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권은주 “첫 리사이틀부터 갈비뼈 투혼...드보르자크·드뷔시 연가곡 선사”

만하임극장 전속 솔리스트 9년 활동후 귀국
오페라 대신 ‘감칠맛 가곡’으로 14일 독창회

트랜스젠더 역할 하면서 연기 업그레이드
류·미카엘라 노래하면서 성악적으로도 점프

민은기 기자 승인 2024.03.11 19:17 | 최종 수정 2024.03.12 07:07 의견 0
독일 만하임극장 최초의 ‘한국인 소프라노 전속 솔리스트’루 활약했던 권은주가 오는 3월 14일 세종체임버홀에서 첫 리사이틀을 연다. ⓒ권은주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오랫동안 기침이 너무 심해 갈비뼈에 금이 갔어요. D데이에 맞춰 컨디션을 최상으로 끌어 올려야하기 때문에 그동안 홍보는 엄두를 못냈어요. 그런데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어디서 들었는지 지인들로부터 전화와 문자가 빗발쳤습니다. ‘철저하게 비밀이냐’ ‘쥐도 새도 모르게 하려고 하는거냐’ 등 따가운 애정의 말을 들었어요.”

이쯤되면 ‘갈비뼈 투혼’이다. 맑고 서정적인 목소리와 섬세한 감정선으로 자신만의 확고한 음악 세계를 만들어가는 소프라노 권은주가 리사이틀을 연다. 독일 만하임극장 최초의 ‘한국인 소프라노 전속 솔리스트’는 오랫동안의 외국 생활을 마치고 고잉홈해 첫 독창회를 펼친다. 오는 14일(목) 오후 7시 30분 세종체임버홀에서 팬들을 만난다.

8일 전화인터뷰에서 그는 설렘과 떨림이 뒤섞인 목소리로 “며칠 남지 않았지만 이제부터라도 널리 좀 알려야겠다”며 “한국에서 처음으로 저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자리이기 때문에 더 잘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동안 오페라에만 집중했고 여러 콘서트에서도 주로 아리아만을 연주해 가곡을 부를 기회가 많지 않았다”면서 “이번에는 특별히 감칠맛을 주는 가곡에 힘을 줬다”고 덧붙였다.

연가곡 2개를 프로그램에 넣었다. 안토닌 드보르자크의 ‘집시의 노래(Zigeunermelodien)’와 클로드 드뷔시의 ‘잊혀진 노래들(Ariette Oubliees)’이다. 선곡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만하임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자유를 느낄 수가 없었어요. 뭔가 답답하고 꽉 막힌 기분이 들었죠. 코로나 시기였기 때문에 그것도 한몫 했고요. 그때 문득, 세상에 집시만큼 자유로운 사람이 또 있을까라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집시의 노래’를 골랐어요. 자유를 향한 갈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집시의 노래’에 들어있는 7곡 모두를 부른다. 보헤미안 특유의 선율과 결부된 자유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네 번째 곡인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노래’는 가장 유명한 곡이다. 성악곡뿐만 아니라 기악곡 버전으로도 자주 연주된다.

멜로디, 즉 프랑스 예술가곡인 ‘잊혀진 노래들’은 총 6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화성의 변화가 아름답다. 처음 들으면 살짝 지루할 수도 있지만 다양한 감각적 정서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인상적이다. 전체적으로 노래가 예쁘다. 독일 독창회에서도 연주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제4곡 ‘목마’는 빠른 곡인데 재미있고 아기자기하다”고 감상팁을 알려줬다.

독일 만하임극장 최초의 ‘한국인 소프라노 전속 솔리스트’루 활약했던 권은주가 오는 3월 14일 세종체임버홀에서 첫 리사이틀을 연다. ⓒ권은주 제공


권은주는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졸업 후 독일로 건너갔다. 만하임 국립음대 리트 오라토리오과 석사 및 오페라과 최고연주자 과정을 졸업했다. 한양대 재학 당시 이미 동아음악콩쿠르 3위, 성정음악콩쿠르 최우수상 등 다수의 경연에서 입상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독일로 무대를 옮긴 후 발터 운트 하멜 슈티푸퉁(Walter und Hamel Stiftung) 콩쿠르 3위를 시작으로, 노이에 슈팀멘(Neue Stimmen) 국제콩쿠르에서 동양인 최초 1위를 거머쥐며 해외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았다.

