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민 “한번에 공연 4~5개 동시준비...어떻게 좋은 무대 보여줄까 늘 고민”

“첼로천재 아냐...될 때까지 연습하는 노력파
진심으로 순수하게 연주하는 아티스트가 꿈”

룩셈부르크필하모닉과 이달 드보르자크 협연
오케스트라 뚫고 나오는 첼로소리 매력 선사

민은기 기자 승인 2023.05.10 17:05 | 최종 수정 2023.05.10 17:16 의견 0
첼리스트 한재민이 룩셈부르크 필하모닉과의 협연을 앞두고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빈체로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크게 달라진 점요? 예전엔 공연을 하나만 준비하면 됐는데, 지금은 4~5개를 동시에 해야 해요. 불러주는 곳이 많으니 즐겁고 행복하죠. 횟수가 많아져 힘든 것도 사실이에요. (김)선욱 형에게 솔루션을 물었더니 ‘원래 그렇게 하는 거야’라며 담담하게 받아들이라고 조언해주더라고요.”

첼리스트 한재민은 최근 부쩍 많아진 연주에 대해 고충을 토로했다. 하지만 이런 고민의 밑바탕엔 ‘어떻게 해야 계속해서 좋은 공연을 보여줄까’라는 겸손한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그의 사전에 ‘대충대충은 없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구 공연기획사 빈체로 사무실에서 만난 한재민은 요즘 공연 준비 과정이 훨씬 더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며 이같이 밝혔다.

한재민은 2006년생이다. 굵직한 콩쿠르에서 잇따라 좋은 성적을 거두며 K클래식 스타로 떠올랐다. 이름 앞에 언제나 ‘역대 최연소’ ‘영재’ ‘천재’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올해 열일곱 살로서 어깨가 으쓱할 법도 한데 손사래를 친다.

“어휴~. 저 천재 아니에요. 천재였다면 하루 2∼3시간만 연습하고도 좋은 연주를 할 수 있겠죠. 타고난 능력이 없기 때문에 노력을 많이 해야 해요. 하루라도 연습하지 않으면 연주가 달라지는 것을 느껴요.”

완전 노력파다. 매일 오후 2~3시에 연습을 시작해 밤 9~10시가 돼야 첼로를 손에서 놓는다. 어떤 날은 새벽 2~3시까지도 씨름한다. “그날 연습해야 할 부분을 더 발견했을 때, 무언가 하나를 파고들기 시작했을 때 연습을 끊지 않고 이어 간다”며 “일단 시작하면 중간에 멈추지 못하는 성격이다”라며 웃었다.

그동안 거둔 성취는 놀랍다. 루마니아 제오르제 에네스쿠 국제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2021년 5월)하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어 제75회 제네바 국제 음악 콩쿠르 첼로 부문에서 3위(2021년 10월)에 올랐다. 그리고 지난해 6월 윤이상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특히 윤이상 콩쿠르에서는 아찔했던 순간이 있었다. 연주 중 첼로 줄이 두 차례나 끊어졌는데 당황한 기색 없이 줄을 새로 바꾼 뒤 연주했고, 마지막에는 줄이 느슨하게 풀렸지만 깔끔하게 연주해 큰 박수를 받았다. ‘강심장’ 한재민이다.

첼리스트 한재민이 룩셈부르크 필하모닉과의 협연을 앞두고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빈체로 제공

윤이상 콩쿠르 우승 덕에 병역특례 혜택을 받았지만, 컴피티션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음을 슬쩍 내비쳤다. “현재로서는 더 이상 콩쿠르에 욕심이 없다”며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음악보다 심사위원들에게 골고루 좋은 점수를 받을 만한 음악으로 준비하는 과정이 행복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콩쿠르는 ‘진’ 빠지는 과정이에요. 심사위원 7~8명 앞에서 최대한 호불호 없이 연주해야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어요. 연주자 스스로의 만족도와는 무관하죠. 정말 색다르게 해석해서 설득할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점수가 갈리는 리스크가 있어요. 제 아이디어보다는 규격에 딱 맞는 스탠더드 연주를 선택해야 합니다. 솔직히 음악으로 등수를 매긴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걸렸어요.”

그래서였을까. 윤이상 콩쿠르를 마친 뒤 2주 동안 아예 첼로를 손에 잡지 않았다. 예전엔 1주일 정도 쉬면 손이 근질근질해 다시 활을 잡았지만, 아예 2주 동안 거들떠 보지 않았다. ‘그동안 수고했어’라며 스스로에게 주는 포상휴가였던 셈이다.

한재민은 지난 2021년 7월 tvN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콩쿠르에서 받은 상금을 차곡차곡 저금하고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당시 그는 “악기 활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비싼 건 억대가 넘어가기도 하는데 활을 바꾸고 싶어 통장에 모아두고 있다”고 답했다.

