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예술창작소 ‘예술은감자다’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주체 선정작으로 ‘피가로의 결혼’을 한국어로 번안한 전막 공연 ‘피가로 결혼’을 선보인다. ⓒ예술은감자다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는 주인공 앤디(팀 로빈슨 분)가 음악을 틀어주는 모습이다. 기증 받은 헌책을 정리하는 데 따로 레코드판을 모아 놓은 상자가 끼어들어 왔다. 앤디는 그 중 하나를 꺼내 턴테이블에 건다. 그리고는 마이크를 켠다. 삭막한 교도소 안에 아름다운 음악이 퍼져 나간다. 갇혀있는 신세지만 자유를 갈망하고 있음을 인상적으로 보여주는 베스트 신(best scene)이다.

이때 나오는 음악이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에 나오는 수잔나와 백작 부인의 이중창 ‘저녁 산들바람은 부드럽게(Che soave zeffiretto)’, 일명 ‘편지 이중창(Sull’aria)’이다. “살랑살랑 산들바람~ 내~ 마음에 불어오라~” 이탈리아어로 된 이 아리아를 포함해 오페라 속 모든 노래를 한국어 가사로 바꿔 부르는 공연이 열린다.

공연예술창작소 ‘예술은감자다’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 공연예술창작주체 선정작으로 ‘피가로의 결혼’을 한국어로 번안한 전막 공연 ‘피가로 결혼’을 선보인다. 오는 9월 20일(토)과 21일(일) 오후 5시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약 135분(인터미션 15분 포함) 동안 진행한다.

예술은감자다는 한 입 물면 든든해지는 감자처럼, 예술은 사람들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야 한다는 믿음을 공연 제작과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실천하는 예술 단체다. 현 시대와 문화적·시대적으로 거리감이 있는 전통 음악극(오페라, 판소리 등)을 관객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재창조하는 것을 목표로 2010년 설립됐다.

공연예술창작소 ‘예술은감자다’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주체 선정작으로 ‘피가로의 결혼’을 한국어로 번안한 전막 공연 ‘피가로 결혼’을 선보인다. ⓒ예술은감자다 제공
공연예술창작소 ‘예술은감자다’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주체 선정작으로 ‘피가로의 결혼’을 한국어로 번안한 전막 공연 ‘피가로 결혼’을 선보인다. ⓒ예술은감자다 제공


이번 작품은 18세기 유럽 귀족 사회와 신분 제도를 풍자한 원작을 조선시대 봉건 사회로 옮겨와, 한국적 해학과 풍자를 가미한 무대로 재탄생시켰다. 한국어 가사와 마당극 형식을 통해 오페라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도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기획됐다.

‘피가로의 결혼’은 보마르셰의 희극을 원작으로 해 당시 혁명적 사상을 담아낸 작품으로 신분·권력·성(性)의 문제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보편적 공감을 이끌어내는 고전으로 평가된다.

예술은감자다는 이 작품을 현대 한국적 시각으로 풀어내기 위해 마당극 형식을 도입했다. 권력을 가진 대감이 하인들에게 은밀한 욕망을 강요하는 설정 속에서 하인 피가로와 순아, 그리고 마님은 지혜와 재치로 대감을 곤란에 빠뜨리고 결국 화해와 사과를 이끌어낸다. 관객은 이들의 유쾌한 계략을 따라가며 “사람은 결코 다른 사람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된다.

관객에게는 단순히 오페라 한 편을 보는 경험이 아니라, 조선시대 마당극판 한가운데로 초대받는 경험을 선사한다. 배우들은 무대 위뿐만 아니라 객석과도 적극적으로 호흡하며, 전통 놀이판에서 느낄 수 있는 현장감과 해학을 전달한다.

원작이 지닌 음악적·극적 본질을 지키면서도 한국적인 미감과 연극적 구성을 결합한 무대를 선보이기 위해 각색·번안·연출은 국립오페라단과 예술의전당 등에서 활동하는 오페라 전문 연출가 정선영이 맡았다.

공연예술창작소 ‘예술은감자다’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주체 선정작으로 ‘피가로의 결혼’을 한국어로 번안한 전막 공연 ‘피가로 결혼’을 선보인다. ⓒ예술은감자다 제공


무대는 유랑극단을 연상시키는 열린 구성으로 설계돼 배우와 관객이 공간을 공유하는 마당극적 분위기를 조성한다.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이 지닌 자연음향을 적극 활용해 원작이 지닌 음악적 매력을 그대로 전하고,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성악가들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함으로써 오페라 본연의 울림을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또한 관객 이해를 돕기 위해 단순 번역 자막을 넘는 판소리식 해설 자막을 도입해 장면의 상황과 심리를 ‘아니리’ 형식으로 설명하고, 모든 아리아와 앙상블을 한국어로 번안해 오페라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도, 누구나 내용과 감정을 즉시 체감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바리톤 최병혁(피가로 역), 소프라노 김나연(순아 역), 바리톤 김경천(대감 역), 소프라노 박재은(마님 역), 매조소프라노 김유라(개똥이역), 베이스 박의현(박첨지역), 메조소프라노 이미란(마산댁 역), 테너 이진욱(이방/형방 역), 배이스 도유민(마당쇠 역), 소프라노 정재민(복순이 역) 등이 출연한다. 지휘는 구모영이 맡는다.

‘살랑살랑 산들바람(Sull’aria)’뿐만 아니라 ‘대감님, 춤추고 싶으시다면(Se vuol ballare)’ ‘더 이상 날지 못하리(Non più andrai)’ ‘사랑을 아는 그대여(Voi che sapete)’ 등의 음악이 귀를 사로잡는다.

이 작품은 서울, 남해, 대전 등 여러 지역에서 이미 공연돼 대중성을 확대하며 호평을 받았다. 관람객들은 “마당놀이처럼 신명나는 무대였다” “한국어 가사 덕분에 이해하기 쉬웠다” 등의 후기를 남겼다.

연출 정선영은 이번 공연에 대해 “‘피가로 결혼’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한국적 맥락에서 풀어내어, 더 많은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자 했다”며 “작품이 관객에게 전통적 형식과 현대적 메시지를 함께 전달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eunki@classicbiz.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