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수 픽콘서트] 우리말로 부른 베토벤 ‘자유의 송가’...새로운 번역에 진심 박수

구자범 지휘 참페스티벌오케스트라 교향곡9번 합창 공연
대편성 사운드·집중된 소리 타고 ‘환희’ 아닌 ‘자유’ 넘실

손민수 객원기자 승인 2023.06.13 16:40 | 최종 수정 2023.10.09 21:25 의견 0
‘환희의 송가’를 ‘자유의 송가’로 바꾸고 우리말로 번역해 부른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리허설 장면. 우리말로 부른 ‘합창’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음예술기획 제공


[클래식비즈 손민수 객원기자(음악칼럼니스트)]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우리말로 부르는 공연이 열렸다. 구자범이 지휘하는 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지난 5월 7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9번을 무대에 올렸다. 국립합창단·서울시합창단·안양시립합창단·참콰이어가 합창을 담당했고, 솔로 파트는 오미선·김선정·김석철·공병우가 맡았다.

‘합창’이라는 부제는 베토벤이 붙인 것이 아니다. 9번 교향곡은 1824년에 작곡한 마지막이자 아홉 번 째 베토벤의 교향곡이다.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테마는 ‘환희의 송가’로 알려져 있다. 이것을 ‘자유의 송가’로 바꿨다. 원곡의 가사는 독일어지만 다양한 언어로 번역돼 불리기도 한다.

보통의 교향곡은 1악장은 빠른 악장으로 소나타 형식이며, 2악장은 느리고 서정적인 악장, 3악장은 미뉴에트나 스케르초, 4악장은 소나타나 론도의 형식을 따른다. 베토벤 9번은 2악장에 스케르초를 사용하고. 3악장에 서정적 악장을 두었으며, 4악장에 혼성합창과 4명의 독창을 넣어 작곡됐다. 우리가 ‘환희의 송가’로 알고 있는 4악장의 선율은 프리드리히 쉴러의 시 ‘환희에 붙임’에서 발췌·편집한 후 곡을 붙인 것이다.

공연에 앞서 합창단 입장과 오케스트라 지휘자 입장까지 대략 10분 정도가 소요됐다. 대규모 합창단이라 입장 시간이 길어 시계를 보니 대략 5분 가까이 걸렸다. 물론 단원 한명 한명 박수를 받고 입장하는 것도 좋지만 대규모일 경우 출입구 여러 개를 사용하는 것이 조금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합창단에 대한 배려였을까? 솔리스트와 지휘자가 동시에 입장하고 솔리스트 4명은 일반적인 무대 중앙이 아닌 무대 왼편 끝에 자리를 잡았다.

‘환희의 송가’를 ‘자유의 송가’로 바꾸고 우리말로 번역해 부른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리허설 장면. 우리말로 부른 ‘합창’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음예술기획 제공


연주가 시작됐을 때 첫 호른의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 제1바이올린의 소토 보체(sotto voce·‘소리를 낮추어’ ‘작은 소리로’ 라는 뜻)로 시작되는 리듬과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좌석 때문이었을까? 참고로 필자는 2층 D블록이었다. 하지만 1악장이 진행될수록 좌석의 영향이라기보다 밸런스의 문제로 보였다. 베토벤이 청력을 잃고 작곡을 하고 초연이 됐을 당시를 생각한 해석으로 극단적 음향을 선택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소리는 들려야 하지 않을까? 특히 팀파니 소리가 많이 거슬렸다. 그렇게 강하게 연주할 것이면 ‘차라리 다른 스틱을 사용했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또한 전체적으로 금관악기 소리가 다른 파트를 덮어 버렸다.

2악장 프레스토(presto) 부분에서는 악보에는 없는 지휘자 임의의 루바토(rubato) 또는 리테누토(ritenuto)를 사용했는데 뒤이어 나오는 크레센도(crescendo)를 위한 사전작업이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사족의 느낌이었다.

3악장은 앞선 악장들보다 한층 정제되고 편안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1, 2악장은 연주자들의 기량에 맡겨둔 채 음향적 효과만을 표현한 것처럼 보였지만 3악장은 지휘자의 주도하에 움직이는 연주였다. 칸타빌레(cantabile)를 표현하기 위한 템포의 변화도 있었지만 오케스트라가 지휘자의 표현을 잘 따라 연주했다. 전 악장들 때문이었는지 훨씬 좋게 들렸다.