지금까지 대략 상금으로만 6000만원 넘게 모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활을 바꾸었느냐고 물었더니 “못바꿨다. 마음에 드는 활이 아직 안 나왔다. 무조건 돈만 있다고 해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에게 안성맞춤의 활을 찾아야 하는데 마음에 쏙 드는 활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방송에도 출연하고 우승도 했으니 이제 ‘셀럽’ 아니냐고 했더니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그는 현재 한예종 3학년에 재학 중이다.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원주에서 서울로 고속버스를 타고 통학한다. 항상 첼로를 가지고 다녀야하기 때문에 두 자리를 예매하는데 ‘음악 하는 사람인가 보네’라며 그냥 무심하게 지나치지, ‘와 한재민이다’라고 단박에 알아보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클래식 음악의 입문은 자연스러웠다. 부모님이 모두 플루트를 전공했다. 처음에 어머니 후배에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다. 그는 “집에선 늘 플루트의 고음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반대급부였을까. 첼로의 저음에 마음이 끌렸다”고 했다. 5세 때 시작한 첼로는 그에게 날개였다. 8세에 원주시립교향악단과 협연했고, 2017년 헝가리 다비드 포퍼 국제첼로콩쿠르, 2019년 독일 돗자우어 국제첼로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첼로 영재로 이름을 알렸다.

좋아하는 첼로 연주자가 누구냐고 묻자 다닐 샤프란, 에드가 모로, 고티에 카퓌송의 이름이 줄줄이 나온다. 어릴 적엔 피에르 푸르니에를 정말 좋아했다며 “사실 매일 좋아하는 첼리스트가 달라진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대중음악도 즐겨 듣는다. 유재하, 이문세, 김광석처럼 잔잔한 음악을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다양한 아티스트의 음악을 통해 음악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첼리스트 한재민이 룩셈부르크 필하모닉과의 협연을 앞두고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빈체로 제공

음악 이야기를 할 때는 진중했지만 요리와 축구 등 취미생활을 털어 놓을 때는 다시 열일곱 소년이다. 눈빛이 반짝였다. 그는 “카르보나라 파스타, 고추장 찌개를 잘 한다. 공도 자주 차는데 철칙은 있다. 손가락 다칠까봐 음악 하는 사람하고만 축구를 한다. 야구는 절대 안한다”고 말했다.

한재민은 지난해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적 스타로 떠오른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각별한 사이다. 2017년 한예종 산하 한국예술영재교육원(영재원)에, 2021년 한예종에 나란히 조기 입학한 동기다. 임윤찬(2004년생)이 두 살 더 많다.

그는 “형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는 형에게서 좋은 자극을 받는다. 노력하는 모습, 음악을 만드는 모습을 보고 느끼는 점이 많다”라며 “윤찬이 형과 함께 연주하면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

지휘 욕심도 살짝 내비쳤다. 그는 “제가 이끌어서 나오는 음악이 어떨지 궁금하다”라며 “선욱이 형한테 ‘지휘 많이 어려워요’라고 질문하니 ‘응 어려워’라며 단호박 답변을 들었다”라고 말해 웃음을 안겨줬다.

당장 5월에 ‘빅 무대’를 앞두고 있다. 24~28일 서울, 인천, 대구, 진주 등에서 음악감독 구스타보 히메노가 지휘하는 룩셈부르크 필하모닉과 협연한다. 룩셈부르크 필하모닉은 1933년 설립됐다. 독일, 프랑스 등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을 살려 이들의 음악적 특성과 전통을 모두 담아낸 악단으로 평가받는다. 20개국에서 모인 연주자들이 최고 수준의 음악을 구현하고 있다. 아쉽게도 한국인 단원은 없다. 내한공연은 2003년 이후 20년 만이다.

이번에 선보일 곡은 안토닌 드로브자크의 ‘첼로 협주곡 b단조(Op.104)’. 그는 “첼리스트라면 언젠가 꼭 연주해야하는 곡이다. 작품에 담겨있는 감정이 풍부해 매력적이다”라며 “룩셈부르크 필하모닉이라는 오케스트라가 있는 줄은 알았지만 솔직히 잘 알지는 못했다. 지난해 공연이 픽스된 후 열심히 찾아보고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내서 외국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가장 기대되는 공연 중 하나다.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뚫고 나오는 대편성곡은 관객에게 희열을 준다”고 했다.

공연을 마친 뒤 한재민은 독일로 유학을 떠난다.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에서 전문가 학습 과정을 밟는다. 첼리스트 볼프강 에마누엘 슈미트에게 배울 예정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와 비올리스트 박하양이 이곳에 다니고 있다. 그는 “클래식 본고장에 가서 공부하는 데다, 학생들 모두 대단한 아티스트라 같이 음악을 하고, 실내악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된다. 공연 보는 걸 정말 좋아하는데, 좋은 공연을 접할 기회가 많아 설렌다”고 말했다.

이제 10대 후반인 한재민이 걸어야 할 길은 길고도 멀다. ‘큰물’로 가겠다는 선택이 슈퍼스타 첼리스트로 가기 위한 초이스가 아니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진심으로 순수하게 연주하는 연주자’가 목표라도 강조했다.

“음악 하는 사람이라면 커리어에 욕심이 없을 수는 없어요. 하지만 내면의 음악이 탄탄하면 커리어는 따라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스스로를 밀어붙이고 싶지 않아요. 초심을 잃지 않고 제 음악을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 음악가로서 가장 중요한 일이에요. 제 음악을 들었을 때 진심 어린 마음으로 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하고 싶어요. 그런 연주를 하는 것이 음악가로서 큰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저의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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