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리뷰] ‘77세 에너자이저’ 부흐빈더...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5곡 경쾌한 터치

60번째 전곡연주 세번째 무대도 ‘미션 클리어’
사인회 열고 사진촬영까지 해줘 친절 리사이틀

민은기 기자 승인 2023.07.03 15:45 | 최종 수정 2023.07.03 15:58 의견 0
올해 77세의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가 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60번째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연주를 하고 있다. ⓒ빈체로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솔직히 걱정됐다. 1946년생 피아니스트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 남긴 피아노 소나타 32곡 전곡을 12일 동안 일곱 번의 공연으로 완주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젊은 사람도 힘에 부치는 일이다 보니 77세 피아니스트의 시도에 관심이 쏠렸다. 정신적 압박감뿐만 아니라 체력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우였다. 첫 공연(6월 28일)과 두 번째 공연(6월 30일)에 이어 세 번째 공연이 7월 1일(토)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렸다. 산전수전 겪은 베테랑은 노련하게 60번째 전곡 도전을 하나씩 ‘미션 클리어’ 했다.

대장정 첫날 기자간담회에서 ‘오랜 세월 베토벤을 연주하면서 지치거나 싫증이 났던 적은 없었나’라는 질문에 그는 “네버! 전혀 싫증이 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절대 그런 일이 없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음악은 우주처럼 한계가 없다. 100년 전의 음악에서 항상 새로운 걸 발견하게 되고 질릴 틈이 없다”고 덧붙였다.

올해 77세의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가 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60번째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연주를 한 뒤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빈체로 제공


현존하는 ‘최고의 베토벤 스페셜리스트’ 루돌프 부흐빈더는 거기에 더해 공연이 끝난 뒤 따로 일곱 번의 사인회도 마련했다. 친절하게 포즈까지 취하며 함께 사진도 찍어줬다. 거장의 품격과 여유가 느껴지는 특급 팬서비스다.

‘에너자이저 부흐빈더’는 인터미션을 제외하고 1부와 2부 공연을 통틀어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3번, 19번, 26번 ‘고별’, 7번, 28번을 내달렸다. 흐트러짐 없이 경쾌하게 건반을 눌렀다.

먼저 4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3번 C장조(Op.2, No.3)’를 터치했다. 강한 의지와 희망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베토벤의 대담함과 낙천성을 잘 살려냈다. 가슴을 두드린 것은 역시 느린 2악장. 풍부한 화음으로 그윽한 울림을 만든 첫 주제와 세밀하게 감정의 흐름을 묘사한 두 번째 주제의 하모니가 빛났다.

이어 연주한 ‘19번 g단조(Op.49, No.1)’는 피아노 소나타의 전통을 과감히 벗어난 단 두 개의 악장으로 구성됐다. 부흐빈더의 손끝을 타고 간결하고 평이해 보이지만 혁신적 성격을 지닌 소나타가 미끄러지듯 흘렀다.

1부 마지막 곡은 ‘26번 내림E장조(Op.81a)’. 베토벤은 이 작품에 직접 ‘고별’이라는 제목을 달아 자신의 열렬한 후원자였던 루돌프 대공(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의 동생)에게 헌정했다. 프랑스 군대의 빈 침공으로 대공이 피란을 떠나게 되면서 작곡했다. 1809년에 1악장을, 그리고 이듬해 대공이 돌아오자 두 악장을 추가해 하나의 소나타로 묶었다.

세 악장에 베토벤은 각각 ‘고별’ ‘부재’ ‘재회’라는 제목을 붙였다. 부흐빈더는 비록 이별이 동기가 된 작품이지만 슬픔과 고통보다는 안녕을 비는 마음과 재회의 기쁨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작품의 속마음을 잘 담아냈다.

올해 77세의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가 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60번째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연주를 한뒤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빈체로 제공
올해 77세의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가 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60번째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연주를 한뒤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빈체로 제공


2부는 ‘7번 D장조(Op.10, No.3)’로 시작했다. 초조함과 경쾌함이 교차돼 흐르더니(1악장),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고 슬픔이 짓누르며(2악장) 다가왔다. 짧지만 확실하게 분위기를 전환한 미뉴에트 악장(3악장)을 지나자, 자유롭고 화려한 즉흥연주 스타일이 펼쳐지며(4악장)며 막을 내렸다.

‘28번 A장조(Op.101)’부터는 베토벤의 후기 소나타로 분류된다. 베토벤은 네 개의 악장에 독일어 지시어를 표기해 자신의 음악적 표현을 더욱 구체화했다. 부흐빈더는 “다소 생기있게, 마음속 깊은 감정으로” “활기차게, 행진하듯” “느리게, 동경에 찬 마음으로” “너무 빠르지 않고, 확고하게”라는 내밀한 호흡을 충실히 따랐다. 공연에 앞서 그는 “저의 개성을 녹여내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베토벤에 대한 애정을 담을 뿐입니다”라고 말했는데, 이번 공연에서 그런 의도를 잘 수행했다.

부흐빈더는 앙코르로 ‘피아노 소나타 6번 F장조(Op.10, No.2)’ 3악장을 연주했다. 전곡 연주의 다음 공연인 6일(목) 공연의 첫 곡을 들려줘 시리즈는 계속될 것임을 알려주는 효과도 줬다. 영리한 부흐빈더다.

올해 77세의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가 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60번째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연주를 한뒤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빈체로 제공
올해 77세의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가 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60번째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연주를 한 뒤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빈체로 제공


허명현 음악 평론가는 “부흐빈더는 여전했다. 소신이라고 생각하는 템포는 그대로 밀고 나가고, 기술적으로 어려운 대목들도 결코 우회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그 나이에도 도전적이었다”라며 “그는 아직까지도 베토벤에 대해 절대 타협이 없다. 감동을 만들어 내는 방식은 여전히 같았다. 위대한 문화재가 시간이 흐를수록 그 외형이 낡아갈 수는 있어도, 그 가치가 절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오늘의 연주에서도 감동은 여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렬한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1차원적인 강력한 표현들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오른손과 왼손이 기능적으로 잘 조립되면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음악이 변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줬고, 이게 또 굉장히 설득력 있는 베토벤의 형상을 보여주었다”며 “느린 악장이든, 빠른 악장이든 음악이 직전의 음악을 동력 삼아 한번에 쭉 흘러갔다. 베토벤 소나타 3번 2악장에선 연주의 깊이에 감탄했고, 7번 마지막 악장의 유머에선 탄식이 저절로 흘러 나왔다. 모든 것을 이미 다 깨달은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유머였다”고 찬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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