러브콜이 쇄도했다. 글로벌 콩쿠르에서 입상하자마자 여러 곳에서 오디션 제의가 몰려왔다. 그중 꿈의 무대인 빈슈타츠오퍼 영아티스트 프로그램에 합격했다. 스물일곱 살 때다. 어마어마한 행운이 찾아온 것이다.

“덜컥 겁이 났어요. 어린 나이에 너무 일찍 합격한 편이었습니다. 아직 학생 신분이었기 때문에 막 적응한 유학지(독일)를 떠나 다시 새로운 나라(오스트리아)에서 시작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어요. 세계 최고의 극장이지만, 그 극장에서 작은 역할을 할 것인가. 아니면 A급 극장에서 큰 역할을 할 것인가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 결국 빈슈타츠오퍼 대신 만하임 국립극장 오디션에 합격해 주역을 맡기로 했죠. 이곳의 다양한 레퍼토리와 혹독한 훈련은 성악 기량을 한층 높여준 계기가 됐습니다.”

만하임극장은 ‘레퍼토리 하우스’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그만큼 많은 장르의 곡을 공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유명하다. “만하임극장에서 목소리가 ‘가지 않고’ 살아남는 자는 인정받아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바로크에서 현대음악까지 다양한 공연이 끝없이 이어진다.

“차곡차곡 시즌을 겪으면서 ‘무대야말로 최고의 스승’이라는 사실을 절감했어요. 또한 연습과 실제 무대 역시 천양지차라는 것도 깨달았어요. 이렇게 9년여 동안 무대에 서면서 저만의 음악을 만들어갔습니다. 오페라는 노래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라 액팅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합니다. 동양인들은 수줍어하고 쭈뼛거리는 경우가 많은데, 다행히 여러 연출자와 작업하고 무대 경험이 쌓이자 자신감이 늘었어요.”

이번 리사이틀 오프닝은 춤추고 싶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경쾌한 곡을 준비했다.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HWV56)’에 나오는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하라(Rejoice greatly, O daughter of Zion)’다. 그리고 봄의 분위기를 흠뻑 느낄 수 있는 프란츠 슈베르트의 ‘봄날에(Im Frühling)’와 ‘호수에서(Auf dem See)’도 들려준다.

반주는 피아니스트 조시온이 맡는다. 그도 비슷한 시기에 만하임에서 유학 생활을 했기 때문에 몇 차례 ‘합’을 맞춘 경험이 있다. 권은주는 “벌써 10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며 “저의 요구를 100% 소화해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라며 기대감을 높였다.

독일 만하임극장 최초의 ‘한국인 소프라노 전속 솔리스트’루 활약했던 권은주가 오는 3월 14일 세종체임버홀에서 첫 리사이틀을 연다. 독일 활동 당시의 권은주 공연 모습. ⓒ권은주 제공


권은주는 독일에서 ‘오페라 스타’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연기적으로 한층 성숙하게 된 무대 중 잊지 못한 역할은 알프레도 카탈라니의 오페라 ‘라 왈리’의 발터다. 틸만 크나베가 새로운 시각으로 연출했다.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트렌스젠더 역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요. 1막에서는 소년으로 출발해 점차 성장하면서 끝내는 여성으로 변하는 캐릭터였어요. 정말 어려웠죠. 롤을 능숙하게 소화하기 위해 만하임 게이 페스티벌을 찾아가 게이들의 손짓과 발걸음, 대화 등을 유심히 관찰하느라 아주 힘들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역할이에요. 흡연 장면을 연습하기 위해 가짜 전자시가를 빌려 얼마나 연습했는지 모릅니다.”

