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김일환 기자] “최근 눈에 띄는 관악 연주자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활동할 공간이 없습니다. 오케스트라 외에 그들이 연주할 기회를 많이 줘야합니다. 그래서 항상 관악곡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서울국제음악제 류재준 예술감독이 올해 16회를 맞은 서울국제음악제(SIMF) 프로그램에 목관과 금관 곡을 두루 편성한 이유를 설명하며 관악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번뿐만 아니라 그동안 꾸준히 관악곡을 넣었다.
류재준 감독은 지난 25일 서울 중구 레이첼카슨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서울국제음악제는 ‘중부유럽 여행’라는 이색적인 콘셉트로 10월 18일(금)부터 26일(토)까지 모두 일곱 차례 공연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그는 “폴란드,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등 유럽 중부지역 국가들의 음악을 집중 조명한다”며 “서울국제음악제는 관객의 행복과 좋은 연주자들의 협력·교류를 목적으로 하는 음악 축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슈베르트와 드보르자크 등 중부유럽 국가들의 대표 작곡가들을 소개한다”고 덧붙였다.
류 감독은 관악기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목관·금관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이 너무 차이나서 어려운 악기다. 실력이 금방 들통 난다”며 “관악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한국 연주자들이 많이 배출됐다. 그들을 소개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올해도 관악곡을 많이 연주한다. 특히 킬라르의 ‘목관 오중주’, 바르톡의 ‘금관악기를 위한 모음곡’, 류재준의 ‘클라리넷을 위한 협주곡’ 등이 눈길을 끈다.
또한 한국 작곡가들의 작품을 ‘서울의 정경’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하는 콘서트도 기대된다. 탄생 90주년을 맞은 한국 현대음악의 대가 강석희(1934~2020)와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리고 있는 여성 작곡가 이원정·김지향의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가객 김보라와 소프라노 이상은이 참여해 ‘우먼 파워’를 보여줄 예정이다.
류 감독은 “세 작품 모두 인성(사람의 목소리)을 사용한다는 특징이 있다”라며 “이원정의 곡은 판소리와는 다른 여창가곡만의 매력이 가득하다”고 말했다.
● SIMF 실내악 ‘바르샤바의 가을’(10월 18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개막음악회는 아름다우면서도 애절한 음악과 깊은 고독의 낭만을 느낄 수 있는 ‘바르샤바의 가을’이다. 시마노프스키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신화(Op.30)’는 그리스 로마 신화 기반의 인상주의적 섬세함과 서정성이 물씬 피어오르는 아름다운 선율을 내재하고 있는 작품이다.
킬라르의 ‘목관 오중주’는 폴란드 고유의 민족적 음색과 목관악기의 매력이 살아나는 몽환적인 세계로 초대한다. 류 감독은 “킬라르는 폴란드에서 쇼팽과 펜데레츠키보다 더 유명하다”라며 “한번 들으면 금세 반하게 된다”고 자신했다.
20·21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작곡가 펜데레츠키의 ‘클라리넷, 호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피아노를 위한 육중주’는 그의 음악어법을 제대로 압축시킨 작품으로 호르니스트 라도반 블라트코비치의 엑설런트한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 SIMF 실내악 ‘비엔나의 여름’(10월 19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폴란드에 이은 두 번째 여행지는 오스트리아로 20세기 음악의 중추적 변화를 이끈 쇤베르크와 19세기 슈베르트의 대표적 실내악 작품을 연주한다.
쇤베르크의 현악 육중주를 위한 ‘정화된 밤’은 독일 시인 리하르트 데멜의 연작 시집인 ‘여인과 세계’ 가운데 ‘두 사람’이라는 시를 기반으로 작곡돼 표제 음악적 성격을 갖고 있다. 후기 낭만의 화성적 전개와 육중주라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작품으로 모든 낭만주의 음악을 통틀어 이 작품만큼 관능적이고 강한 표현력이 돋보이는 작품은 많지 않다.
올해는 쇤베르크(1874~1951) 탄생 150주년이다. 류 감독은 “오스트리아 대사가 직접 편지를 보내와 곡을 넣어달라고 요청했다”고 귀띔했다.
