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리뷰] 순수하고 투명한 ‘그리운 금강산’ ‘아리랑’...빈소년합창단 ‘두성의 매직’

하이든팀 21명 천상의 목소리 선사
​​​​​​​빈의 정취 가득한 왈츠로 분위기 업

민은기 기자 승인 2024.01.26 11:17 | 최종 수정 2024.01.26 11:19 의견 0
“오빠 사인해줘요.” 빈소년합창단이 23일 공연을 마친 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로비에서 사인회를 진행하고 있다. ⓒLukas Beck/WCN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52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합창단이다. 오스트리아 빈소년합창단 21명이 무대로 걸어 나왔다. 합창단은 보통 8세부터 14세까지의 변성기 이전의 소년 100여명으로 구성되는데 ‘브루크너’ ‘모차르트’ ‘하이든’ ‘슈베르트’라는 이름을 지닌 4개 팀이 돌아가면서 해외 투어를 한다. 올해는 하이든팀이 내한했다.

2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세일러 카라가 달린 흰색 상의와 짙은 남색 바지의 유니폼을 입은 단원들이 성가 ‘알렐루야’(윌리엄 보이스 곡)를 부르며 왼쪽과 오른쪽 문에서 동시에 입장했다. 맑은 목소리 비법은 고음을 낼 때 반드시 머리를 울리는 두성을 사용한다는 것. 그래야 훨씬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소리가 나온단다.

프로그램은 다채로웠다. ‘온 스테이지(On Stage)’라는 부제에 걸맞게 주요 레퍼토리인 성가는 물론 뮤지컬, 오페라, 영화에 쓰인 곡들과 각국 민요 등으로 구성했다. 올해로 10년째 합창단을 지휘하고 있는 홍콩 출신의 오스트리아인 지미 치앙은 직접 피아노를 치며 소년들을 이끌었다.

첫 곡에 이어 하이든팀의 유일한 한국인 단원인 열한살 구하율 군이 “빈소년합창단 콘서트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마음껏 즐겨주세요”라고 인사해 미리 분위기를 한껏 띄웠다. 피아노를 한가운데 두고 작은 연단에 나눠 선 단원들이 본격적으로 ‘천사들의 합창’을 들려줬다. 안경을 수시로 고쳐 쓰고, 노래 도중에 슬쩍 옆자리로 눈길을 돌리고, 가려운 곳을 긁고, 바지춤을 치켜 올리는 폼은 영락없는 아이들이지만 노래 실력은 프로다.

빈소년합창단이 23일 예술의전당 공연을 마친 뒤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민은기 기자


뮤지컬 ‘애니여 총을 잡아라’에 나오는 ‘쇼처럼 즐거운 인생은 없다’(어빙 벌린 곡)를 부른 뒤 소년들은 무대로 흩어졌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를 합창단 편곡 버전으로 불렀다. 그동안 주로 현악기 연주로 많이 들었는데, 피아노 반주도 없이 오직 목소리만으로 연주해 특별함을 안겼다.

‘우리의 영혼’(미하엘 하이든 곡)과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야코부스 갈부스 곡)는 마음속 티끌을 깨끗이 씻어내는 소나기 같았다. 듣기만 해도 저절로 경건해지는 묘약이다.

이후 우리 귀에 익숙한 곡들이 줄줄이 펼쳐졌다. 영화 ‘시스터 액트’에서 성가대가 유쾌하게 노래를 부르는 명장면에 삽입된 ‘하늘의 여왕’(마크 샤이먼 곡)은 익사이팅했다. 갑자기 무대 조명이 어두워졌다. 고개를 숙이고 경건하게 도입부를 부르던 아이들은 피아노의 신호가 떨어지자 손뼉을 치며 환희에 찬 합창으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조명 또한 밝아지며 탬버린과 잼배까지 곁들이니 흥겨움이 더블이 됐다.

영화 ‘미션’의 테마곡인 엔니오 모리코네의 ‘가브리엘 오보에’에 가사를 붙인 ‘넬라 판타지아’, 프란츠 슈베르트의 ‘곤돌라 뱃사공’, 자크 오펜바흐의 오페라 ‘호프만 이야기’ 중 ‘아름다운 밤, 사랑의 밤’ 등이 흐르며 멋진 화요일을 더욱 빛냈다.

1부의 마지막은 빈 음악의 상징인 왈츠가 장식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조간신문 왈츠’는 각기 다른 음역의 목소리가 조화를 이루며 왈츠 특유의 우아하고 경쾌한 느낌을 잘 살렸다.

‘개구쟁이 합창단’ 빈소년합창단이 23일 공연을 마친 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로비에서 사인회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Lukas Beck/WCN 제공
빈소년합창단이 23일 공연을 마친 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로비에서 사인회를 진행하고 있다. ⓒLukas Beck/WCN 제공


2부는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두 작품으로 열었다. ‘맥베스’에 나오는 ‘무엇을 하고 있었지? 말해봐!’에 이어 ‘나부코’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인 ‘날아가라 상념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가 흐르자 뭉클함이 몰려왔다. 영화 ‘매직 스워드’ 중 ‘기도’(데이비드 포스터·캐롤 베이어 세이거·알베르토 테스타·토니 레니스 곡)는 경건했다.

신년 아닌가. 깜짝 선물도 준비했다. 프로그램북에 없던 곡을 하나 더 끼워 넣었다. 단원 2명이 나와 한명은 피아노를 치고 한명은 노래를 했다.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케루비노의 아리아 ‘사랑이 무엇인지 아시나요’다. 구하율 군은 “저 두 사람은 짝꿍이다”고 재치 있게 소개해 웃음을 안겨줬다.

우크라이나에서 새해를 맞아 부르는 ‘슈슈드리크’(미콜라 레온토비치 곡), 세르비아 민요 ‘니스의 뜨거운 온천’에 이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곡인 한상억 시·최영섭 곡의 ‘그리운 금강산’을 들려줬다. 템포를 조금 빠르게 가져갔다. 빈소년합창단 특유의 높은 고음으로 그리움보다는 희망과 기대감을 전달하려고 애썼다. 한국 노래를 준비해 온 합창단에 관객들은 환호와 박수로 화답했다.

뉴질랜드 민요 ‘웰러맨’, 오스트리아 민요 ‘나는 슈타이어마르크 청년이다’는 각국의 노래 특색을 잘 살려냈다. 2부의 피날레도 역시 1부와 마찬가지로 슈트라우스 2세로 꾸몄다. ‘산적-갤롭’ ‘황제 왈츠’로 빈의 정취를 선사했다.

빈소년합창단이 23일 예술의전당 공연을 마친 뒤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민은기 기자


앙코르에서는 한국 팬들에게 제대로 서비스했다. 구하율 군이 기타 반주에 맞춰 ‘아리랑’을 솔로로 1절을 부른 뒤, 2절에서는 다른 단원들의 허밍과 화음이 얹어지면서 뭉클함을 안겼다. 앙코르 한곡 더는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 단원 한명이 앞으로 나와 노래를 부르며 박수를 유도했다.

류태형 음악평론가(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는 “어떤 곡을 들어도 청신한 솔로와 합창으로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에 대해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모차르트의 간결한 악구를 천상의 무구한 목소리가 재현할 때, 순수함은 더 투명해지고 투명함은 더 순수해지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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