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민 “첼로 하나로 홀로 80분 연주...2000석 부담 되지만 가장 꿈꿔온 무대”

롯데콘서트홀 ‘상주 음악가’ 뽑혀 두 차례 공연
직접 기획한 3월 무반주 솔로 리사이틀 기대감

10월엔 ‘선배’ 박재홍 등과 피아노 트리오 선사
“콩쿠르 후 1년은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온 시기”

민은기 기자 승인 2024.01.22 09:54 의견 0

2024 시즌 롯데콘서트홀 ‘인 하우스 아티스트’로 선정된 첼리스트 한재민이 19일 기자간담회에서 무반주 첼로 리사이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첼로 리사이틀을 하면 늘 피아노와 같이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되잖아요. 하지만 첼로도 솔로 악기로서 충분히 매력 있어요. 올해 가장 꿈꿔 온 연주 중 하나로 손꼽아 기다리는 공연입니다. 80분을 첼로만으로 채운다는 점이 부담되지만 기대되고 설레요.”

2006년생이다. 올해 열여덟 살. 첼리스트 한재민이 2024 시즌 롯데콘서트홀 ‘인 하우스 아티스트(상주 음악가)’로 선정돼 한 해 동안 ‘얼굴’ 역할을 한다. ‘인 하우스 아티스트’는 탁월한 음악적 역량을 겸비하고 자신만의 연주 철학과 개성을 추구하는 음악가가 다양한 시도로 관객과 만날 수 있도록 한 기획 프로그램이다.

처음 론칭한 2021년에는 음악감독 김민이 이끄는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와 에스메 콰르텟, 2022년에는 첼리스트 문태국과 피아니스트 신창용, 그리고 지난해에는 피아니스트 이진상과 바이올리니스트 윤소영이 선정됐다.

2024 시즌 롯데콘서트홀 ‘인 하우스 아티스트’로 선정된 첼리스트 한재민이 19일 기자간담회에 앞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중 사라방드를 연주하고 있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한재민은 19일 롯데콘서트홀 리허설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상주 음악가로 활동하게 돼 기쁘고 영광이다”라며 “올해 공연장의 간판이 되는 만큼 책임감을 갖고 모든 무대를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한재민은 자신이 기획한 프로그램으로 두 차례 관객을 만난다. A부터 Z까지 직접 플랜을 짜야하는 버거운 작업이다. 3월 27일에는 무반주 첼로 솔로 리사이틀, 10월 30일에는 헝가리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토프 바라티와 피아니스트 박재홍과 함께 트리오 무대를 준비한다.

먼저 피아노 반주나 다른 악기 없이 오로지 첼로 선율만으로 2000석 공연장을 채운다. 그 누구에게도 의존할 수 없다. 자신의 음악적 표현력을 최대한 보여주며 스스로 무대를 책임져야 한다. 엄청난 압박감이 몰려오는 공연이다.

존 윌리엄스 ‘세 개의 소품’을 비롯해 가스파르 카사도 ‘무반주 첼로 모음곡’, 죄르지 리게티 ‘무반주 첼로 소나타’, 졸탄 코다이 ‘무반주 첼로 소나타’를 들려준다. 무반주의 매력을 어필하려고 했을까. 간담회에 앞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중 사라방드(제4곡)를 맛보기로 보여줬다.

“공연의 메인 디시는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입니다. 코다이는 이 곡을 쓰면서 ‘몇 년 후에 모든 첼리스트가 연주할 곡’이라고 말했어요. 실제로 모든 첼리스트가 꼭 거쳐 가는 곡입니다. 저하고도 성향과 느낌이 무척 잘 맞아요. 사실 연주가 굉장히 힘든 곡인데, 그런 만큼 끝나고 나면 희열이 크죠. 세 손가락 안에 꼽는 곡입니다.”

2024 시즌 롯데콘서트홀 ‘인 하우스 아티스트’로 선정된 첼리스트 한재민이 19일 기자간담회에서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가을 무대에서는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트리오 ‘엘레지’ 1번을 비롯해 안토닌 드보르자크 피아노 트리오 4번 ‘둠키’, 표트르 차이콥스키 피아노 트리오 가단조를 연주한다.

협연자는 한재민이 직접 섭외했다. 꼭 한 번 함께 연주하고 싶었다는 크리스토프 바라티는 별다른 친분이 없는 데도 이번 공연 제안을 흔쾌히 수락해줬다. 박재홍은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선후배 사이로 수많은 음악 동료 사이에서도 우선해 찾는 피아니스트라고 했다.

“재홍이 형하고 여러 번 실내악을 했는데 너무 편해요. 밸런스를 기가 막히게 맞춰주는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에요. 사적으로도 자주 만나요. 피아노를 떠나 진짜 모든 음악을 사랑하는 선배입니다. 형을 만나면 배우는 게 너무 많아 좋아요.”

