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공연하는 ‘헤다 가블러’의 타이틀 롤을 맡은 배우 이영애가 8일 제작발표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LG아트센터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1막부터 4막까지 퇴장 없이 끝까지 극을 이끌어가야 하는 부담감이 있어요. 대사도 엄청나고 체력적으로도 힘이 들어요. 하지만 캐릭터를 연구하면서 어제 몰랐던 것을 오늘 알게 되는 희열감을 느끼고 있어요. 가사 좀 잘 써주세요.”

배우 이영애가 32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오는 소감을 밝혔다. 이영애는 LG아트센터 개관 25주년 기념 연극 ‘헤다 가블러’의 타이틀 롤을 맡는다.

개막을 한 달 앞두고 8일 오후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서울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그는 “공부하는 자세로 선택한 작품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이영애와 연극에서의 이영애는 분명 다를 것이다”라며 “모든 순간 힘들지만 그 몇 배의 즐거움을 얻고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헨리크 입센 원작의 ‘헤다 가블러’는 사회적 제약과 억압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여성의 심리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이영애가 연기하는 헤다는 아름다우면서도 냉소적이고, 지적이면서도 파괴적인 성격을 지닌 복합적 캐릭터다. 이런 점 때문에 ‘여성 햄릿’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매기 스미스, 아네트 베닝, 이자벨 위페르, 케이트 블란쳇 등 최고의 여배우에게만 허락된 매력적 인물이다.

5월 공연하는 ‘헤다 가블러’의 타이틀 롤을 맡은 배우 이영애가 8일 제작발표회에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이고 있다. ⓒLG아트센터 제공
5월 공연하는 ‘헤다 가블러’에 출연하는 배우 이영애와 백지원이 8일 제작발표회에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이고 있다. ⓒLG아트센터 제공


이영애는 1993년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한 ‘짜장면’으로 연극 무대에 오른 적이 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지하철역에서 사람들에게 전단지도 나눠주고 포스터도 붙였다”며 “관객과 호흡하는 모든 과정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고, 결국 긴 기다림 끝에 이번에 헤다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출연을 결심한 이유를 밝혔다. 그는 “저희 학교 지도 교수님(김미혜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명예교수)이 입센 작품 번역을 오래 하셨는데, 연극을 하게 되면 ‘헤다 가블러’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며 “50대에 접어 들면서 운명 같은 작품이 또찾아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실제 이런 결과로 이어져 깜짝 놀랐다”고 설명했다.

헤다에 대한 캐릭터 분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헤다는 정답이 없는 여자다. 그래서 기존에 가지고 있는 하나의 색깔을 버리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며 “더 밝은 모습이 있어야 어두운 모습이 돋보인다.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이게 나의 이야기구나’라고 맞장구 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사 잘 써달라”고 또 깨알 홍보를 펼쳤다. 공연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는 헤다의 집요한 홍보다.

강력한 라이벌도 있다. 비슷한 시기 국립극단에서도 배우 이혜영 주연의 ‘헤다 가블러’가 공연된다. 이영애는 “이혜영 선배를 개인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팬으로서 늘 존경하고 있다”며 “같은 시기에 공연한다는 걸 알았을 때 놀랍기도 했지만, 관객들이 두 작품을 비교해도 좋고 결과적으로 연극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좋은 시그널로 생각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두 작품 다 잘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5월 공연하는 ‘헤다 가블러’의 연출을 맡은 전인철이 8일 제작발표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LG아트센터 제공


이번 공연은 2006년 로렌스 올리비에상 최우수 리바이벌 상을 받은 리처드 이어의 각색본으로 선보인다. ‘치밀한 텍스트 분석의 달인’으로 불리는 전인철이 연출을 맡았다. 첫 대극장 무대 데뷔다.

그는 “관객들이 두 공연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벌써 예상하고 있다”며 “공간의 크기가 가장 큰 차이다. 우리는 대극장 공연(국립극단 공연은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림)인 만큼 가로 16m·세로 10m 세트 등 대극장에 맞는 연극 표현을 구성하고 있다”며 “스크린을 비추는 영상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생각이다”고 공개했다.

5월 공연하는 ‘헤다 가블러’에 출연하는 배우와 제작진이 8일 제작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현정 LG아트센터 센터장, 전인철 연출, 배우 김정호, 배우 이영애, 배우 백지원, 배우 지현준, 배우 이승주. ⓒLG아트센터 제공


제작 총괄을 맡은 이현정 LG아트센터 센터장은 “굉장히 세밀한 심리상태를 전달해야하는 작품이라 전 연출을 픽업했다”라며 “이영애 배우는 다채로운 캐릭터를 연기해 왔기 때문에 다양한 매력을 가진 헤다에 최적 인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출연 배우 라인업이 파워풀하다. 이영애를 포함한 모든 배우가 모든 회차에 원 캐스트로 출연한다. 최근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에서 오애순의 해녀 이모로 출연한 백지원은 헤다의 질투심을 자극하는 ‘테아’ 역을 맡았다. 학문적 성취 외에는 관심이 없는 헤다의 남편 ‘테스만’ 역에 김정호, 헤다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해오는 판사 ‘브라크’ 역에 지현준, 헤다의 잠들어 있던 욕망을 깨우는 옛 연인 ‘에일레트’ 역에 이승주, 전통적인 가치관을 가진 고모 ‘테스만’ 역에 이정미, 헤다의 하녀 ‘베르트’ 역에 조어진 등이 출연한다. 공연은 오는 5월 7일부터 6월 8일까지 LG아트센터서울 LG시그니처홀에서 열린다.

/eunki@classicbiz.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