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콘서트홀 오르간 앞에서 춤춘다...이진상·윤소영 ‘미디어아트 결합’ 이색무대

‘롯데콘서트홀 인 하우스 아티스트‘ 콜라보 공연
신세대 아티스트들 세 차례 다양한 음악적 도전

민은기 기자 승인 2023.04.18 23:58 | 최종 수정 2023.04.19 10:17 의견 0
‘롯데콘서트홀 인 하우스 아티스트’로 선정된 바이올리니스트 윤소영과 피아니스트 이진상이 기자간담회에서 드로브자크의 ‘바이올린 소나티나 G장조’ 1악장을 연주하고 있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피아니스트 이진상이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을 피아노와 퍼커션 버전으로 연주한다. ‘꿈’ ‘무도회’ ‘전원의 풍경’ ‘단두대로의 행진’ ‘악마들의 밤의 꿈’ 등 다섯 개의 소제목이 붙은 50분짜리 대작이 귀를 사로잡는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거대한 파이프오르간 앞에서 한 무용수가 춤을 춘다. 댄서의 몸짓에 눈을 뗄 수 없는데, 거기에 더해 무대 위에 미디어아트까지 펼쳐진다. 음악으로 표현되는 청각 영역과 무용·미디어아트로 구현되는 시각 영역이 롯데콘서트홀이라는 공간에서 하나가 된다. 각 장르가 지닌 감정과 정서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며 감동이 극대화된다.

피아니스트 이진상과 바이올리니스트 윤소영이 음악·미디어아트와 어우러진 환상적 무대를 선보인다. 두 사람은 현대무용을 기반으로 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차진엽과 미디어아티스트 황선정과 협업해 오감을 깨우는 색다른 공연을 선사한다.

‘2023 롯데콘서트홀 인 하우스 아티스트(상주음악가)’로 선정된 이진상과 윤소영은 1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세 차례의 연주 계획을 설명했다. 롯데콘서트홀은 2021년부터 ‘인 하우스 아티스트 시리즈’를 통해 자신만의 연주 철학과 개성을 갖춘 음악가들의 무대를 만들고 있다.

이진상은 2009년 게자 안다 콩쿠르에서 동양인 최초로 우승했다. 대회 최초로 슈만상, 모차르트상, 청중상을 휩쓸며 주목받았다. 2018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피아노 탐구생활도 예사롭지 않다. 스타인웨이 함부르크 공장까지 찾아가 직접 제작과정을 마스터한 독특한 이력도 가지고 있다.

또한 윤소영은 헨릭 비에냐프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한 주인공이다.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콩쿠르 대상, 티보 바르가·예후디 메뉴인 국제 콩쿠르 등에서도 우승을 거머쥔 실력파 아티스트다. 세계적인 클래식 매니지먼트사 IMG아티스트 소속 바이올리니스트로 국제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롯데콘서트홀 인 하우스 아티스트’로 선정된 피아니스트 이진상과 바이올리니스트 윤소영이 기자간담회를진행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진상 윤소영, 차진엽(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황선정(미디어아티스트). ⓒ롯데콘서트홀 제공

‘롯데콘서트홀 인 하우스 아티스트’로 선정된 바이올리니스트 윤소영과 피아니스트 이진상이 기자간담회에서 드로브자크의 ‘바이올린 소나티나 G장조’ 1악장을 연주하고 있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뛰어난 연주력과 독자적인 연주 철학을 지닌 두 젊은 예술가는 인 하우스 아티스트 시리즈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직접 콘셉트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자신만의 색채로 무대를 채워나간다. 두 사람은 간담회에 앞서 안토닌 드보르자크의 ‘바이올린 소나티나 G장조’ 1악장을 연주해 분위기를 돋웠다.

시리즈 첫 공연은 오는 4월 22일(토) 이진상이 나선다. 프란츠 리스트의 ‘시스티나 성당에서’와 엑토르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을 들려준다.

‘롯데콘서트홀 인 하우스 아티스트’로 선정된 바이올리니스트 윤소영과 피아니스트 이진상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이진상은 먼저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융합이 이뤄지고 있지만 클래식 아티스트들에게는 흔치 않은 일이다”라며 “어떻게 하면 클래식을 조금이라도 더 현대적인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고민해왔고, 이번 무대가 그런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밝혔다.

협업 과정에서 얻은 기쁨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그동안 연주자로서 악보를 보고 구조적인 측면이나 내용을 파악한 뒤 이걸 악기로 표현하는 걸 당연하게 여겨왔다”라며 “막상 작업을 해보니 미디어아트는 음악을 듣고 떠오른 감각적 이미지를 그대로 표현한다. 훨씬 직관적이다. 제 연주에서 영감을 받아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점이 놀랍고 신기했다”고 말했다.

