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1번을 시작으로 앞으로 5년 동안 말러 교향곡 전곡 공연·레코딩을 할 겁니다.”
얍 판 츠베덴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의 야심 찬 프로젝트인 ‘말러 사이클’의 첫 작품이 나왔다. 지난해 11월 서울시향 2024시즌 라인업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녹음 계획을 밝힌 지 1년 만에 교향곡 1번 음반이 발매됐다.
구스타프 말러(1860~1911)는 모두 9개의 교향곡을 남겼다. 미완성 작품인 10번과 ‘대지의 노래’까지 포함하면 11개지만, 서울시향은 ‘9개 정식 교향곡’만 연주한다.
서울시향은 국내 교향악단 최초로 클래식 전용 앱 ‘Apple Music Classical’을 통해 얍 판 츠베덴이 지휘한 말러 교향곡 1번 ‘거인’ 음원을 18일 독점 공개했다.
이번 음원은 올해 1월 음악감독 취임 연주회에서 선보인 말러 교향곡 1번 공연 실황과 지난 4월 말과 5월 초에 걸쳐 롯데콘서트홀에서 별도 녹음한 세션을 함께 담았다. 취임 연주회 리뷰(클래식비즈 1월29일 <임윤찬 보러왔다가 말러에 빠졌다...‘얍 판 츠베덴의 서울시향’ 화려한 5년 출발> 참고)는 다음과 같다.
<말러는 1악장을 ‘음악이 아닌 자연의 음향’이라고 불렀다. 말러의 정의를 입증하듯 여기저기서 신비로운 ‘소리’를 쏟아냈다. 3명의 트럼펫 연주자는 무대 오른쪽 출입문 안쪽에서 희미한 팡파르를 울렸다. 어둠을 뚫고 오는 새벽의 소리다. 뻐꾸기 소리를 닮은 클라리넷은 다양한 음형을 풀어 놓았다.
그 소리들은 안개 속에서 피어올라 합쳐지고 흩어지며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존재론적 의미로까지 확장됐다. 강렬한 팀파니 사운드와 함께 갑자기 끝나는 종결은 임팩트가 컸다.
2악장 스케르초는 브루크너풍의 렌들러(오스트리아와 독일 남부 지방에서 유행한 춤곡)다. 각 악기 군이 차례대로 한 묶음으로 움직이는 집합연주를 보여줘 시각적 효과도 볼만했다. 우아한 군무였다. 부드러운 선율이 흐른 뒤, 다시 각 악기 그룹이 순번을 정해 웅장한 소리를 울렸다. 첫 악장과 마찬가지로 임팩트 있는 클로징이 되풀이 됐다.
팀파니와 더블베이스의 듀오로 3악장이 시작됐다. 바순, 첼로, 팀파니, 플루트 등이 하나씩 가세하며 음을 차곡차곡 쌓아 나갔다. 엄밀한 수학적 규칙성이 지배하는 듯한 사운드다. 느린 부분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다. 말러가 자신의 가곡 ‘내 연인의 푸른 눈동자’(‘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중 제4곡)을 인용한 대목이다. 앞의 두 악장과는 다르게 들릴 듯 말 듯 두 번의 조용한 울림으로 끝났다.
3악장에서 4악장은 잠시의 쉼도 없는 아타카(attacca)로 이어졌다. 말러는 한때 마지막 악장에 ‘지옥에서 천국’이라는 표제를 붙였는데, 단테의 ‘신곡’을 염두에 둔 타이틀이다. 3악장에서 켜켜이 쌓은 온갖 소리들이 한꺼번에 폭발했다. 강한 충격과 강렬한 불협화음으로 만들어진 아우성이다. 이 심연의 절망이 아름다운 선율을 거쳐 장대한 코랄풍 선율로 마무리됐다. 베토벤 스타일의 ‘영웅적인 투쟁을 거친 승리’지만, 말러는 그 승리가 공허하다는 암시도 잊지 않았다.
영웅적인 승리를 연주하는 호른은 4악장의 상징이다. 심지어 연주자 8명이 모두 함께 일어나 연주했다. 옆자리에 있던 5번 트럼펫 연주자도 동참해 스탠드업 자세로 소리를 쏟아냈다. 흔치 않은 장면이다. 기립 연주는 폭풍 같은 음량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시각적으로도 극적 연출을 보여줬다. 이처럼 오케스트라 단원이 대열을 벗어나 출입문·합창석 등에서 따로 연주하거나, 자리에서 일어나 잘 보이도록 연주하는 것을 ‘반다(banda)’라고 한다. 말러는 악보에 ‘반다’ 표시를 해놓았다.
그런데 프로그램북에는 분명 호른 연주자가 7명이라고 적혀있는데 8명이다. 궁금했다. 서울시향은 “호른 수석, 즉 퍼스트(first)가 연주해야 하는 중요한 부분이나 솔로 파트가 많아서 역할이 가중되는 경우 어시스트를 붙여서 서포트하기도 한다”라며 “말러 1번은 워낙 대편성인데다 섬세한 연주도 요구되기 때문에 어시스트를 1명 추가해 8명이 연주했다”고 설명했다. 의문이 한방에 풀렸다.>
얍 판 츠베덴은 말러 1번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와 뉴욕 필하모닉과의 첫 공연 때 이 곡을 지휘했고, 이후 저와 함께 성장해 온 작품이다”라며 “20대 청년 말러의 고뇌와 방황, 극복의 여정을 담고 있어 클래식 입문자들도 말러의 음악 세계에 입문하기 좋은 곡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말러 교향곡 중 가장 어려우면서 말러의 모든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오케스트라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곡이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말러 1번은 2011년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향이 도이치 그라모폰(DG) 레이블을 통해 음반을 발매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얍 판 츠베덴이 홍콩 필하모닉과 녹음한 바그너 ‘링 사이클’로 홍콩 필하모닉이 세계 유수의 악단을 제치고 2019년 그라모폰이 선정한 올해의 오케스트라로 이름을 올렸던 만큼 이번 Apple Music Classical을 통해 디지털 음원으로 공개되는 서울시향의 말러 1번에 대한 클래식 애호가들의 관심과 기대가 뜨겁다.
특히 이번에 선보이는 말러 1번은 Apple Music Classical의 몰입감 넘치는 공간 음향을 통해 뛰어난 품질의 사운드로 감상할 수 있으며, 무손실 음원에서는 소리가 놀라울 정도로 선명하고 깨끗해 평소 클래식을 즐겨듣는 애호가뿐만 아니라 클래식 입문자들에게도 콘서트홀에 있는 듯한 생생한 경험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향은 이번 음원 발매를 시작으로 2025년에는 말러 교향곡 2번과 7번을 연주하고 녹음할 예정이며, 얍 판 츠베덴과 말러 사이클을 완성할 계획이다.
한편 서울시향은 Apple Music Classical과 함께 오는 23일(수) 오후 5시 Apple 명동에서 말러 1번 음원을 소개하고 참가자에게 공간 음향 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Today at Apple 세션 ‘쇼케이스 : 공간 음향으로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말러 교향곡 1번에 흠뻑 빠져보기’를 진행한다.
이날 세션에는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과 웨인 린 부악장, 최진 톤마이스터가 참여해 이번 녹음에 대한 소감과 예술적·기술적 측면에서 공간 음향이 주는 음향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또한 참가자들은 별도로 마련된 체험 공간에서 얍 판 츠베덴과 서울시향이 재해석한 말러 1번 앨범을 감상할 수 있다. ‘Today at Apple’ 세션은 Apple 공식 홈페이지에서 17일부터 신청할 수 있으며 누구나 선착순 무료 참여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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