슈베르트의 ‘팔중주 바장조(D.803)’는 클라리넷, 호른, 바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등 18세기 세레나데를 기반으로 한 6악장 구성의 작품이다. 올해 서울국제음악제 연주곡 가운데 가장 러닝타임이 길다.
● SIMF 실내악 ‘프라하의 봄’(10월 20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체코 민족주의 대표 작곡가인 스메타나, 드보르자크의 음악과 함께 아름다운 프라하로 안내한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영화로 만든 ‘프라하의 봄’에서 제목을 따왔다.
체코 민족음악의 시조인 스메타나의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삼중주 1번 사단조(Op.15)’는 아련한 봄이 그려진다. 이 작품은 큰 딸의 죽음에 깊은 충격을 받고 작곡한 곡인데, 딸에게 마지막으로 바치는 위안과 애정의 산물이라 생각된다. 류 감독은 “체코 민족적 멜로디의 아이덴티티가 들어가 있는 에센셜 작품이다”고 소개했다.
다음으로는 드보르자크가 여행지에서 영감을 얻은 생동감 넘치는 희망의 봄을 만끽할 시간이다. ‘세레나데 라단조(Op.44)’는 작품 전반에 걸쳐 고전적인 절제미를 유지하면서도 체코 음악 특유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특색 있는 무곡 형태와 드보르자크의 전형적인 음악적 전개가 매력적인 작품이다. 류 감독은 “상당히 좋은 관악이 밑받침돼야 하는 곡이다”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드보르자크의 작품은 ‘피아노 오중주 가장조(Op.81)’로 주제별 소재 선택, 뛰어난 악기 구성, 개별악장의 흠잡을 데 없는 구조와 민속적인 요소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작곡가의 독특하고 설득력 있는 결과를 자아낸다는 평을 받고 있다.
● SIMF 실내악 ‘서울의 정경’(10월 21일 일신홀)
지적인 논리와 한국의 전통적인 요소를 절묘하게 혼합해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구축한 강석희의 ‘부루’를 비롯해,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을 가사로 해 현악앙상블과 여창을 위해 작곡한 이원정의 ‘귀천’, 그리고 김지향의 ‘테네브래(어둠)’이 무대에 오른다.
강석희는 윤이상의 제자이자 진은숙의 스승이다. 강석희의 ‘부루’는 고대 신라시대의 무속적 세계를 다루고 있다. 가사는 의미가 없는 ‘m(음)’하는 허밍으로만 진행되다가 후반부에 와서 격렬한 소리 뒤에 ‘Uah(우아)’하는 발음으로만 표기되어 있다. 의미가 있는 가사로는 ‘색즉시공 공즉시색’ 여덟 글자가 전부다.
류 감독은 “원래 메조소프라노와의 앙상블곡인데 이번엔 특별히 여창 가곡으로 한다”라며 “서울대 임종우 교수가 전자음향을 새로 만들어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원정의 ‘귀천’은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을 가사로 해 현악앙상블과 여창(가객 김보라)을 위해 작곡됐다. 시에서 시인은 죽음에 대해 삶의 귀결이 아닌 본향으로 향한다는 기독교적 세계관의 소망으로 인식하며 이를 소박하고 담담하게 고백한다. 이러한 시의 정취를 현악앙상블의 음향적 가능성과 우리 전통 가곡이 갖는 소리내기의 특성을 어우러지게 해 담아낸다.
김지향의 ‘테네브래(어둠)’는 위촉 초연곡이다. 곡의 제목처럼 기악 연주자들이 어두운 조명 속에서 보면대 등을 켜고 연주를 시작하는데, 각 악장이 끝날 때마다 보면대 등이 하나씩 꺼지며 연주자들은 한명씩 차례로 퇴장하고, 마지막 악장에서는 가수(소프라노 이상은)의 앞 조명 하나만이 남아 어둠 속에서 무대를 밝힌다. 류 감독은 “노래뿐만 아니라 연기(액팅)도 악보에 모두 표기돼 있다”고 말했다.
