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출신의 메조소프라노 곽효아는 오는 3월 28일 서울 서초동 로데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한국 첫 리사이틀을 연다. ⓒ곽효아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공연 타이틀이 ‘정(情)’입니다. ‘정’은 한가지로 정의할 수 없는 복합적 마음의 작용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기분 좋은 말은 ‘그 사람은 정이 있어’가 아닐까요. 한국인들에게 저도 정이 넘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메조소프라노 곽효아는 중국 출신 성악가다. 원래대로라면 한자어 이름 곽효아(郭晓雅)를 중국어로 발음해 ‘궈 샤오야(Xiaoya Guo)’로 불러야 하지만, 한국식으로 그냥 친근하게 ‘곽효아’로 불러 달란다. 단박에 이름이 정리됐다.

곽효아는 오는 3월 28일(금) 오후 7시 서울 서초동 로데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한국 첫 리사이틀을 연다. 최근 상암동 한 카페에서 만나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그의 입에서 ‘정’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고, 독주회 제목까지 ‘정’으로 달았다고 밝히니 깜놀이다. 사연이 궁금했다.

“한국인 친구가 많고 한국을 정말 좋아해요. 한국은 아시아 클래식 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어요. 세계 클래식 시장으로 범위를 넓혀도 역시 코리안 파워는 엄청납니다. 클래식 환경 또한 탁월하고요. 결정적으로 클래식 에너지가 넘치는 나라죠. 이번에 제대로 기운을 받고 싶어요.”

그동안 중국, 미국, 유럽 등에서 공연을 자주 했는데 한국에서는 노래를 부를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무대뽀’는 아니다. 지난해 여름 살짝 분위기를 탐지해 보았다. 쇼케이스 정도는 아니지만 미니 퍼포먼스를 열어 시장의 반응을 살펴봤다.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올해 사이즈를 키워 도전에 나선 것.

곽효아는 중국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2008년 러시아 모스크바로 유학을 갔다. 그네신 음악 아카데미에서 성악과 오페라를 전공했고, 2014년 학사와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그는 “추운 날씨 때문에 고생했지만, 좋은 선생님을 만나 음악적으로 한 단계 성장한 시기였다”고 추억했다.

노래를 시작했으니 끝장을 보고 싶었다. 2017년 미국 뉴욕으로 갔다. 맨해튼 음악원에 입학해 2019년 성악과와 오페라과에서 각각 석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뉴욕의 오페라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롱 아일랜드 음악원에서 성악과 강사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곽효아는 한국어 발음이 유창하다. 네이티브 스피커 수준이다. 17년 동안의 해외 생활 덕에 언어는 강력한 무기가 됐다. 모국어인 중국어 외에도 영어·러시아어·한국어에 도 능통해 각 나라의 성악곡을 자유롭게 부를 수 있다.

그는 뉴욕생활을 시작하자마자 한인교회를 다녔다. 이게 큰 도움이 됐다. “교회에서 만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익히게 됐다”며 “최고의 선생님들 덕에 딕션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고 자랑했다.

또한 교회에서 메조소프라노 솔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친구들이 한국가곡을 소개해줘 역시 자연스럽게 배우게 됐다. 이번 독주회에서 한국 가곡을 두 곡 준비했다. ‘시간에 기대어’(최진 시·곡)와 ‘마중’(허림 시·윤학준 곡)이다.

“한국 가곡은 느낌이 참 좋아요. 부르면 부를수록 사랑의 감정이 샘솟아요. 애틋함이 가득한데, 결국엔 왈칵 눈물을 흘리게 만들어요. 다른 나라 노래에서는 맛볼 수 없는 특유의 정서입니다. 이런 필링은 정으로 통하고, 이 정은 또한 사랑으로 연결됩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의 또박또박 한국어 발음이 귀에 착착 감겼다. 글씨도 예쁘게 잘 쓴다. 인터뷰 때 실수할까봐, 미리 질문을 예측하고 대답할 내용을 깨알글씨로 빽빽하게 적어왔다. A4용지 앞뒤로 정성이 가득하다.

그는 “한국가곡에 나오는 단어와 상황이 어떤지 알고 있기 때문에 노래에 더 몰입할 수 있다”며 “앙코르 곡도 한국 노래로 준비할까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피아니트 최윤희는 오는 3월 28일 서울 서초동 로데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메조소프라노 곽효아의 리사이틀에서 반주를 맡는다. ⓒ곽효아 제공


가장 좋아하는 오페라가 뭐냐고 물었다.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라고 답했다. 이유는 아주체나 때문이란다. 집시여인 아주체나는 가족이 몰살당한 것을 되갚기 위해 루나백작의 동생인 만리코를 유괴해 자신의 아들처럼 키운다. 결국 이 선택으로 인해 형이 동생을 죽이는 비극이 발생한다.

“아주 극적인 캐릭터입니다. 복수, 고통, 갈등 등 복합적 감정이 뒤섞여 있는 인물이죠. 이런 점이 가수에게는 엄청난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아주체나는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기도 합니다. 성악적으로 메조소프라노에게 요구되는 모든 것이 이 배역에 담겨 있어요.”

한국 팬들에게 공식 첫 선을 보이는 만큼 실력을 드러낼 수 있도록 다채롭게 독창회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모차르트 오페라 ‘폰토의 왕 미트리다테’에 나오는 ‘Va, va l’error mio palesa(가서 나의 잘못을 폭로하라)’와 칠리아 오페라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 중 ‘Acerba volutta, dolce tortura(쓰디 쓴 즐거움, 달콤한 고통)’을 들려준다.

나라별 가곡도 선사한다. 슈베르트 ‘Der Tod und das Mädchen(죽음과 소녀)’, 뒤파르크 ‘Le manoir de Rosamonde(로즈몽드의 정원)’, 베르디 ‘Non t’accostare all’urna(무덤에 가까이 오지 마오)’, 라흐마니노프 ‘Пора(때가 되었다)’, 보울스 ‘Sugar in the cane(사탕수수 속 설탕)’ 등을 부른다. 중국 노래 ‘월인가(越人歌)’와 ‘산지고(山之高)’도 넣었다. 오스트리아,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미국, 중국으로 가곡 투어를 떠나게 해주는 셈이다.

이번 공연에는 든든한 파트너가 함께한다. 피아니스트 최윤희다. 지난해 퍼포먼스 때 처음 만났고 이번에 제대로 환상의 호흡을 맞춘다. 최윤희는 ‘슈베르티아데 서울’을 만들어 6년 전부터 꾸준하게 유튜브에서 활동하고 있다. 슈베르티아데는 ‘슈베르트의 밤’이라는 뜻으로 슈베르트가 살아있었을 당시 그의 음악을 좋아했던 사람들의 모임이다. 최윤희도 알음알음 마음 맞는 연주자들과 함께 슈베르트 음악 등을 주로 연주한ek. 곽효아는 최윤희와 리사이틀을 준비하면서 많은 힘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지금까지 한국은 일곱 번 방문했다. 가장 인상 깊은 장소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은평구”라고 단호박 대답을 내놓았다. “동네가 조용해요. 그리고 이번에 피아노 반주를 맡은 최윤희 선생님 댁과도 가깝고요. 제겐 행운의 장소입니다”라고 재치있게 말했다.

“공연을 앞두고 매일 설레는 날을 맞이하고 있어요. 곧 제 인생 최고의 날을 맞이한다고 생각하니 날마다 베스트입니다. 인연은 소중합니다. 그동안 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자리입니다. 이번 공연의 목표요? 눈을 감고 들으면 한국 사람으로 착각하게 만들 겁니다.”

/eunki@classicbiz.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