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쯤 앞으로 돌려 1910년의 파리로...김숙영 연출의 새로운 ‘라보엠’ 11월 온다

솔오페라단 17~19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공연
​​​​​​​마리아 토마시·김은희·박지민·막스 조타 등 출연

김일환 기자 승인 2023.10.27 16:32 | 최종 수정 2023.10.27 19:11 의견 0
테너 박지민의 ‘라보엠’ 공연 장면. ⓒ솔오페라단 제공


[클래식비즈 김일환 기자] 자코모 푸치니(1858~1924)의 오페라 ‘라 보엠’은 1830년께의 파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크리스마스 이브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삐걱 소리를 내는 낡은 아파트 다락방에 가난한 시인 로돌포와 화가 마르첼로가 덜덜덜 떨고 있다. 로돌프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자신이 쓴 희곡의 원고를 벽난로에 집어넣고 불을 피운다. 보물 같은 원고보다 온몸을 감싸는 냉기를 떨쳐내는 일이 더 급하다. 두 사람이 몸을 녹이려는 순간 철학자 콜리네가 들어오고, 이어 음악가 쇼나르가 와인과 음식을 갖고 들어온다. 아무리 팍팍해도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을 즐기려는 순간에 훼방꾼이 등장한다. 이들 앞에 집주인 베누아가 나타나 밀린 집세를 내라고 닦달한다.

원작 오페라의 시간을 80년쯤 앞으로 돌렸다. 배경을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인 1910년으로 가져왔다. 솔오페라단이 오는 11월 17일(금)부터 19일(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새로운 ‘라 보엠(La Boheme)’을 선보인다. 2024년 푸치니 서거 100주년을 맞아 올해와 내년 선보일 ‘그레이트 오페라 시리즈’의 1탄이다.

‘라 보엠’은 앙리 뮈르제의 ‘보헤미안 삶의 장면들’을 바탕으로 주세페 자코사와 루이지 일리카가 이탈리아어 대본을 완성해 1896년 2월 토리노의 레조극장에서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초연된 4막의 오페라다.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겨울이면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작품이다. 푸치니 특유의 아름답고 유려한 선율과 강한 드라마적 요소로 관객 마음을 사로잡지만, 많이 공연되는 만큼 무대나 연출이 대부분 비슷하다는 단점도 있다.

1막과 4막의 다락방, 2막의 카페 모무스, 3막 안페르 관문의 무대 세트 대부분은 고전적 해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어 대충 비슷비슷한 모습이라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이번 솔오페라단이 준비한 무대는 다르다. 제작팀이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모아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무대 디자인을 만들어 냈다.

감각적이고 파격적인 연출로 호평 받는 김숙영과 신선하고 독창적인 무대 디자인으로 주목받고 있는 김대한이 만나 1차 세계대전 직전인 1910년 파리를 배경으로 새로운 ‘라보엠’을 만들어 낸다.

소프라노 마리아 토마시의 ‘라보엠’ 공연 장면. ⓒ솔오페라단 제공


김숙영 연출은 “20세기 초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 네 명의 예술가에 포커스를 맞췄다”고 밝혔다. 젊다는 이유만으로 변화의 소용돌이를 버텨내야만 하는 현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김 연출은 이런 점에 연출 포인트를 겨냥했다.

원작인 뮈르제의 소설에서도 답답한 현실에 몸부림치는 젊은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다. 뮈르제 역시 시인을 꿈꾸다 생활고로 신문잡지에 연재하기 시작한 무명작가였다. 뮈르제는 19세기에 이미 20세기 자유주의에 젖은 예술가 보를레르, 사실주의 미술의 선구자 쿠르베, 낭만주의에서 예술지상주의의 문을 활짝 연 방빌과 막역한 친구 사이였다. 이들은 당시 사회를 한탄하며 카페에 모여 물만 마셔대는 부랑아로 치부 받기도 했다. 뮈르제는 이러한 자신의 주변에서 소재를 찾아 자신을 닮은 로돌포, 쿠르베를 닮은 마르첼로, 보를레르를 닮은 쇼나르, 방빌을 닮은 콜리네를 소설 속에 그려냈다.

늘 춥고 배고프고 눈물과 한숨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는 차가운 현실과 죽어가는 연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기도밖에 없었던 냉혹하고 비참한 상황을 그는 작품에서 더욱 극대화시켰다.