여기에 더해 권은주는 성악적으로 훌쩍 성장하게 된 배역을 털어 놓았다. 먼저 ‘투란도트’에 나오는 류다. 이전에는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비교적 가벼운 성부를 노래했다. 레제로(leggero) 역할이 많았던 것. 그러나 그의 소리는 사실 리리코(lirico)였다. 류를 맡으면서 마음껏 자신의 기량을 펼칠 수 있었다. 물 만난 고기가 됐다.

“첫 시즌을 시작했을 때 극장장이 툭 한마디 던졌어요. ‘몇 년 뒤 은주의 리릭한 소리가 기대된다’고 했어요. 처음에는 나이에 맞게 레제로 역할인 아디나(‘사랑의 묘약’의 주인공) 등을 노래했습니다. 무대 경험이 쌓이고 소리가 익어갈 즈음 극장장이 저에게 류 역할을 추천했어요. 성악가로서 도약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어요. 극장장의 ‘권유 타이밍’이 아주 주효했습니다.”

‘카르멘’의 미카엘라 역시 작품을 비틀어서 어떻게 연기하고 노래해야 할지 가르쳐준 잊지 못할 배역이다. 미카엘라는 내성적이고 겁이 많다. 조심스럽고 얌전한 이미지다. 아마도 대범한 카르멘과 대조하기 위해서는 그런 성격이 필요했을 법하다. 그러나 권은주는 연출가 요나 킴을 만나면서 미카엘라의 성격을 완전히 뒤바꿔 노래할 기회를 얻게 됐다. 순둥이 미카엘라가 아니라 카르멘의 얼굴에 침을 뱉기까지 하는 저돌적인 성격으로 변신했다.

권은주는 “미카엘라에 대한 고정관념을 없애느라 무척 애를 썼고, 연기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공연이 끝난 뒤 만하임의 언론은 극찬에 가깝게 호평했다. 독일의 극장장은 카르멘의 성공적인 공연에 대해 요나 킴에게 올해의 연출상을 수여했고 미카엘라 역의 권은주 역시 주가가 쑥 올랐다.

만하임에서 무려 10년 가까이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탄탄한 기초교육에서 찾을 수 있다. 스승 박정원 교수 덕분이다. 그는 “대학교 때 기초를 너무 잘 배웠다. 그때 배운 테크닉을 독일에서 잘 활용했다. 성악은 호흡이 반인데 특히 선생님께 호흡을 너무 잘 배웠다”라며 고마움의 말을 잊지 않았다.

독일 만하임극장 최초의 ‘한국인 소프라노 전속 솔리스트’루 활약했던 권은주가 오는 3월 14일 세종체임버홀에서 첫 리사이틀을 연다. 독일 활동 당시의 권은주 공연 모습. ⓒ권은주 제공


권은주는 독창회 피날레로 샤를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에 나오는 ‘아! 거울 속 아름다운 내 모습(Ah! Je ris de me voir si belle)’을 부른다. ‘보석의 노래’라고도 불리는 이 곡은 순진한 시골처녀 마르그리트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놓고 간 보석함을 열어 보고 마음을 빼앗기는 장면에 나온다. 장식적 기교음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콜라라투라의 솜씨도 선보인다.

아쉬운 마음도 살짝 드러냈다. 원래는 후고 볼프의 연가곡 ‘미뇽의 노래’를 하고 싶었는데, 드뷔시의 연가곡과 분위기가 너무 겹쳤다. 그래서 이번에는 볼프의 곡을 접었다.

“가장 좋아하는 곡입니다. 만하임 졸업연주 때 이 곡을 연주했는데 노래를 부르면서도 너무 슬펐어요. 미뇽의 처지에 100% 공감됐죠. 관객들이 멀리 있어 보이지 않겠지하면서 주르륵 눈물이 흘렸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마스카라가 번져 눈 부위가 엉망이었어요. 두 번째 독창회 프로그램을 이렇게 미리 공개하게 됐네요.”

/eunki@classicbiz.kr

저작권자 ⓒ ClassicBiz,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