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화 작가의 개인전 ‘검은 그믓: 선이 이은 기억’이 오는 7월 31일부터 8월 18일까지 서울 인사동 제주갤러리에서 열린다. 사진은 ‘그 겨울로부터1’(2024, 종이에 펜, 112x300cm, 3폭). ⓒ제주갤러리 제공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김영화 작가의 개인전 ‘검은 그믓: 선이 이은 기억’이 오는 7월 31일(목)부터 8월 18일(일)까지 서울 인사동 제주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선으로 완성된 대형 펜화 시리즈를 통해 제주라는 땅 위에서 살아내며 끊임없이 그려낸 작가의 10년을 드러낸다. 예술과 노동, 삶과 죽음, 기억과 현재의 겹쳐짐을 보여주는 펜화 작품 30여점을 선보인다.
디지털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에 작가는 직접 발로 걸어 닿은 현장들로만 그림을 그려왔다. 밭에서의 고된 노동과 그림 그리기가 작가에게는 같은 ‘삶의 방식’이다. 여름엔 피부가 타고, 겨울엔 찬 공기에 몸이 얼어붙는 가운데에서도 작가는 노동을 그리고 펜을 놓지 않았다.
‘그 겨울로부터’(2024)는 그중에서도 가장 규모(270×1680cm) 있는 작업이다. 완성까지 꼬박 6개월이 걸렸다. 제주 4·3 당시 인민유격대 사령관이었던 이덕구의 부대가 잠시 주둔했던 ‘이덕구 산전’(원래 제주 지명으로는 ‘북받친밭’이라고 불렀다)을 그렸는데, 겨울부터 6월까지의 풍경을 오롯이 담았다.
김영화 작가의 개인전 ‘검은 그믓: 선이 이은 기억’이 오는 7월 31일부터 8월 18일까지 서울 인사동 제주갤러리에서 열린다. 사진은 ‘기르는 손, 그리는 손’ (2022, 종이에 펜, 150x200cm). ⓒ제주갤러리 제공
또 다른 대형작 ‘그들의 숲-잃어버린 마을 종남밭’(2023)은 하루 20시간씩 그리기를 반복하며 완성했다. ‘종남밭’은 제주시 조천읍 와산리 464번지 일대 중산간 지역의 화전마을인데, 역시 4·3때 피해를 입어 사라졌다.
작가의 펜화에는 인물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사라진 마을의 나무와 풀, 꽃 한 송이까지도 정성스럽게 담겨있다. 특히 나무는 주요한 상징으로 등장하는데, ‘맥박’(2023)의 오래된 퐁낭(‘팽나무’를 부르는 제주 사투리)처럼 늘 사람 대신 자리를 지켜온 존재다. 작가 자신이 유일한 인물로 등장하는 ‘기르는 손, 그리는 손’(2022)과 ‘멩게낭 불놀이’(2023)에서는 그 기억을 다음 세대로 전하려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작가가 사용하는 도구는 단 하나, ‘제노(xeno) 붓펜’이다. 밑그림 없이 시작되는 그림은 순간의 자유로운 선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완성된 풍경은 정제된 고요함과 무게를 품는다. 수많은 선과 여백은 숲이 되고, 밭이 되고, 잃어버린 마을이 된다. 이 작업은 그 자체로 제의이자 기록이며, 생명을 향한 애도의 방식이다.
이번 전시는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의 풍경’으로서 4·3을 사유하게 만든다. 작가의 시선은 과거로 멈추지 않고, 현재를 관통하며 미래로 나아간다. 지금도 ‘이름 없는 무덤’이 남아 있는 이 땅에서 ‘검은 그믓: 선이 이은 기억’은 결코 사라지지 않아야 할 기억을 우리 앞에 꺼내놓는다.
‘검은 그믓: 선이 이은 기억’은 2025 제주갤러리 공모 선정 전시로 7월 31일(목) 오후 5시 오픈식으로 시작된다. 이후 8월 15일(금) 오후 2시에는 작가가 직접 전시를 해설하는 시간이 준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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