트리오로 선보일 3곡 모두 너무 애상적이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그런 것을 생각하고 선곡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가슴에 남는 곡이다. 조용하고 쓸쓸하게 끝나 더 매력적이다”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한재민은 ‘인 하우스 아티스트’ 활동이 자신의 업그레이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처음부터 공연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어떻게 연주를 끌고 갈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하면서 배울 수 있는 게 무척 많았다”며 “두 차례 공연이 끝나고 난 뒤에는 아쉬웠던 점이나 좋았던 점을 생각하면서 또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5세에 첼로를 시작한 한재민은 첼로 신동으로 불리며 ‘최연소’의 역사를 써 왔다. 8세에 최연소로 원주시립교향악단과 협연했고, 2005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최연소 예술 영재로 발탁됐다. 이어 15세이던 2021년 제오르제 에네스쿠 국제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한 데 이어 2022년 윤이상 국제 음악콩쿠르까지 우승하면서 세계적 주목을 받고 국내외에서 활발한 연주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 롯데콘서트홀 최연소 상주음악가에까지 오른 것. 그는 “그렇게 불러주셔서 너무 감사하지만 부담이 될 정도로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의젓함과 대범함이 묻어난다.

2024 시즌 롯데콘서트홀 ‘인 하우스 아티스트’로 선정된 첼리스트 한재민이 19일 기자간담회에서 무반주 첼로 리사이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왼쪽은 서유진 롯데콘서트홀 공연기획 팀장. ⓒ롯데콘서트홀 제공


한재민은 공연에서 ‘빨간 양말’을 신는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행운의 상징이 된 과정을 공개했다. 우승을 거머쥔 에네스쿠 국제 콩쿠르에서부터 시작됐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곡을 연주해야 했어요. 여성 연주자들은 곡에 따라 드레스를 매치해 표현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남성 연주자는 늘 정장 차림으로 연주를 해야 하죠. 제가 연주하는 곡을 의상으로 표현하고 싶었는데, 마침 양말이 생각나 세미 파이널을 마친 뒤 루마니아의 한 백화점을 찾아가 빨간 양말을 사서 신었어요. 그때 감사하게 좋은 결과가 나와서 그 이후로 빨간 양말을 신고 연주합니다.”

항상 빨간 양말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9월 지휘자 정명훈과 함께 한 KBS교향악단 협연 무대에선 검은 양말을 신었다. 그는 “그날은 연미복을 입었는데 빨간 양말이 도저히 어울리지 않아 신을 수 없었다”며 웃었다.

한재민은 윤이상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더 이상 콩쿠르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내면의 실력’을 키우는데 집중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는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콩쿠르 이후 ‘알을 깨고 나오는 느낌’을 받았다”며 “아직 많이 어리고 배울 게 많지만, 음악가로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고민을 혼자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도 고민하고 있고, 언제쯤 이 고민을 끝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며 “그 과정에서 음악을 대할 때 이전보다 더 근본적인 요소들을 찾아보려고 하고, 초심으로 음악을 바라보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2024 시즌 롯데콘서트홀 ‘인 하우스 아티스트’로 선정된 첼리스트 한재민이 19일 기자간담회에서 무반주 첼로 리사이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지난해는 환경에도 변화가 있었다. 고향 원주에서 서울로 통학하며 한예종에서 공부했는데, 하반기에 독일 크론베르크 아카데미로 유학을 떠났다. 부모와 떨어져 첫 자취생활을 해외에서 시작한 것. 독일에서는 볼프강 에마뉴엘 슈미트를 사사하고 있다. 같은 건물에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도 거주하지만, 바쁜 연주 일정 때문에 자주 볼 기회는 없다고 했다.

“이제 어느 정도 적응해서 잘 살고 있어요. 그곳 환경이나 도시 등의 느낌이 많이 다른데 좋아하게 됐죠. 다른 아티스들과 같이 만나고 생활하고 하는 것에도 재미를 느끼고 있고, 새로 배우고 있는 선생님과도 잘 맞아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또 새 악기에도 적응 중이다. 삼성문화재단으로부터 1697년산 조반니 그란치노 첼로를 대여 받아 사용하고 있다. 그는 “새 악기에 많이 친해진 것 같지만, 아직은 쉽지 않다”며 “그래도 소리를 내다보면 제가 내고 싶은 소리와 악기가 원하는 소리가 딱 맞았을 때 아름다운 악기라고 느낀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올해도 바쁜 한해를 예고하고 있다. 10월에 정명훈이 지휘하는 KBS교향악단과 함께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삼중 협주곡’을 선사한다. 정명훈이 지휘뿐만 아니라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이 함께 한다. 이에 앞서 스위스 로잔 챔버 오케스트라와도 약시 베토벤의 ‘삼중 협주곡’을 들려주는데. 르노 카푸숑(바이올린)과 이진상(피아노)이 함께 한다.

한재민은 2022년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당장 도전해보고 싶은 건 베토벤 소나타 전곡이다. 또 피아노 반주 없이 첼로 솔로 독주회를 하고 싶다. 그리고 한동안 콩쿠르에만 전념했는데 이제는 인간으로서 깊어지고 싶다”고 말했다.

콩쿠르 참가를 스톱하고 인간으로서 점점 깊어지고 있고, 무반주 첼로 리사이틀도 곧 열리니 이제 한 가지 목표가 남았다. “구체적 시기가 결정되지 않았지만 최대한 빠른 시기에 도전할 겁니다.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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