● SIMF 실내악 ‘부다페스트의 겨울’(10월 23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다섯 번째 여행지는 헝가리로 대표 작곡가 코다이, 바르톡, 도흐나니의 음악과 함께한다. 바르톡의 ‘금관악기를 위한 모음곡’을 연주한다. 바르톡의 작곡기법에서 민요와 민속 춤곡은 창작의 기반이자 근본이었다. 이번 공연에는 헝가리의 저명한 튜바 연주자이자 지휘자인 롤랜드 쉔펠이 서울국제음악제의 위촉을 받아 매력적인 노래들을 모아 화려하고 찬란한 금관 앙상블로 편곡했다. 세계 최고 금관 연주자들의 환상적인 하모니를 감상할 수 있다.
헝가리 민속음악의 요소로 새로운 음악적 세계를 창조한 도흐나니의 ‘피아노 오중주 2번 올림마단조(Op.26)’ 또한 기대해도 좋다. 세계 3대 야경중 하나로 꼽히는 부다페스트의 겨울을 상상하며 동화 속 같은 호수에서 헝가리 작곡가들의 아름다운 음악을 통해 유년시절로 떠나보길 바란다. 코다이의 ‘두 대의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세레나데’도 무대에 오른다.
● 이안 보스트리지 & 랄프 고토니 ‘슈베르트-겨울나그네’(10월 25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와 피아니스트 랄프 고토니가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나그네’를 들려준다. 19세기 독일 예술가곡 형식의 창시자며 31세에 요절하기 전까지 작곡한 998개의 작품 중 가곡이 632곡이라 할 정도로 예술 가곡의 세계에서 슈베르트의 위치는 견고하다.
‘겨울나그네’는 사랑에 실패한 청년이 외롭고 고된 방랑의 길을 떠나 죽음에 대한 상념이 마음을 뒤덮지만, 늙은 악사와의 우연한 만남으로 함께 여행의 시작을 고하는 빌헬름 뮐러 연작시에 24개 곡으로 이뤄진 가곡집이다. 비극적인 절망이 예고 없이 찾아올 때 의지가 되는 동반자가 옆에 있다는 것은 참으로 귀중하다. 우리들 삶에 보물 같은 사람들과 함께 슈베르트의 따스한 선율이 흐르는 시간으로 초대한다.
또한 슈베르트의 ‘강가에서(D.943)’를 호른·피아노·성악의 앙상블로 선사한다. 호르니스트 라도반 블라트코비치는 “보스트리지하고 이 곡을 꼭 해보고 싶다”고 강력 요청했다고 한다.
● SIMF 오케스트라 with 만프레드 호네크(10월 2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폐막음악회에서는 작곡가 류재준의 첫 번째 목관악기를 위한 협주곡인 ‘클라리넷 협주곡’(2024)을 세계 초연한다. 류재준은 2013년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를 작곡했고 당시 김한, 일리야 라쉬코프스키가 세계 초연했다. 뒤이어 2014년 6월부터 2015년 2월까지 ‘클라리넷과 현악 사중주를 위한 오중주’를 작곡해 앙상블 오푸스가 초연하기도 했다. 이번 ‘클라리넷 협주곡’은 오중주 이후 10년 만에 작곡된 작품이다.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은 ‘8번’ ‘9번’과 더불어 브루크너 후기 3대 교향곡으로 불린다. 브루크너 교향곡 중에서도 선율미가 뛰어나 ‘4번’과 함께 가장 먼저 추천되고 있는 곡이기도 하다. 작곡 시기는 1881년 9월 23일부터 1883년 9월 5일까지였으며 브루크너가 작곡한 교향곡 중 최초로 초연 무대에서 제대로 극찬을 받은 곡이다.
이번 7번은 브루크너 스페셜리스트인 만프레드 호네크가 직접 편집한 악보로 연주한다. 지휘도 호네크가 맡는다. 류 감독은 “호네크 에디션은 특별하고 섬세하다”라며 “브루크너(1824~1896) 탄생 200주년의 해에 연주해 더욱 뜻 깊다”고 말했다. 이어 “브라스에 공을 많이 들여 김홍박, 최인혁 등을 섭외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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