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석 예술감독(가운데), 비올리스트 김상진(왼쪽), 피아니스트 김영호가 14일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기자간담회에서 손가락 하트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제공
[클래식비즈 김일환 기자] “새로운 곡을 발견하면 여러 번 듣습니다. 어느 순간 느낌이 확 오는 곡이 있습니다. 더 큰 걱정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내 느낌이 청중에게도 똑같이 좋은 느낌으로 다가갈까 고민합니다. 결국 관객이 들었을 때 좋은 곡, 관객이 다음에 또 듣고 싶은 곡에 초점을 맞춥니다.”
올해 스무 번째로 열리는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4월 22일~5월 4일)의 강동석 예술감독이 ‘숨은 명곡 찾기’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14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 안동교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새로운 곡을 발굴해 널리 알리는 것이 축제의 중요한 사명 중 하나다”라며 “평소 쉽게 들을 수 없지만 작품성이 높은 곡을 선곡하기 위해 많이 노력한다”고 밝혔다. 간담회는 원래 윤보선 고택에서 열려고 했으나 비가 내린 탓에 안동교회로 변경됐다.
강 감독은 선곡 과정이 예전보다 훨씬 수월해졌다고 밝혔다. “추천을 받고 악보를 뒤적이기도 하지만 요즘은 대부분 유튜브를 통해 곡을 찾아본다”며 “올해도 라블, 유페로프 등 대중에게 낯선 작곡가의 음악을 소개할 예정이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종 낙점은 여전히 힘들다. 비교적 잘 알려진 곡도 꼭 끼워 넣는다. “전체 프로그램의 균형을 맞추려는 목적이다”라면서도 “티켓을 팔아야 하는 현실적 문제까지 고려한 조치다”라고 덧붙였다. 축제 사령탑의 어깨에는 항상 이처럼 무거운 돌덩어리가 매달려있다.
제20회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의 타이틀은 ‘20 Candles(스무 개의 촛불)’다. 한살 한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켠 촛불이 올해 스무개가 됐다. 스무 살 성인이 된 축제를 기념해 ‘20’에 초점을 맞춘 다양한 무대를 준비했다.
20회를 축하하기 위해 모인 20명의 음악가를 하루에 만나고(4월 23일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 1회 축제와 2회 축제에서 연주됐던 곡들을 다시 들어보고(4월 25일 IBK기업은행챔버홀), 작품번호(Opus) 20번으로만 이뤄진 공연(4월 27일 IBK기업은행챔버홀)을 꾸민다.
또한 지난 20년간 관객의 사랑을 받아 자주 연주했던 작품만 모으고(4월 29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작곡가들이 20대에 쓴 곡들을 주로 20대 연주자들이 연주하는(5월 3일 IBK기업은행챔버홀) 등 20년의 역사성에 의미를 부여한 공연이 이어진다.
아울러 ‘콘체르탄테’(4월 22일 IBK기업은행챔버홀) ‘판타지아’(5월 2일 IBK기업은행챔버홀) ‘엘레지’(4월 28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등 다른 음악 축제에서는 집중 조명하기 어려운 작품들을 기획으로 묶었다.
매년 사적 438호인 윤보선 전 대통령의 집에서 열리는 고택음악회(4월 26일)는 영성과 종교에서 영감을 받은 곡들을 모았다. 20주년을 축하하는 해인만큼 가족음악회(4월 26일 IBK기업은행챔버홀)는 2008년과 2010년 내한했던 프랑스의 클라리넷 앙상블 레봉벡이 15년 만에 다시 무대에 선다.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강동석 예술감독이 14일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제공
강 감독은 지난 20년을 추억했다. 그는 “젊었을 때 해외에서 많은 음악가들이 함께 무대에 오르는 실내악 축제를 볼 때마다 ‘이런 페스티벌을 한국에서도 열어보고 싶다’는 꿈을 꿨다”라며 “그렇게 출발한 음악제가 올해 20회를 맞게 됐으니 한국 실내악 발전에 도움이 된 것 같아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스무 번의 축제에 모두 개근도장을 찍는 비올리스트 김상진(연세대 교수)은 “15년 전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아주 어렸던 시절에 함께 6중주를 했었는데, 그때 함께한 이들이 청년으로 자란 모습을 보면 세월이 많이 흘렀다고 생각하게 된다”며 “실내악은 작곡가의 내면까지 샅샅이 들여다볼 수 있는 특별한 장르인 만큼, 앞으로도 많은 청중과 함께 실내악의 매력을 나누고 싶다”고 강조했다.
역시 붙박이 연주자로 20회를 함께하는 피아니스트 김영호(연세대 명예교수)는 “낯선 곡을 받으며 부담이 되지만, 일단 도전하면 연주자 입장에서는 큰 힘이 된다”며 “끝까지 철저하게 배우게 되고, 결국 가치 있는 곡을 만드는데 일조하는 셈이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또 “솔로만 하면 결국 제멋대로 하게 된다. 남의 소리를 들으며 함께 해야 음악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래서 실내악이 필수다”라고 말했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는 프로그램 아이디어가 좋다. 올해도 번뜩이는 공연이 즐비하다. 현악사중주팀이 게스트를 초대해 다양한 오중주를 연주하고(4월 24일 IBK기업은행챔버홀), 매우 흥미롭지만 그동안 간과되었던 작품 가운데 더 잘 알려지고 더 자주 연주될 가치가 있는 작품을 소개(4월 30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19년 동안 축제에서 연주되지 않았던 작품들 중 훨씬 더 일찍 소개 됐어야 했던 작품을 모을고(5월 1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20번째 축제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10년을 시작하는 공연(5월 4일 IBK기업은행챔버홀) 등이 펼쳐진다.
강동석 예술감독(가운데), 비올리스트 김상진(왼쪽), 피아니스트 김영호 등이 14일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제공
총 13일간 이어지는 14회의 공연을 위해 세계에서 활약하는 69명의 예술가들이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2024년 아트실비아 실내악 콩쿠르 우승팀인 리수스 콰르텟, 동양인 최초로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성악 강사를 역임한 베이스 바리톤 안민수, 2025년도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던 존 아담스의 ‘Girls of the Golden West’ 앨범에서 활약한 소프라노 이혜정이 올 해의 새로운 얼굴이다.
실내악에 다채로운 색채를 부여하는 관악 연주자인 마티어 듀푸르(플루트, 베를린 필 플루트 수석 역임), 올리비에 두아즈(오보에, 라디오 프랑스 필 수석 역임), 로망 귀요(클라리넷,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 수석 역임), 로랭 르퓌브레(바순, 파리 국립 오페라 오케스트라 및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수석 역임), 에르베 줄랭(호른,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및 라디오 프랑스 필 수석 역임)도 변함없이 한국행을 결정했다.
예능과 클래식, 대중 공연까지 균형 잡힌 전방위 활약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도 함께 한다. 그는 2020년부터 무대에 오르고 있다. 아벨 콰르텟, 아레테 콰르텟 등 한국을 대표하는 현악사중주단도 자리를 지킨다.
강 감독은 “재정적으로 안정적인 토대에서 축제가 계속되도록 하는 것이 저의 목표다”라며 “마음 같아선 한국에서 실내악이 전성기를 맞을 때까지 앞장서서 활동하고 싶다. 그런 시기가 빨리 오면 좋겠다”라고 바람을 드러냈다. 그는 이어 “실내악은 결코 어려운 음악아 아니다”라며 “첫 맛만 제대로 들이며 쉽게 즐길 수 있는 장르다”라고 예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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