이어지는 4악장, 오늘의 하이라이트. 필자는 우리말로 부르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에 과연 어떻게 가사를 붙였을지 궁금했다. ‘기존 번역들의 어색함을 잘 수정할까?’ ‘음역에 맞는 한글 자모를 생각해서 말을 바꾸었을까?’ 등등 궁금증이 일었다.4악장 프레스토가 시작됐을 때 ‘이번 공연의 중심 악장이기에 연습을 더했었나?’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빠른 박자의 강한 시작이지만 1, 2악장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받았다. 4악장 초반에 프레스토가 끝나고 알레그로(allegro)에서는 1악장 도입 부분이 아주 조금 변형돼 나오는데 1악장과 전혀 다른 사운드를 전했다. 이후 첼로와 베이스라인 또한 앞과 다른 느낌이었다. 알레그로 아사이(allegro assai)에서 베이스 파트의 시작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환희의 송가’ 멜로디가 연주됐는데 대편성에서 오는 사운드와 집중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어 첼로와 비올라, 바이올린으로 연결되는 멜로디 라인의 유기성과 표현이 좋았다.

‘환희의 송가’를 ‘자유의 송가’로 바꾸고 우리말로 번역해 부른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리허설 장면. 우리말로 부른 ‘합창’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음예술기획 제공


합창이 나오기 전 솔로가 시작됐을 때 ‘O Freunde, nicht diese Tőne!’라는 부분을 ‘[시인:베토벤] 오 벗이여, 이런 소린 그만!’이라고 적은 자막이 스크린에 비췄다. 시인, 인간, 자유라는 화자를 두어 번역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번역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접근과 해석이라 낯설고 당황했지만 기대감 등 많은 생각을 하며 공연을 보았다. 또한 필자에게 합창 교향곡 가사의 ‘번역의 화두’를 던진 채 공연이 진행됐다.이어 합창이 나오는 순간 대규모 합창단의 소리에 압도됐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었다. 중반부를 지나면서 포르테가 나올 때는 합창단의 발음이 뭉개졌다. 자막이 있기는 했지만 교차되며 진행할 경우 좀 혼란스럽게 보이기도 했다. 화자로만 표기한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꽤 있었을 듯하다. 피날레 전 알레그로 마 논 타토(allegro ma non tanto) 부분에서 오케스트라와 솔리스트의 박자가 밀려 버려 다시 시작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 영향이었을 수도 있지만 뭔가 계속 불안한 형태의 연주가 지속되는 느낌이었다. 합창의 사운드로 인해 오케스트라의 섬세한 소리가 묻혀서 들렸다.

구자범 지휘자가 이 가사들을 번안할 때 생각한 것은 텍스트 그대로의 해석이 아닌 베토벤이 쉴러의 원작을 재구성으로 시나리오화(化)해 작곡한 것을 원작의 시대적 배경과 베토벤이 이 곡을 작곡할 당시의 시대적 상황 등을 고려하여 문학적·음악적 해석을 했다. ‘베토벤이 꿈꾸는 세상’ ‘행진곡(쭈삣쭈삣 출정)’ ‘푸가(투쟁)’ ‘다른 세계(포상으로 마법이 이뤄지는 자유의 성소)’ ‘현 세계’ 등 5개로 나누어 연에 따른 화자를 두어 번역했다. 여기서 가장 중점이 된 것은 ‘환희’가 아닌 ‘자유’를 표현한 것이다. (번역본을 올리고 싶었으나 번역자 의사를 모르고 지면 문제로 생략한다이와 같은 새로운 번역은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이러한 적극적인 시도를 한 것에 큰 박수와 격려를 보낸다. 앞으로 다른 곡들도 필요한 시도라 생각된다. 단어의 표면적 내용만을 해석하는 것이 아닌 그 숨은 의미를 우리말로 풀어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다. 오페라 대본도 그냥 표면적 해석들과 그러한 자막들이 무대에 올라간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프로그램 북을 보고 싶었으나 예술의전당과 협의 문제가 있어 배포가 중단됐다고 관계자에게 이야기를 듣고 황당했다.

