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그림으로 유명한 아세움 작가가 1월 7일부터 2월 9일까지 와스 캘러리에서 개인전 ‘묘한 경계’를 연다. ⓒ아세움작가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아세움(ASEUM) 작가는 고양이를 그린다. 캔버스 한가운데 귀엽고 앙증맞고 사랑스러운 고양이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세상에 나보다 더 예쁜 것 있으면 나와 보세요”라는 거만함이 엿보이지만, 그 깜찍함 때문에 감히 반론을 제기하지 못한다. 한 점 소장하고 싶은 그림이다.
‘고양이 작가’ 아세움이 개인전을 연다. 전시 타이틀은 ‘묘한 경계’. 1월 7일(수)부터 2월 9일(월)까지 서울 강남구 양재천로 189에 있는 와스 캘러리(WAS Gallery)에서 관람객을 맞이한다. 공식 오프닝 행사는 1월 13일(화) 오후 4시다. 이름 먼저 정리한다. 아세움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작은 움직임’이라는 뜻의 예명이다. 작가의 본명은 박교은.
그의 고양이 그림은 일관성이 있다. 그냥 무턱대고 붓질하는 것이 아니라 ‘몽상가’ ‘공중묘’ ‘생존력’ ‘선인장 고양이’ ‘사막과 고양이’ ‘화분과 고양이’ 등 큰 주제 아래 다양한 시리즈를 이어간다. 이번 전시는 그의 대표 연작인 ‘고양이 산맥’ 시리즈로 구성됐다. 가장 궁금한 것은 고양이에 꽂히게 된 계기다. 인생에서 가장 어두웠던 시절, 모든 것이 무너지고 삶의 방향마저 잃어버렸던 어느 날, 우연처럼 고양이를 만났다.
고양이 그림으로 유명한 아세움 작가가 ‘고양이 산맥’ 시리즈로 개인전을 연다. ⓒ아세움작가 제공
“지인 부부의 고양이를 돌보게 됐어요. 처음 6개월은 팽팽하게 서로 대립했어요. 밥 주는 사람까지 무시하는 쌀쌀함에 저도 오기가 발동해 똑같이 냉랭하게 대했죠. 그러다 문득,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알게 됐습니다. 차츰 서로에게 스며들었죠. 사람에게서 받을 수 없는 또 다른 위로를 받았어요. 고양이는 저의 모든 속내를 가만히 비춰주는 거울 같았습니다. 2년 가까이 키우다 원래의 보호자에게 돌아갔는데, 얼마나 아쉬웠는지. 매일 매일 그리워했습니다. 유튜브 등을 통해 고양이 영상을 열심히 보다가 자연스럽게 고양이를 그리게 됐어요.”
작가는 집고양이의 ‘안전’과 길고양이의 ‘자유’라는 대비를 통해, 보호와 구속받지 않음의 불균형이 만들어내는 현대인의 상실감을 조명한다. 이런 시선은 화려한 표면 아래 불안을 감추고 있는 한국 사회의 모습과 맞닿아, 오늘날 우리가 서 있는 위치를 비추는 하나의 은유가 된다.
‘고양이 산맥’ 시리즈는 다른 시리즈와 형태면에서 뚜렷이 구분된다. 캔버스가 일반적인 사각형이 아니라 원형이다. 익숙한 풍경을 낯선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는 데서 출발한다는 작품의 의도를 드러내기 위한 선택이다.
작가는 지난해 여름 첫 힐링 에세이 ‘나만 없어 고양이 – 무심한 위로가 필요한 당신에게’를 출간했다. 브리티시 숏헤어와 먼치킨 두 마리를 키우는 데, 수년간 고양이와 함께한 일상과 내면의 여정을 바탕으로, 고요하면서도 따뜻한 위로의 감성을 담아낸 책이다. 여기에 ‘고양이 산맥’ 시리즈 탄생 스토리가 적혀 있다.
고양이 그림으로 유명한 아세움 작가가 ‘고양이 산맥’ 시리즈로 개인전을 연다. ⓒ아세움작가 제공
<스위스를 여행할 때였다. 알프스 산맥 정상으로 올라가는 리프트를 탔는데, 높이 오를수록 그 아래로 보이는 비경이 끊김 없는 하나의 거대한 그림으로 펼쳐졌다. 풍경은 아름다운 선율로 물결쳤다.
정상에 오르니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그림 같은 집에도 각자 사연은 있겠지?” 점처럼 아주 작은 형상으로, 아득히 보이는 집들에도 나름의 복잡한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높은 곳에서 만상(萬象)을 보게 되니, 펼쳐진 비경처럼 인생도 아름답게만 느껴졌다. 높이 올라가 멀리 볼수록 골치 아팠던 고민도 별것 아닌 것이 됐다.
그렇듯이 고양이처럼 높이 올라가 무엇이든 넓은 시야에서 다른 각도로 바라보면 인생이 달라질 터다. 그렇게 했더니 복잡해 보이던 일들이 단순 명쾌하게 보이고, 절망처럼 느껴졌던 상황도 하나의 작은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았다.
인생에 중요한 건 무엇을 보느냐보다 어디서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시각을 달리하고, 시선은 조금 더 멀리 두고, 시야를 넓혀 관점도 바꾸어 보면, 고난은 배움이 되기도 하고, 상처는 성장의 토대가 되기도 한다.
고양이는 나에게 말없이 가르친다. “지금 겪는 일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진다면, 더 높이 위로 올라가 봐. 다시 조금 멀리서 바라봐. 그럼 너는 나만의 중심을 찾게 될 거야.”>
고양이 그림으로 유명한 아세움 작가가 ‘고양이 산맥’ 시리즈로 개인전을 연다. ⓒ아세움작가 제공
그렇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고양이의 눈을 빌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간극, 화려한 표면과 그 아래 흐르는 공기, 그리고 자유와 보호, 안온함과 불안이 공존하는 한국의 현재를 깊이 응시한다. 겉으로는 아름답고 안정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불안과 긴장이 공존하는 풍경이 겹겹의 산맥처럼 펼쳐진다.
작품 속 고양이는 산맥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구름과 밤하늘, 달빛 사이를 유영하며 관람객을 ‘묘한 경계’ 위로 이끈다. 그 경계는 단순히 사회적 현실에 대한 관찰을 넘어, 우리가 서 있는 자리와 행복의 방향을 스스로에게 되묻게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묘한 경계’는 거창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는 고양이의 조용한 시선을 따라 걷는 사유의 공간을 제안한다. 빛나는 표면 아래에 남겨진 작은 희망과 미묘한 틈새를 발견하는 경험은 관람객 각자의 감정과 기억 속에서 조용히 확장된다. 그 종착점은 ‘인생은 아름다워’다.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는 긍정 마인드를 무장하게 된다.
아세움 작가는 곤혹스러운 요청을 받은 적이 많다고 고백한다. 여기저기서 “내가 키우는 고양이를 그려달라”는 막무가내 요구가 쇄도한다. 작가는 단호하다. “주문 제작은 안받아요.” 그러면서 작품 트렌드에 살짝 변화가 있음을 덧붙였다. “처음엔 눈과 얼굴 위주로 그렸다면 요즘은 동선, 즉 고양이의 우연한 움직임에 더 집중한다”고 귀띔했다. 혹시 인생의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금 지나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아세움 작가의 ‘고양이 산맥’ 시리즈가 도움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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