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손영미 객원기자(극작가·시인·칼럼니스트)] 푸른 신록이 싱그러운 6월입니다. 올해도 벌써 절반이 가고 있습니다. 이제 초여름으로 날씨가 점점 더워지는 때, 원두막 아래 달달한 수박이 반가운 계절입니다. 그 햇살 찬란한 초여름 날, 우리 가곡 ‘옛 동산에 올라’로 우리들의 고향을 소환해 봅니다.
구성지고 찰진 소리의 바리톤 최현수의 연주입니다. 풀피리 꺾어 불던 까까머리 어린 시절, 고향 언덕이 사뭇 그리워지는 노래입니다.
이곡을 작곡한 홍난파(본명 영후) 작곡가의 생애와 작품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홍난파 (1898.4.10~1941.8.30)는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활초리 태생으로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였습니다. 젊었을 때는 도쿄 신교향악단의 제1바이올린 연주가였으며 조선음악가협회 상무이사를 지냈습니다.
한때는 총독부의 정책에 동조하여 대동민우회, 조선음악협회 등 친일단체에 가담했으며 이로 인해 친일 작곡가라는 멍에를 쓰기도 했습니다. 작품에는 ‘봉선화’ ‘성불사의 밤’ ‘옛 동산에 올라’ ‘달마중’ ‘낮에 나온 반달’ 등이 있습니다.
‘옛 동산에 올라’는 홍난파 작곡가가 미국 유학시절인 1932년께에 작곡한 곡으로 발표는 1933년에 간행한 가곡 작품집인 ‘조선가요작곡집’을 통해서였습니다. 작곡가 말에 의하면 이은상의 시가 마음에 들어 작곡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연이어 홍난파의 생애와 작품들을 살펴보다보니 ‘친일’이라는 불명예가 못갖춘마디 악보처럼 안타깝습니다. 당시 불안전 했던 삶들이 오히려 작품으로 온전히 투영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늘은 그의 행적을 역사적으로 비난하기 보다는 그가 남긴 주옥같은 곡들과 함께 우리 근현대사를 잔잔히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 보기로 하겠습니다.
내 놀던 옛 동산에
오늘 와 다시 서니
산천 의구(依舊)란 말
옛 시인의 허사(虛辭)로고
예 섰던 그 큰 소나무
베혀지고 없구려
일제 강점기 노산 이은상 선생이 쓴 시에 홍난파 선생이 곡을 붙인 곡으로 회고조의 가사에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곡조가 식민지 민중의 심금을 울려 당시 모두가 애창하는 가곡이었습니다.
여기서 ‘옛 시인의 허사’란 고려 말의 충신 길재가 나라가 망한 후 지은 다음 시조를 말합니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人傑)은 간 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인품과 학식으로도 추앙받던 길재가 영화로웠던 옛 서울 송도에 와서 인재들이 흩어져 없어진 것을 보고 인생무상을 읊은 것입니다. 나라를 잃어 인간사가 바뀐 상황을 변화 없는 산천과 비교하여 서글픔을 강조하였습니다.
지팡이 도로 짚고
산기슭 돌아서니
어느 해 풍우엔지
사태 져 무너지고
그 흙에 새 솔이 나서
키를 재려 하는구려
암울했던 그 시절 무너진 산하에서 베어진 소나무를 대신해 희망을 노래한 내용입니다. 가사는 인생의 허무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약간 느린 속도의 4분의 3박자, 라단조, 가요로 두 도막 형식의 가사입니다. 반주의 음형은 처음부터 끝까지 펼친 화음형태로 되어 있으며 반주의 화성은 으뜸화음과 버금딸림화음, 그리고 딸림7화음으로만 되어 있습니다.
3장의 시조 형식을 4장의 음악적 형식으로 환원하기 위하여 한 악구의 간주를 두었으며 간주에서는 곡의 변화를 위하여 4분의 4박자로 변박이 되었습니다. 선율은 온음계적으로 부드럽고 서정성을 느끼게 해줍니다. 한국적인 분위기를 나타내기 위하여 선율에 이끈 음을 생략시킨 것이 특징입니다. 낭만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 통속적인 애창 가곡이며 최초로 시조 시를 가사로 택한 가곡 중의 하나라는 역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음악이 주는 힘은 노래를 통해 우리의 영혼이 향기로워지며 옛 추억들을 소환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청포도가 익어가는 칠월에 다시 오겠습니다. 새롭게 오는 여름도 더 알차게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classicbiz@classicbiz.kr
저작권자 ⓒ ClassicBiz,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