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훈이 콩쿠르 심사위원 울린 노래...코른골트 오페라 ‘죽음의 도시’ 국내 초연

국립오페라단 5월 23~26일 예술의전당 공연
​​​​​​​‘귀만큼이나 눈으로 음미’ 줄리앙 샤바스 연출

민은기 기자 승인 2024.05.09 16:04 | 최종 수정 2024.05.09 16:13 의견 0
파울 역의 테너 로베르토 사카와 마리/마리에타 역의 소프라노 레이첼 니콜스가 5월 23~26일 공연하는 ‘죽음의 도시’를 연습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바리톤 김기훈은 2021년 6월 카디프 싱어 오브 더 월드 결선에서 ‘나의 갈망이여, 나의 망상이여(Mein Sehnen, mein Wähnen)’를 불렀다.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 2막에 나오는 아리아다. 오페라 속 여주인공 마리에타가 극단 단원들에게 축배를 제안한 후, 프리츠에게 노래를 요청해 부르게 되는 애수 섞인 아리아다.

콩쿠르 심사위원인 세계적 소프라노 로버타 알렉산더는 김기훈의 노래를 듣던 중 눈물을 흘렸다. 그가 눈물을 닦는 모습은 TV로 고스란히 중계됐다. 바리톤들의 최애곡 중 하나인 이 곡은 김태한이 2023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결선에서 부른 네 곡 중 한곡이기도 하다.

작품 자체는 생소할지라도 ‘죽음의 도시’에는 관객의 마음을 훔친 아름다운 노래들이 많다. 1막에서 죽은 아내와 닮은 마리에타와 파울이 함께 부르는 ‘내게 머물러 있는 행복(Glück, das mir verblieb)’도 유명하다.

파울 역의 테너 로베르토 사카와 마리/마리에타 역의 소프라노 레이첼 니콜스가 5월 23~26일 공연하는 ‘죽음의 도시’를 연습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국립오페라단은 오는 5월 23일부터 26일까지 나흘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한편의 영화 같은 오페라 ‘죽음의 도시’를 국내 초연한다. 조르주 로덴바흐의 소설 ‘죽음의 브뤼주’를 원작으로 코른골트가 23세 때 작곡했다. 1920년에 초연했으나 후기 낭만주의 성격이 짙은 작품으로 유려한 멜로디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연상시키는 3관 편성의 거대한 오케스트라가 만들어 내는 음향이 장점이다.

‘죽음의 도시’는 죽은 아내 마리를 그리워하는 파울의 이야기다. 파울은 아내의 머리카락을 비롯해서 그의 물건들을 그대로 보관하며 과거의 기억 속에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는 죽은 아내와 닮은 마리에타를 알게 되고 집으로 초대한다. 마리에타는 유랑극단의 무용수로 파울의 집에 와서 유혹적인 춤을 춘다. 이후 파울에게 마리의 환영이 나타나 사랑과 신의를 요구한다.

한편 유랑극단의 예술가들이 도시 광장에 나타나 공연한다. 파울은 마리의 혼에 사로잡혀 공연에 끼어들어 마리에타를 모욕한다. 아내 외에 다른 여자는 거들떠보지 않겠다던 파울은 양심의 가책을 느껴 괴로워하고 마리에타는 이런 그의 모습을 비웃기라도 하듯 마리의 머리카락을 빼앗는다. 파울은 다시 그 머리카락을 빼앗아 그것으로 마리에타의 목을 조른다. 파울이 정신을 차리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정돈된 방을 보고 도시를 떠나기로 한다.

● 말러·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인정한 ‘오스트리아의 신동’

줄리앙 샤바스 연출(왼쪽)이 파울 역의 테너 로베르토 사카(오른쪽)와 마리/마리에타 역의 소프라노 레이첼 니콜스와 ‘죽음의 도시’를 연습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코른골트는 7세 때부터 작곡을 시작해 오스트리아의 신동으로 불렸다. 말러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그를 천재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작곡을 이어와 23세에 그의 세 번째 오페라 ‘죽음의 도시’를 작곡했다.

‘죽음의 도시’를 초연했던 1920년 당시는 쇤베르크가 고안한 12음 기법이 대세를 이루던 시기였기에 무조성과 불협화음이 득세했지만, 코른골트는 신음악에 동참하지 않고 후기 낭만주의 연장선에서 작곡을 이어갔다.

