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김선욱이 키릴 페트렌코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지난 7일 예술의전당에서 연주하고 있다. ⓒWON HEE LEE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키릴 페트렌코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열두 번째 상임 지휘자다. 2019/2020 시즌부터 월드클래스 악단을 이끌고 있는 이 러시아 출신의 지휘자는 소리에 관해서는 집요하고 예민하다. 음 하나도 허투루 내지 않고 다듬고 다듬고 또 다듬어 세상에 내놓는다.

키릴 페트렌코와 베를린 필하모닉이 지난 7∼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올랐다. 2023년 11월 이후 2년 만의 내한 공연이고, 토털로는 여덟 번째 내한 공연이다. 이들은 사흘 연속 공연에서 “역시 베를린 필은 다르다”를 확실하게 보여줬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키릴 페트렌코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지난 7일 예술의전당에서 연주하고 있다. ⓒWON HEE LEE 제공

키릴 페트렌코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이 지난 7일 예술의전당에서 내한공연을 열고 있다. ⓒWON HEE LEE 제공


첫날(7일)과 마지막 날(9일) 공연은 바그너가 아내 코지마의 생일 선물로 작곡한 ‘지그프리트 목가’로 시작됐다.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의 선명하면서도 유려한 선율은 바그너의 깊은 서정을 생생하게 불러냈다.

이어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려줬다. 가벼운 터치를 앞세워 슈만 특유의 독특한 리듬 표현과 다채로운 감정선을 짚어냈다. 악단은 피아노를 의식하면서도 단원 한 명 한 명이 최고의 솔리스트라는 명성답게 첼로·금관파트·바이올린 등 각 악기 부문이 적확하고도 아름다운 연주를 뽐냈다.

하이라이트는 베를린 필이 최근 앨범을 발매한 브람스 교향곡 1번. 악단 개인의 뛰어난 기량과 전체의 집중력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에마뉘엘 파위(플루트 수석), 알브레히트 마이어(오보에 수석), 슈테판 도어(호른 수석) 같은 베를린 필의 스타 플레이어들이 내뿜는 음색은 찬란한 빛을 발했다.

키릴 페트렌코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이 지난 8일 예술의전당에서 내한공연을 열고 있다. ⓒMonika Rittershaus 제공
키릴 페트렌코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이 지난 8일 예술의전당에서 내한공연을 열고 있다. ⓒMonika Rittershaus 제공


팬들의 가장 많은 갈채와 환호를 받은 공연은 협연자 없이 진행된 둘째날(8일) 연주였다. 야나체크의 ‘라치안 춤곡’, 버르토크의 ‘중국의 이상한 관리 모음곡’,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를 선보였다.

허명현 음악평론가는 “연주력 자체가 압도적이다. 단원들의 개인 기량이나 연주의 해상도 측면에서 베를린 필과 다른 오케스트라와의 갭이 분명히 존재한다”라며 “아무리 악단들이 상향평준화 된다고 해도 베를린 필과는 차이가 더 벌어지는 느낌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버르토크나 스트라빈스키 같은 프로그램들을 들고 왔을 때는 더더욱 차별성이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덧붙였다. 그는 “가장 좋았던 ‘중국의 이상한 관리 모음곡’에서도 역시 개인기량들이 빛났다. 중요한 역할이었던 클라리넷은 매순간 음량, 뉘앙스 조절을 너무 자연스럽게 이어갔다”라며 “일체감 높았던 스트링들은 물론이고 금관들이 순차적으로 콘서트홀을 가득 채운 장면에서는 어느 악기하나 빠지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페트렌코는 강박적으로 밸런스를 조절했고, 악기를 떠난 잔향마저 컨트롤 하려는 것처럼 들렸다. 여기에 다이내믹을 미묘하게 조절해 음악에 저절로 긴장감이 녹아들어갔다”고 설명했다.

키릴 페트렌코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이 지난 8일 예술의전당에서 내한공연을 열고 있다. ⓒMonika Rittershaus 제공
키릴 페트렌코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이 지난 8일 예술의전당에서 내한공연을 열고 있다. ⓒMonika Rittershaus 제공


버르토크의 마지막 장면은 놀랄 수밖에 없다고 고백했다. 그는 “지금까지 나왔던 주제들이 모두 섞여서 등장할 때가 클라이막스였다. 톱니바퀴처럼 척척 맞아 돌아갔다. 미세한 밸런스 조절이나, 어느 순간에 어떤 악기가 돋보여야 하는지는 지휘자의 역량도 있지만 이건 서로가 서로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 불가능할 것 같았다”고 분석했다.

스트라빈스키 ‘페트루슈카’에도 호평을 달았다. 허 평론가는 “모든 캐릭터가 꿈틀거리고, 그걸 아주 입체적으로 등장시키니 어느 각도에서 보더라도 선명했다. 그만큼 조형미가 대단했는데, 그렇다고 캐릭터들이 느끼는 정서들도 놓치지 않고 챙겼다”라며 “ 실내악을 듣는 것처럼 밀도 높은 순간들도 많았고, 악기를 출발한 소리들이 모두 적절히 섞여 마치 하나의 소리처럼 음향이 합쳐진 장면들도 베를린 필이 아니면 어려울 것 같은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2019년 한국인 첫 정단원이 된 비올리스트 박경민은 프로그램북에 다음과 같이 썼다. “페트렌코는 사운드에 있어 집요하고도 예민한 지휘자다. 페트렌코의 리허설은 음 한 개, 악절 하나에도 끊임없이 의미를 묻고 표현이 도달해야 할 지점을 향해 모두를 이끈다. 방식은 고되고 느리지만 그의 리허설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왜 그가 지금의 베를린 필을 이끄는 존재인지 이해하게 된다.”

/eunki@classicbiz.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