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오른손은 피아노를 치고 있었고 왼손은 허공을 가로지르며 지휘를 했다.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김선욱은 자신의 이름 앞에 붙은 수식어 그대로 피아노 연주와 지휘를 동시에 선보였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연주회가 열린 26일 롯데콘서트홀. 지휘자가 서는 포디움 대신에 그랜드 피아노가 무대 한가운데에 놓여있었다. 보통 피아노 협연 때는 포디움 옆에 피아노가 위치하지만, 이날은 협연자와 지휘자가 같았기 때문에 포디움을 치웠다. 공연 때 살짝 열어두는 피아노의 덮개도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시야 방해 없이 김선욱을 볼 수 있도록 미리 떼어 놓았다.
1부 연주곡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C장조(K.467)’.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장기 작품 중 하나다. 협주곡은 종종 지휘자가 지휘와 독주 악기 연주를 함께하고는 하지만, 국내 지휘자 가운데 지휘와 연주를 동시에 하는 경우는 드물다. 김선욱은 2021년 KBS교향악단과의 국내 지휘 데뷔 무대에서도 지휘와 연주를 함께 선보였다.
김선욱은 붙어있는 두 음을 번갈아 빠르게 치는 트릴 부분을 오른손으로 연주하면서는 왼손으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기도 했다. 피아노가 돋보이는 파트에서는 허리를 구부리고 연주에 집중했다가, 오케스트라에 방점이 찍히는 파트에서는 허리를 쭉 펴고 마치 몸으로 지휘하듯 전체 연주를 이끌었다.
그는 피아노 앞에 앉은 뒤 양손을 들어 경쾌하고 풍성한 선율이 돋보이는 1악장의 시작을 지휘했다. 포디움에 서 있을 때보다 단원들을 바라보는 시선의 높이가 낮아진 탓인지 몸을 좌우로 크게 움직이며 오케스트라에 신호를 줬다. 오케스트라와 피아노는 두 가지 주제를 다양하면서 대조적인 방식으로 풀어냈고, 피아노가 카덴차를 연주하자 오케스트라는 조용하게 1악장을 마무리했다.
2악장에서는 약음기를 낀 현악기가 영화 ‘엘비라 마디간’으로 유명한 선율을 연주했다. 선율 아래로 조용하게 울리는 셋잇단음표 피치카토는 2박자로 연주되는 피아노와 묘한 대조를 이뤘다. 마음 속 스크린에 영화의 한 장면이 오버랩됐다.
3악장에서는 오케스트라의 밝고 떠들썩한 제1주제를 두 번 반복하고 피아노도 이런 분위기에 동조한다.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서로 주제를 숨가쁘게 주고받다가 카덴차에 도달하고,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피아노의 상승 음계와 더불어 곡은 종결됐다.
2부에서는 포디움이 등장했다. 김선욱은 지휘봉을 들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죽음과 변용(Op.24)’ ‘장미의 기사 모음곡(Op.59)’을 선보였다. 두 곡 모두 스토리에 따른 감정의 변화가 두드러지는 곡으로 연주 중 순간순간의 클라이맥스를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20년 전부터 피아니스트와 오케스트라로 함께 해 온 김선욱과 서울시향의 하모니가 오랜 친구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죽음과 변용’은 교향시라는 형식에 기반해 25분간 끊임없이 이어지는 단악장 관현악곡이지만 네 부분으로 나뉜다.
2006년 18세의 나이로 리즈 국제피아노콩쿠르 역대 최연소이자 아시아 최초 우승을 거머쥔 김선욱은 피아니스트로서 국제무대를 누볐고, 최근에는 지휘자로서 필모그래피를 차근차근 채워가고 있다. 지난달에는 내년 1월부터 임기를 시작하는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선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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