‘시스티나 성당에서’는 리스트가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을 방문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작곡한 곡이다. 리스트는 머릿속에 두 가지 작품을 떠올렸다. 첫 번째는 그레고리 알레그리가 작곡한 ‘미제레레’다. 당시 교황청은 이 곡이 너무나 아름다워 악보가 성당 밖으로 유출되는 것을 금지시켰는데, 모차르트가 이 작품을 듣고 외워 악보로 옮겼다는 일화로 잘 알려져 있다.

리스트는 이런 이야기를 떠올리며 자신의 작품에 모차르트의 곡도 포함시키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두 번째로 선택된 작품이 ‘아베 베룸 코르푸스’다. 마침내 완성된 ‘시스티나 성당에서’에는 이 두 작품이 아주 절묘하게 녹아 들어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환상교향곡’에는 베를리오즈의 러브 스토리가 흐른다. 베를리오즈는 영국 셰익스피어 극단의 파리 공연에 동참한 아일랜드 출신의 여배우 해리엣 스미드슨에게 홀딱 반한다. 연주회끼지 열어 잘 보이려 했지만 마음을 얻는데 실패한다. 이런 실연의 아픔 속에서 탄생한 것이 ‘환상교향곡’이다.

하지만 간절함은 통했다. 우여곡절 끝에 스미드슨과 결혼한다. 베를리오즈의 부모는 결혼을 결사 반대했다. 스미드슨이 10년 연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결혼식 날엔 프란츠 리스트가 증인으로 참석했다.

천신만고 끝에 웨딩마치를 울렸지만 두 사람 사이의 작은 틈은 점차 벌어진다. 결혼 10년 만에 별거에 들어가고, 베를리오즈는 애인인 여가수 마리아 레치오와 지내게 된다. 1854년, 4년 전부터 전신마비 상태였던 스미드슨은 숨을 거둔다. 아내의 임종을 지켰던 베를리오즈는 마리아와 재혼하지만, 마리아도 결혼 8년 만에 세상을 떠난다.

이진상은 “베를리오즈를 선택한 이유는 감정, 서사, 그리고 모든 인간의 내면적 성격들을 드러내기 적합한 곡이었기 때문이다”라며 “인간의 폭넓은 감정,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그리기에 적합했다”고 설명햇다. 이어 “리스트의 작품 역시 악에서 구원받고 위로받는 내용인 만큼 인간의 중요한 감정을 담고 있다고 생각해 선곡했다”고 덧붙였다.

‘롯데콘서트홀 인 하우스 아티스트’로 선정된 피아니스트 이진상과 바이올리니스트 윤소영이 간담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윤소영은 6월 23일(금) 공연한다. 안토니오 비발디의 ‘사계’와 막스 리히터의 ‘재구성된 비발디 사계’를 연주한다.

윤소영은 “비발디의 사계는 모든 분들이 아는 곡인데, 리히터가 재작곡한 사계는 백짓장의 느낌이 난다”라며 “처음 이 곡을 라이브로 들었을 때는 조금 지겹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무대에는 이 곡이 너무 잘 맞을 것 같았다. 두 사계를 비비교하면서 들으면 더 재미있을 것이다”라고 감상팁을 줬다.

그러면서 “미디어아트 무대는 해본 적이 없어서 아직 상상이 안간다”며 “하지만 비발디의 사계, 막스 리히터의 재구성된 사계라면 미디어아트와 어울릴 것 같아 선곡했다”고 말했다.

윤소영은 이미 ‘사계’와 인연이 깊다. 2021년 피아졸라 탄생 100주년을 맞아 피아졸라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계’로 드라마틱하면서도 강렬한 연주를 선보여 열광적인 환호를 이끌어냈다. 이번 무대에서 그는 ‘사계 스페셜리스트’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윤소영의 공연에서도 차진엽·황선정이 함께해 비발디, 리히터 작품의 분위기에 걸맞은 미디어아트가 결합된 무대를 선물한다.

이진상과 윤소영의 협업공연도 준비했다. 아직 연주 프로그램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11월 29일(수)에 두 아티스트의 시너지 넘치는 무대가 열린다. 차가운 물의 이미지(이진상)와 뜨거운 불의 느낌(윤소영)이 묘하게 매력을 이루는 독특한 공연이 예상된다.

두 사람의 연주에 맞춰 무대를 구성하는 차진엽은 “클래식 아티스트들이 이렇게 집요하게 작업하는지 몰랐다”며 “이진상이 악보를 분석하며 설명해주는데, 마치 소설을 읽듯 음표 하나하나에 언어가 들어가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황선정은 “영상을 고정적인 흐름으로 가져가는 게 아니라 ‘함께 연주된다’는 느낌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며 “2차 평면을 넘어서는 공간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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