공연이 끝나고 배포하는 프로그램 북을 받아 들고 대충 읽어 본 후 이 프로그램 북이 얼마나 공연에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공연의 일부분처럼 느껴졌다. 내용 중 45페이지 분량이 해석에 관한 내용이었다. 미리 읽어 봤어야만 공연을 보는 시야가 정확하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환희의 송가’를 ‘자유의 송가’로 바꾸고 우리말로 번역해 부른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리허설 장면. 우리말로 부른 ‘합창’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음예술기획 제공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주최 측의 실수라 생각했다. 이후 상황을 알게 된 후 예술의전당 측에 화가 났다. 예술의전당은 현재 기획 공연장이라기보다 대관사업자다. 결국 공무원을 가장한 서비스직군이다. 그렇다면 공연과 관련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인데 오히려 군림하려 한다. 비단 예술의전당뿐만 아니라 많은 곳이 그렇다. 양질의 공연을 위해선 사소한 것 하나부터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공연 내용이 바뀌어 관객에게 피해를 줄 일도 아닌데 좀 과했다 싶다. 프로그램 북 같은 것은 주최자의 책임에 맡기면 된다. 그러한 것까지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번 공연은 프로그램 북을 보기 전과 후로 나뉘어 다른 느낌이 들었다. 보기 전은 그냥 우리말 합창을 위해 급조한 오케스트라와 충분히 발음 연습이 되지 않은 합창단의 공연으로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을 알고 난 후에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보게 되었음을 인정한다.

또 어찌 보면 논문 발표 연주회 같은 느낌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익숙한 연주와 다른 부분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주관적 생각이지만 오히려 구자범 지휘자가 프로그램 북 내용을 다듬어 논문을 제출해 다양한 언어학자, 문학자, 연주자들이 다양한 해석을 내놓아 제대로 된 우리말 버전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

이번 공연에서 관객들의 실수가 있었다. 악장이 끝날 때마다 박수가 나와 불쾌했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4악장 합창 첫 부분이 끝났을 때 우렁찬 박수가 나왔을 때는 필자도 당혹스러웠다. 물로 그들이 고의로 방해를 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지휘자의 실수도 있다고 볼 수 있다. 빠르기가 바뀌는 곳에서 자주 휴지가 있었다. 박수가 나온 부분은 행진곡풍으로 넘어가기 전 마지막 마디에 몰토 테누토(molto tenuto)와 늘임표가 있고 바로 넘어가야 하지만, 지휘자의 멈춤이 있었기에 처음 합창 교향곡을 접한 사람들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아마추어 합창단이 포함됐고 그에 따른 지인들도 많이 참석했으리라 예상된다. 공연장을 나서면서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 인터넷상에서는 그러한 행동이나 방해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관크(관객 크리티컬)’라는 말을 쓰며 조롱한다.

‘환희의 송가’를 ‘자유의 송가’로 바꾸고 우리말로 번역해 부른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리허설 장면. 우리말로 부른 ‘합창’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음예술기획 제공


과연 옳은 것일까? 필자는 공연 도중 나오는 박수가 아닌 악장이 완전히 끝나고 지휘자의 손이 내려왔을 때 박수를 치는 것에 대해 용인하는 편이다. 오래전 유럽에서는 악장 사이, 노래 사이에 박수를 쳤다. 근대에 이르러 지휘자가 연주에 더 집중하기 위해 악장 사이 박수를 지양해 달라고 요구했는데 언제 부터인가 악장 사이의 박수는 무례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일까? 오페라 공연 중 가수의 아리아가 끝나고 연주가 좋으면 관객은 긴 박수를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공연 때 긴 박수를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흐름이 끊기는 것은 관객보다 연주자에게 더 어려운 일이다. 연주자들이 방해된다면 지휘자나 연주자가 자제를 요청하면 된다. 그리고 애호가분들에게 부탁한다, 연주자 분들이 지인을 초대할 때 언제 박수를 치면 되는 지 알려주면 좋겠다.

혹여 처음 공연장에 왔던 사람이 그러한 이야기를 듣는다면 다시 공연장에 가고 싶을까? 클래식 음악 공연장을 찾는 인구가 늘었다고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어릴 때부터 공연장에 익숙한 사람은 많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이 쌓이는 것일 뿐.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다가오게 하려면 누군가를 비난하기보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이번 공연을 계기로 해석과 번역에 대한 많은 반향이 일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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