새로운 예술에 대한 희망에 몸부림치지만, 그에 따른 잔인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김숙영의 시선으로 그려낸 ‘2023년 라보엠’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김 연출은 “예술로 취급받지 못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표현해야 지금 우리 마음속에 닿을지 고민했다. 색깔과 성향, 가치관이 각자 다른 네 명의 친구들을 잘 나타낼 수 있는 각자의 공간을 무대에 마련해 각자의 공간, 각자의 방에서 서로를 만나고, 이해하고, 때로는 불평하기도 하는 모습을 그렸다. 그래서 더욱 애절한 우정과 사랑이 탄생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솔오페라단의 ‘라보엠’을 지휘하는 발터 아타나시. ⓒ솔오페라단 제공


뉴서울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발터 아타나시는 이 시대의 가장 흥미로운 지휘자 중 한 사람이다. 밀라노의 Teatro alla Scala, 나폴리의 San Carlo, 로마의 Teatro dell’Opera·아레나 디 베로나, 피렌체의 Teatro Comunale, 스폴레토의 Festival dei Due Mondi 등 이탈리아의 주요 극장은 물론이고 빈의 Musikverein과 Konzerthaus, 함부르크의 Staatsoper,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Colon, 멕시코 시티의 Bellas Artes, 프라하의 Rudolfinum과 국립 오페라, 부다페스트 국립 오페라, 국립 오페라 브라티슬라바, 스톡홀름 왕립 오페라하우스 등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권위 있는 극장에서 수많은 교향악과 오페라의 지휘를 맡아온 베테랑이다. 이뿐만 아니라 미국 버지니아 주 포츠머스시의 명예 시민으로 2019년 이탈리아 대통령인 세르지오 마타렐라에게 Cavaliere dell’Ordine della Stella d’Italia 훈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주역들의 프로필도 화려하다. 여주인공 미미는 마리아 토마시가 맡는다. 아퀼라의 카젤라 국립음악원과 로마 산타체칠리아 음악원을 졸업하고 루치아노 네로니국제 성악콩쿠르, 움베르토 조르다노 국제오페라콩쿠르 등 해외의 수많은 콩쿠르서 우승하며 빈, 잘츠부르크, 취리히, 이스탄불, 뉴욕, 시카고 등 세계 주요극장에서 주역을 맡고 있는 세계 최정상급 소프라노다. 한국을 대표하는 리릭소프라노 김은희와 번갈아 미미를 연기한다.

로돌포 역은 서울대학교와 빈 국립음대 음악원을 졸업하고 코벤트가든 오페라 하우스에서 한국인 최초로 주역 가수로 발탁된 테너 박지민이 캐스팅됐다. 그는 빈 벨베데레 국제콩쿠르, 프랑스 아트송 국제콩쿠르, 이탈리아 비요티, 툴루즈 국제 성악콩쿠르, 에스토니아 Klaudia Taev, 스텔라마리스 국제성악콩쿠르(코벤트가든 대표로 참가) 등 수많은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한국을 대표하는 실력파 테너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안나 넵트렙코도 “박지민처럼 연기를 잘하는 성악가는 처음 본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2014년 Opera Britannia에서 세계 남성 성악가 중 최고의 남성 연주자로 선정돼 ‘나비부인’ ‘라보엠’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카르멘’ ‘라 지오콘다’ ‘시몬 보카네그라’ ‘나부코’ ‘리골레토’ ‘돈 조반니’ 등 수많은 레퍼토리로 전 세계극장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뛰어난 가창력의 소유자 막스 조타가 로돌포 역을 함께 맡은다.

무제타 역은 루치아노 파바로티 재단이 선택한 소프라노 줄리아 마졸라와 섬세한 표현력과 폭넓은 연기력으로 사랑받고 있는 한국의 박현정이 출연한다. 줄리아 마졸라는 Teatro Nuovo Giancarlo Menotti에서 베르디 ‘가면 무도회’ 오스카로 19세에 데뷔해 현재 전 세계극장의 주요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또한 무제타는 베오그라드 국립극장 오페라 스튜디오를 졸업하고 세계적인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와 잘츠부르크와 피렌체에서 여러 차례 콘서트를 하며 청중을 사로잡는 에너지와 감성적인 목소리로 어필한 드라골루브 바힉은 콜리네를 맡아 열연할 예정이다. 그 밖에 우주호, 김동원, 김성결 등 한국을 대표하는 성악가들이 대거 출연할 예정이다.

오페라 ‘라 보엠’은 ‘그대의 찬 손’ ‘내 이름은 미미’ 등 주옥같은 아리아와 아름답고 서정적인 선율로 가득 차 있어 더욱 가슴을 촉촉이 적셔준다. 사랑, 열정, 고뇌 그리고 가슴 녹이는 따듯한 우정과 위트로 가난한 보헤미안들의 삶 속에서 관객들 역시 찬란했던 젊은 날을 다시 한번 회상해보는 감동의 시간이 될 것이다.

솔오페라단은 서울 예술의전당 공연에 앞서 11월 10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콘서트 오페라 버전으로 ‘라 보엠’을 공연할 예정이다.

/kim67@classicbiz.kr

저작권자 ⓒ ClassicBiz,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