부분에 있어서는 성과가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작곡가를 꺼냄과 동시에 숨겨진 우리에게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을 소개한 것에 있어 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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