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미 감성가곡] 그대 창밖에서(박화목 시/임긍수 곡/테너 박인수, 바리톤 고성현)

손영미 객원기자 승인 2023.10.11 09:00 의견 0
임긍수를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가곡 작곡가로 만든 것은 중학교에 있었던 풍금이었다. ⓒ손영미 제공


[클래식비즈 손영미 객원기자(극작가·시인·칼럼니스트)] 10월 하늘빛 고운 계절입니다. 오늘은 계절과 맞닿아 아름다운 노랫말과 함께 정한적인 느낌을 더해주는 곡으로 선곡해 보았습니다. 특히 크로스오버 가곡을 지향하는 임긍수 작곡가의 주옥같은 노래로 휘영청 달빛 아래 들으면 그 운치를 더하는 곡입니다.

1960년대 교실의 풍금을 볼 때마다 가슴이 뛰는 한 소년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임긍수 작곡가였습니다. 그는 충남 병천이 고향으로 어린 시절 흙먼지 나는 오솔길을 한 시간 남짓 걸어 당시 중학교를 다녔습니다. 작은 학교에는 예쁜 음악선생이 있었고 그를 사로잡았던 작은 풍금 하나가 그의 유일한 장난감이었습니다. 친구들이 모두 하교한 시간, 그는 홀로 남아 풍금을 가지고 노는 아이로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1960년대 초반에는 피아노를 구경하기 힘든 시기로 교실 안 가득 울려 퍼지는 풍금 소리에 그만 반해버린 소년은 방과 후에도 풍금을 가지고 노는 일이 너무 좋아서 집에 가는 일조차 잊어버렸습니다. 그렇게 그의 음악 인생은 10대 중반에 풍금으로부터 왔습니다.

가사를 쓰면서 내면에 깃드는 가장 온전한 행복감을 느끼고 집에 와서는 수천 번 악상을 고치며 점차 음악의 세계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혼자 가지고 놀다 보니 악보가 보이고 워낙 많이 치다 보니 저절로 노래가 연주되었습니다.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는 달빛을 보면서 내일 풍금을 만지는 꿈으로 또 행복했습니다. 당시 그에게 음악이 삶의 방편이 아니라 그 자체로 자신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자신의 외로움과 고립감을 삶에서 가장 풍성한 일상으로 바꾸어 주었고 음악의 매혹 속에서 그는 점차 성장하여 서울대 작곡과에 입학하기까지 그는 한시도 음악을 멀리한 적도 놓은 적도 없었습니다.

당시 자신의 주변에 음악을 가르쳐 주는 이도 이끌어주는 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염원이 강하면 꿈이 이루어진다 했던가요. 임긍수 작곡가는 서울대에 직접 편지를 써서 자신의 작품들을 오디션 받으며 그는 실력을 인정받았고 꿈에 그리던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소망은 이제 음악만을 생각하는 대학에 작곡과라는 유일한 평생 놀이터가 생겼습니다.

임긍수 작곡가와 손영미 시인. ⓒ손영미 제공


그렇게 설렘과 흥분으로 시작된 그의 음악 인생은 졸업 후에도 주옥같은 곡들을 발표하여 대중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습니다. 서울대 음대 졸업 후에는 은광여고 교사로 지내기도 했습니다. 당시 시험 감독 때 교실 안에서 작곡을 하였습니다. 그 곡이 바로 박화목 시에 곡을 붙인 ‘그대 창밖에서’ 입니다. 이곡은 임긍수 작곡가가 지금 들어도 고치고 싶지 않은 좋은 곡이라고 스스로 자부합니다.

또한 그가 KBS 전속 작곡가로 재직할 당시 작곡한 ‘강 건너 봄이 오듯이’(송길자 시)는 소프라노 조수미가 불러 더 유명해지기도 한 곡입니다. 당시 서울 국제 콩쿠르의 대표곡으로 국내 참가자들의 애창곡이 되기도 한 곡입니다. 이외에도 ‘안개 꽃 당신’ ‘물망초’ 외, 오페라 ‘탁류’ ‘메밀꽃 필 무렵’, 성가곡과 뮤지컬 곡 등 다수 작품들을 발표하였습니다.

다음은 ‘그대 창밖에서’를 원로 테너 박인수의 목소리로 감상해 보시겠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그 명성과 연륜이 하나로 내공 깊은 소리입니다.

선율과 가사의 아름다움과 유려함 때문인지 많은 사랑을 받은 곡이기도 합니다. 작곡가가 이 곡의 악상을 떠올리고 있을 때, 학생들은 얼마나 많은 커닝을 하였을까요. 넋 놓고 악상에 빠진 선생님을 당시 소녀들은 꽤나 낭만적인 시간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그대 그리워 노래하네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애절한 나의 노래 듣는가

두견새 혼자 울어 예는 밤에
이 마음 저 밤새와 같이
이 밤 허비며 사랑 노래 부르네

괴로운 내 가슴속엔 한 떨기 장미
오 내 사랑 말해다오
애타는 이 마음 어이해 들어주오

저 달이 지도록
나 그대 창가 밑에
서성이면서 기다리네
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이처럼 ‘그대 창밖에서’는 임긍수 작곡가의 감수성이 가장 좋은 때 쓰인 곡으로 젊은 시절의 작곡가의 애상이 짙게 묻어난 곡이기도 합니다.

다음은 바리톤 고성현님의 연주입니다. 노래 가사와 맞닿아 그는 요즘 번잡한 도심을 벗어나 전북 완주군에 터를 잡아서인지 소리 빛깔이 더 유려하고 한층 깊어졌습니다. 힘과 쉼이 조화로이 익어간 바리톤 고성현님의 목소리 입니다.

때마침 가을밤 달빛이 유난히도 청초합니다. 감성 가곡 속에서 내면에 고요가 더 깊어지는 온화한 가을날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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