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네버! 전혀 싫증이 나지 않았어요. 단 한 번도, 절대 그런 일이 없어요."
오스트리아의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77)는 28일 서울 강남구 오드포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오랜 세월 베토벤을 연주하며 지치거나 싫증이 나는 일이 없었나’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독일어로 대답하던 그는 이 대목에서 자기 말에 힘을 실으려는 듯 영어로 “네버(Never)”라고 덧붙였다. 이어 "음악은 우주처럼 한계가 없다. 100년 전의 음악에서 항상 새로운 걸 발견하게 되고 질릴 틈이 없다"고 밝혔다.
현존하는 최고의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는 부흐빈더는 이날부터 7월 9일까지 7회에 걸쳐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32곡)을 연주한다.
간담회에 앞서 그는 베토벤의 폭풍 같은 격정이 가득한 피아노 소나타 17번 ‘템페스트’ 3악장을 들려줬다. 연주를 마친 그는 “베토벤의 모든 소나타를 사랑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모든 곡이 어렵다”며 웃었다.
부흐빈더는 이번이 여덟 번째 내한이고,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연주한 횟수도 이번 공연으로 60번째에 달하지만, 한국에서의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는 처음이다.
그는 “피아니스트 중에는 중 바쁘게 전쟁하는 것처럼 연주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피아노 앞에 앉아 노래하듯 연주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젊은 시절에는 ‘이런 해석만이 절대적’이라는 좁은 관점으로 베토벤 소나타를 대했다”며 “지금은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두고 더 많은 음악적 요소를 연구한다”고 했다. 대가의 풍모가 느껴지는 멘트다.
그는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한국에서 연주하는 일정은 전에도 계획한 바 있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미뤄졌다”고 설명했다. 또 “한국에는 굉장히 좋은 청중들이 있다”며 “한국에 어떻게 이처럼 클래식이 잘 전파됐는지 놀랍다”고 말했다.
부흐빈더는 베토벤을 가장 깊이 있게 해석하고 연주할 수 있는 베토벤 전문가로, 지금도 서재에 베토벤 소나타 전곡의 판본 39권을 소장할 정도로 악보를 수집하며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부흐빈더는 천천히 꾸준하게 기반을 닦아온 대기만성형 연주자다. 5세 때 빈 음악원에 입학하며 신동으로 불렸지만, 20세에 출전한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는 5위에 그치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1980년대 초반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녹음한 음반을 발매해 주목받았고, 2014년에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연주한 최초의 피아니스트가 됐다. 2019년 72세의 나이로 세계적인 클래식 음반사 도이치그라모폰(DG)과 전속계약을 맺었다.
2014년 잘츠부르크 연주 녹음본의 하이라이트는 지난달 앨범 ‘베토벤: 디 에센셜 피아노 소나타’로도 발매됐다. 이번 한국에서의 연주를 기념해 발매된 앨범이다.
평생 베토벤을 연구해온 그는 “24시간 동안 베토벤의 방에 앉아 베토벤의 모든 것을 관찰하고 싶은 꿈이 있다”며 “베토벤은 나에게 하나의 혁명이고, 가장 인간적인 면을 가진 작곡가다”라고 했다. 그러며서 “베토벤은 작곡가이자 혁명가다. 매우 인간적이고, 유머러스하고, 사랑이 넘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어렸을 때 굉장히 작은 방에서 자랐는데, 그 방에는 업라이트 피아노가, 피아노 위에는 라디오가, 라디오 위에는 베토벤의 두상이 있었다. 이 두상에 대한 기억은 평생 저를 따라다녔다”고 고백했다.
부흐빈더는 “집에서도 무엇인가를 공부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정말 배울 수 있는 것은 무대 위다”라며 “무대에는 스튜디오에 없는 우연성과 감정, 긴장감이 있다. 무대에 있으면 모든 순간이 훨씬 극적으로 느껴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베토벤은 ‘에스프레시보(감정이 풍부하게)’ 바로 뒤에 ‘아 템포(원래 빠르기로)’를 써둔 유일한 작곡가다”라며 “그만큼 베토벤은 혁명적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베토벤을 평면적으로 연주하는 게 제일 안 좋다. 베토벤 소나타엔 그의 인생에서 사랑에 빠졌거나, 화가 났거나, 즐거웠던 순간이 반영돼 있다"고 설명했다. 어떻게 해야 베토벤 음악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는지 팁을 줬다.
부흐빈더는 “60번째라는 숫자가 완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앞으로 내가 얼마나 멀리 그리고 어디로 갈지는 모르지만, 가야 할 길이 남았다”고 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나의 개성을 녹여내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베토벤에 대한 애정을 담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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