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강소연이 오는 7월 25일 서울 용산구 일신홀서 ‘판타지’라는 타이틀로 피아노 리사이틀을 연다. ⓒ강소연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피아니스트 강소연의 리사이틀 포스터가 눈길을 끈다. 보통 얼굴 잘 나온 사진을 클로즈업해 내세우는 것이 일반적인데, 발레슈즈를 신고 발레복을 입은 전신사진을 사용했다. 또한 원본사진을 그대로 쓰지 않고 옅은 그림자 효과를 덧입혀 몽환적 느낌을 풍긴다. 이번 공연의 타이틀은 ‘환상’ ‘공상’ ‘상상’을 뜻하는 ‘판타지(Fantasy)’다. 제목에 어울리게 사진에 변화를 준 것이다.
그럼 발레와 판타지는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강소연은 요즘 취미로 발레를 배우고 있다. 떨어지는 체력을 끌어올리고 유연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시작했다. 그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준 발레 공연이 있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유학시절에 감상했다.
“발레리나 강수진(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이 출연한 ‘카멜리아 레이디’였는데, 지금까지 또렷이 생각날 정도로 정말 감동이었죠. 지난 5월 국립발레단이 아시아 초연하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쇼팽의 다채로운 피아노 음악(‘녹턴’ ‘발라드’ ‘마주르카’ ‘폴로네즈’ ‘협주곡’ 등)이 배경음악으로 쓰였어요. 그래서 이번 독주회를 구상하면서 쇼팽의 첫사랑 경험을 담은 협주곡을 메인으로 넣고 환상이 어우러진 무대를 표현하고 싶어 과감히 발레 포즈에 도전했어요.”
피아니스트 강소연이 오는 7월 25일 서울 용산구 일신홀서 ‘판타지’라는 타이틀로 피아노 리사이틀을 연다. ⓒ강소연 제공
이야기를 듣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정성 가득한 강소연이다. ‘카멜리아 레이디’는 세계적인 안무가 존 노이마이어가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쓴 알렉상드로 뒤마의 아들)의 소설 ‘동백꽃 여인(La Dame aux Camélias)’을 기본 줄거리로 1978년 창작했다.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도 ‘동백꽃 여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강소연은 바쁜 피아니스트다. 잠시라도 쉬는 법이 없다. 유튜브 채널 ‘낭만살롱’의 MC와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삼청동에서 매달 열리고 있는 살롱 콘서트의 기획·연주·진행도 맡고 있다. 또한 장애인 음악가를 교육하는 뷰티플마인드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한마디로 멀티 아티스트다. 그런 틈을 비집고 오는 7월 25일(금) 오후 7시 30분 서울 용산구 일신홀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피아니스트 송영민은 강소연의 리사이틀에서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환상곡’을 원피아노 포핸즈로 연주한다. ⓒ강소연 제공
강소연은 ‘판타지’에 걸맞은 베스트 오브 베스트 곡으로 프로그램을 짰다. 첫 곡으로 죄르지 리게티의 연습곡 10번 ‘마법사의 제자(Der Zauberlehrling)’를 들려준다. 1985년부터 2001년 사이에 작곡된 18곡의 에튀드 중 열 번 째 곡이다. 리게티는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음악감독을 맡은 헝가리 출신의 오스트리아 작곡가다.
이어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을 터치한다. 1801년에 완성된 이 곡은 ‘환상곡풍으로(Quasi una fantasia)’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작품번호 27의 소나타 가운데 두 번째 곡(Op.27-2)이다. 게리 올드만이 주역을 맡은 영화 ‘불멸의 연인’에 삽입돼 애간장을 녹이기도 했다. 청각장애를 숨기고 피아노에 귀를 댄 채 1악장을 연주하는 모습이 오버랩되리라.
든든한 지원군이 힘을 보탠다. 강소연은 피아니스트 송영민과 함께 프란츠 슈베르트의 가장 중요한 피아노 작품 중 하나인 ‘네 손을 위한 환상곡 f단조(Op.103 D.940)’를 연주한다. 원피아노 포핸즈다. 송영민은 드라마 ‘밀회’와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피아니스트 대역을 맡기도 했다. 슈베르트는 이 곡을 생애 마지막 해인 1828년에 작곡했고, 그가 사랑에 빠졌던 제자 캐롤라인 에스테르하지에게 바쳤다. 그 사랑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해 더 안타깝다.
피아니스트 강소연은 오는 7월 25일 서울 용산구 일신홀서 열리는 리사이틀에서 현악4중주 반주에 맞춰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한다. 왼쪽부터 제1바이올린 정진희, 제2바이올린 안세훈, 비올라 박용은, 첼로 정광준. ⓒ강소연 제공
마지막으로 프레데릭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Op.21)’을 들려준다. 원래 ‘피아노 협주곡 1번(Op.11)’보다 더 빨리 작곡됐지만, 출판 순서가 늦어 1번 자리를 내줬다. ‘협주곡 2번’에는 젊은 쇼팽의 첫사랑이 흐른다. ‘쇼팽의 연인’하면 조르주 상드가 떠오르지만, 쇼팽의 첫사랑은 성악가 콘스탄차 글라드코프스카였다. 쇼팽은 그를 떠올리며 이 곡을 작곡했고, 2악장을 그 앞에서 연주했다고 전해진다. 강소연은 오케스트라 대신 제1바이올린 정진희, 제2바이올린 안세훈, 비올라 박용은, 첼로 정광준의 현악4중주 반주에 맞춰 연주한다.
강소연은 “제목에 환상곡이라고 직접적으로 표시된 곡도 넣었지만 열아홉 살 쇼팽이 느꼈던 첫사랑 순정의 판타지, 그리고 리게티의 복잡한 다중리듬의 기계적 제스처를 자동피아노가 아닌 연주자의 양손을 통해 환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곡도 넣었다”고 말했다. 그는 “곡 중간 중간 제가 느끼는 감정과 감상 포인트를 직접 설명도 해준다”고 덧붙였다. 발레와 쇼팽에서 영감을 얻은 강소연의 ‘판타지’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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