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롯데콘서트홀 인 하우스 아티스트’인 최하영이 오는 11월 26일 피아니스트 요하임 카르와 호흡을 맞춰 리사이틀을 연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극 중 소녀가 ‘나도 저 언니처럼 되고 싶다’고 선망할 만한 연주자가 필요했습니다. 당연히 최하영이라는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가스파르 카사도를 연주하는 그의 영상을 보며, 소녀의 엄마가 ‘밥을 잘 먹어야 팔힘이 세져서 활도 세게 그을 수 있다’고 훈계하는 대사도 쓸 수 있었습니다”
지난 9월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에 첼리스트 최하영의 연주영상이 삽입됐다. 박 감독은 극중 인물이 좋아하고 따를만한 연주자로 최하영을 선택했다. 이를 통해 거장이 직접 초이스한 클래식 아티스트로서 최하영의 예술성과 존재감이 다시 부각됐다.
영화에는 만수(이병헌 분)와 미리(손예진 분)의 딸 리원(최소율 분)이 등장한다. 절대음감을 가진 듯한 리원은 ‘첼로 천재’로 불린다. 하지만 가족 앞에서는 단 한 번도 연주한 적 없는 남의 말을 반복하거나 표정 변화조차 거의 없는 인물이다. 그런 리원이 TV 화면 속 첼로 연주에 몰입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리원이가 바라보는 연주자가 바로 최하영이다.
이처럼 영화 속 인물이 선망하고 오마주하는 롤모델을 설정하고, 그 대상이 최하영이어야 한다는 박 감독의 직관은 단순한 음악 선택을 넘어 그의 예술적 안목과 첼리스트로서 최하영의 존재감을 방증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특히 박 감독은 평소 인터뷰 등을 통해 클래식 음악에서 자주 영감을 받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영화에 삽입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 2악장, 마랭 마레의 ‘바디나주’, 그리고 최하영의 카스도 연주 영상 등을 통해 세계적인 영화감독의 클래식 음악을 향한 깊은 애정, 그리고 연주자 최하영을 향한 신뢰와 안목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2025 롯데콘서트홀 인 하우스 아티스트’인 최하영이 오는 11월 26일 피아니스트 요하임 카르와 호흡을 맞춰 리사이틀을 연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2022년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 첼로 부문 우승에 빛나는 최하영은 ‘2025 롯데콘서트홀 인 하우스 아티스트’의 주인공이다. 지난 4월 30일 인 하우스 아티스트 첫 무대에서 그는 첼로를 위한 역사상 첫 작품으로 간주되는 도메니코 가브리엘리의 ‘리체르카르’부터 비교적 최근작인 비톨드 루토스와프스키의 ‘자허 변주곡’까지 약 300년에 걸친 레퍼토리를 통해 다채로운 첼로의 음색과 매력을 탐미적으로 선보였다.
특히 곡에 따라 바로크 악기와 현대악기를 넘나들며 다양한 주법을 선택해, 작곡가의 의도를 자신만의 치열한 해석으로 조율하며 최상의 소리에 접근하는 놀라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또한 모차르트 ‘K.423’과 코다이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주’를 동생 바이올리니스트 최송하와 함께 선보이며, 가장 친밀하면서도 배려 넘치는 자매만의 각별한 호흡으로 고전적인 균형과 민속적 에너지를 한층 선명하게 부각시켰다.
오는 11월 26일에 열리는 인 하우스 아티스트 두 번째 무대는 최하영 첼로 리사이틀로 꾸민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결선에서 도전적으로 루토스와프스키의 ‘첼로 협주곡’을 연주하며 대담함과 모험심을 보여준 그가 자신의 모든 음악적 역량을 발휘할 독주회 무대 역시 다채로우면서도 파격적인 음악의 조합으로 기대를 모은다.
피아니스트 요하임 카르와 함께 선보이는 이번 무대에서는 클로드 드뷔시 ‘전주곡 1권’ 중 12번 음유시인과 드뷔시의 ‘첼로 소나타(L.135)’, 알프레드 슈니트케의 ‘첼로 소나타 1번’을 선보인다. 아울러 우승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1라운드에서 연주하며 극찬을 받은 레오시 야나체크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동화’도 만날 수 있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 요하임 카르와의 호흡이 특별히 기대되는 작품은 에드바르 그리그 ‘첼로 소나타’다. 최하영은 인 하우스 아티스트 기자간담회에서 “유럽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는 요하임 카르는 노르웨이 베르겐 출신으로, 노르웨이의 정서를 표현하는데 탁월한 감각을 지니고 있어 특별히 이번 공연에 그리그의 작품을 포함시켰다”고 밝히기도 했다.
1988년 베르겐에서 태어난 카르는 어린 시절부터 얀 헨리크 케이저, 호바르 임세,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로부터 음악적인 영향을 받았고, 2014년 제14회 국제 에드바르드 그리그 피아노 콩쿠르에서 수상했으며, 여러 해 동안 노르웨이 정부 예술가 지원금을 수혜 받은 연주자다. 지난 몇 년간 바흐부터 리게티를 포함한 폭넓은 레퍼토리로 음악적 통찰력과 감수성을 인정받으며 명성을 쌓아오고 있다.
한편 롯데콘서트홀이 2021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인 하우스 아티스트 시리즈는 탁월한 음악적 역량을 겸비한 것은 물론 음악 안에서 자신만의 연주 철학과 개성을 추구하는 아티스트를 선정해 다양한 시도로 관객과 만나는 프로그램이다.
실력 있는 국내 연주자들의 활약이 전 세계적으로 활발해짐에 따라 롯데콘서트홀은 우수한 연주자를 통한 양질의 공연 콘텐츠를 확보하고, 연주자들이 다채로운 음악적 시도를 통해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인 하우스 아티스트 제도를 시행해오고 있다.
롯데콘서트홀 인 하우스 아티스트는 지금 이 순간 가장 빛나고, 미래의 어느 순간에 더욱 더 빛날 음악가를 조명하는 무대다. 2020-2021 시즌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와 에스메 콰르텟으로 시작한 시리즈는 이 시대의 주목할 만한 젊은 연주자들을 위한 스테이지로 2022년 피아니스트 신창용과 첼리스트 문태국, 2023년 피아니스트 이진상과 바이올리니스트 윤소영, 2024년 첼리스트 한재민 등 짧은 시간 안에 눈부신 음악적 성장을 이루는 아티스트들이 자신만의 개성 넘치는 무대를 선보였다.
/park72@classicbiz.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