그렇기에 ‘죽음의 도시’는 말러와 유사한 낭만주의적 선율과 함께 상실감에 따른 절규를 드라마틱하게 선사한다. 또 ‘죽음의 도시’는 초연부터 대성공을 이뤘는데, 이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상실감으로 고통 받았던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후 코른골트는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 할리우드 영화음악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한다.

● 고음·체력이 요구되는 극악 난이도의 오페라

국립오페라단이 오는 5월 23~26일 ‘죽음의 도시’를 공연하는 가운데 출연진들이 연습을 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이번 프로덕션은 독일 지휘자 로타 쾨닉스와 스위스 연출가 줄리앙 샤바스가 이끈다. 로타 쾨닉스는 오스나브뤼크 극장의 음악감독을 역임하고 빈 주립오페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등 세계적인 오페라극장에서 모차르트부터 베르크까지 폭 넓은 레퍼토리를 보여주고 있는 지휘자다.

줄리앙 샤바스는 마그데부르크 오페라극장의 극장장을 역임하며 특히 현대 오페라 제작으로 오페라계에 이름을 알린 연출가다. ‘귀만큼이나 눈으로 작품을 음미하게 한 연출’이라는 평을 들으며 세계 오페라극장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주목할 만한 출연진으로는 파울 역의 로베르토 사카다. 풍부한 음색과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는 테너다. 30년 동안 세계 주요 오페라극장에서 연주해 왔으며, 2012~2014년에는 특히 바그너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작품에 집중해 공연을 이어왔다. “눈부시게 밝고 자연스러우면서도 영웅적인 색깔을 지닌 테너(오페라 나우)”이자 “섬세한 친밀감과 폭발적인 힘 사이를 오가는 테너(오페라 네트워크)”로 사랑받고 있는 아티스트다.

또한 마리/마리에타 역의 소프라노 레이첼 니콜스도 주목할 만하다. 드라마틱 소프라노로 영국 로얄오페라에서 바그너 ‘파르지팔’로 데뷔했으며 영국 옵저버지는 “꽉 찬 음색, 유연하고 정확한 힘을 가진, 모든 움직임에 설득력을 가진 소프라노”로 평가했다.

국립오페라단이 오는 5월 23~26일 ‘죽음의 도시’를 공연하는 가운데 출연진들이 연습을 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국립오페라단이 오는 5월 23~26일 ‘죽음의 도시’를 공연하는 가운데 출연진들이 연습을 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죽음의 도시’가 아름다운 음악의 오페라임에도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이유는 성악가들에게 극악의 난이도를 요구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파울 역은 하이 B플랫, A음이 가득한 노래가 요구되며 2막의 일부를 제외하면 계속 무대 위에서 노래해야 하는 강한 체력이 필요한 역할이다.

이와 더불어 마리에타 역 역시 높은 테시투라(낼 수 있는 음역 가운데 가장 편하고 안정적인 음색을 내는 구간)를 요구한다. 이번 프로덕션에는 이미 유럽에서 ‘죽음의 도시’ 무대를 경험한 베테랑들이 출연해 극악의 난이도 작품임에도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레이첼 니콜스는 2022년 러프버러 페스티벌에서 같은 작품을 연주했으며 특히 로타 쾨닉스와 로베르토 사카는 2020년 벨기에 라 모네 왕립극장에서 ‘죽음의 도시’를 함께 연주한 바 있어 더욱 정밀해진 호흡을 볼 수 있는 기회다.

이뿐만 아니라 테너 이정환과 소프라노 오미선이 파울 역과 마리/마리에타 역에 더블 캐스팅됐다. 프랑크/프리츠 역에 바리톤 양준모·최인식, 브리기타 역에 메조소프라노 임은경, 줄리에트 역에 소프라노 이경진, 루시엔느 역에 메조소프라노 김순희, 빅토랭 역에 테너 강도호, 알베르 백작 역에 테너 위정민이 무대를 빛낼 예정이며 가스통 역은 임재헌이 맡아 판토마임을 선보인다.

국립오페라단은 현장 공연의 생생한 감동을 온라인을 통해서도 선보인다. 이번 ‘죽음의 도시’는 5월 25일(토) 오후 3시 국내 최초 오페라 전용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인 크노마이오페라와 네이버tv를 통해서 랜선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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