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당 타이 손의 루틴(routine)은 독특했다. 피아노 선반 위에 두 손을 가지런히 얹어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어 안경을 한번 고쳐 쓰고는 건반을 눌렀다. 새로운 곡을 연주할 때마다 이 동작을 되풀이 했다. 세상 속으로 음악을 내보내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소박한 의식이다. 좋은 소리를 들려주기 위한 간절한 버릇이다.
그의 열 손가락을 타고 온갖 춤들이 공중을 날아다녔다. 폴로네즈→마주르카→왈츠→왈츠→왈츠→에코세즈→타란텔라→폴로네즈의 순서로 선보인 ‘피아노 시인’의 작품은 사람들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피아졸라의 ‘듣는 탱고’에 훨씬 앞서 ‘듣는 폴로네즈·마주르카·왈츠’를 만들었으니, 39세로 세상을 떠난 쇼팽은 클래식 음악계의 ‘퍼스트 펭귄’이었던 셈이다.
“쇼팽은 폴란드인입니다. 그의 걸작 중 대부분은 폴란드 춤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쇼팽의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폴란드의 문화, 특히 음악적 전통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1980년 제10회 쇼팽 콩쿠르 우승자는 이런 신념을 입증하며 한국 팬들에게 행복한 추억을 선사했다.
당 타이 손은 지난 21일(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열었다. 3년만의 한국 독주회다. 쇼팽 스페셜리스트는 곡에 대한 탁월한 해석력과 감성이 깃든 시적인 표현으로 ‘역시 당 타이 손’이라는 찬사를 이끌어냈다. 베트남 출신이라는 약점을 딛고 아시아인 첫 우승의 신화를 쌓은 그는 품위 넘치고 격조 높은 무대를 선보였다.
1부에서는 프랑스 작곡가들을 불러냈다. 그는 이본느 르페브르 덕에 프랑스 음악에 눈을 떴다. 쇼팽 콩쿠르 우승 뒤, 앞으로 누구에게 배울까 고민한 적이 있었다. 파울 바두라 스코다 등이 1순위였지만 베트남 정부는 이를 ‘허가’해주지 않았다. 아직 공산국가였기 때문에 다른 국가로의 이주 자유가 제한됐던 것. 그래서 차선책으로 르페브르를 찾아가 몇 차례 레슨을 받았는데, 이게 큰 힘이 됐다.
당 타이 손은 라벨의 ‘고풍스러운 미뉴에트(Menuet antique, M.7)’를 밝고 경쾌한 타건으로 요리하면서도 그 사이사이에 대담한 시도를 끼워 넣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Pavane pour une infante défunte, M.19)’에서는 부드러운 우울이라는 역설적 상황을 절묘하게 표현했다.
이어 드뷔시의 ‘영상 1권(Images book Ⅰ, L.110)’에 들어있는 제1곡 ‘물의 반영’. 제2곡 ‘라모를 찬양하며’, 제3곡 ‘움직임’을 연주했다. 인상주의적 색채를 잘 살려내 박수갈채를 받았다. 하지만 더 큰 감동은 음악이 말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점이다.
프랑크의 ‘전주곡, 코랄과 푸가(Prélude, Choral et Fugue)’는 처연하고도 슬픈 초반부를 지나 광활한 우주에서 맛보는 경이로운 환희가 후반부에 오버랩됐다.
당 타이 손은 고생의 대명사로 통하는 ‘58년 개띠’다. 베트남 전쟁의 한가운데서 하노이를 떠나 시골 마을로 피난을 갔다. 혹독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토굴 속에서 살면서도 아버지가 그려준 ‘종이 건반’을 두드리며 손가락 연습을 했고, 물소 수레에 실려 70km를 공수해온 피아노를 맨 마지막 순서에 치면서 꿈을 키웠다. 비록 어려운 삶이었지만 아름다운 위로는 있었다. 보름달이 뜨는 밤에 열린 콘서트였다. 그때 들었던 쇼팽의 마주르카, 녹턴이 있었기에 쇼팽 콩쿠르 위너가 될 수 있었다.
당 타이 손은 달빛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고, 자연과 음악이 하나가 됐던 그 순간을 떠올리며 2부에서 쇼팽의 춤곡을 대방출했다. 어린 당 타이 손이 느꼈던 감정이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달됐다. 음악의 힘이다.
2부의 문을 연 ‘폴로네즈 다단조, 작품번호 40-2(Polonaise in c minor, Op.40 No.2)’는 어두운 정서 가득한 긴장감을 드러냈고, ‘마주르카, 작품번호 24(Mazurkas, Op.24)’는 평생 폴란드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던 쇼팽의 정감이 흘렀다.
왈츠는 귀에 착착 감겼다. 센티멘털이 녹아든 ‘왈츠 바단조, 작품번호 70-2(Waltz in f minor, Op.70 No.2)’, 마치 성악가가 노래하는 듯한 소리로 관객을 꼼짝 못하게 만든 ‘왈츠 가단조(Waltz in a minor, B.150, Op.Posth.)’, 영혼까지 춤추게 한 ‘왈츠 내림가장조, 작품번호 34-1(Waltz in A flat major, Op.34 No.1)’ 등 세곡이 잇따라 이어지며 고막남친 서비스를 펼쳤다.
당 타이 손의 트레이드 마크는 ‘루바토(rubato)’다. 그는 “루바토는 결코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미묘한 감각이고, 스스로 체득하면서 평생에 걸쳐 깨달아 가는 것, 자유로운 감각, 자유로운 표현이다”라고 정의했다. 쇼팽 음악의 진수는 루바토에서 시작되는데, 그는 템포를 조금 빠르게 또는 조금 느리게 연주하는 자연스러운 스킬을 발휘했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프랑스와 영국에서 유행한 춤곡인 에코세즈와 ‘미친 듯이’라는 뜻을 지닌 15세기 유럽에서 유행했던 타란텔라는 ‘귀한 음악’이었다. 자주 연주되지 않아 들을 기회가 좀처럼 없었는데 드디어 직관을 했다. 당 타이 손은 ‘세개의 에코세즈, 작품번호 72-3(3 Ecossasises, Op.72 No.3)’과 ‘타란텔라 내림가장조, 작품번호 43(Tarantella in A flat major, Op.43)’으로 갈증을 해결해줬다.
피날레는 최상의 초이스였다. 위풍당당한 기세와 불을 뿜는 에너지가 넘치는 ‘폴로네즈 내림가장조, 작품번호 53(Polonaise in A flat major, Op.53)’이 장식했다. 쇼팽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리즈 시기에 작곡됐다. 나중에 ‘영웅’이라는 부제가 붙여졌는데, 이날은 당 타이 손이 바로 ‘영웅’이었다.
프로그램을 모두 마친 뒤 관객들은 브라보 박수를 보냈다. 당 타이 손은 몇 차례 다시 나와 고개 숙여 인사한 뒤, 앙코르 곡으로 드뷔시의 ‘전주곡 1권, L.117(Préludes Premier Livre, L.117)’의 제11번 ‘퓌크의 춤’을 들려줬다.
공연을 마친 뒤 당 타이 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코로나 때문에 지난 30개월 동안 투어를 하지 못했는데 한국에서 첫 투어를 했다”라며 “예술의 전당 독주회는 내게 아름답고 감동적인 순간을 선사했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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