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가 올해 롯데문화재단 ‘클래식 레볼루션 2025’의 새 예술감독을 맡는다. ⓒ롯데문화재단 제공


[클래식비즈 김일환 기자] “바흐의 곡들은 정말 기대됩니다. 어릴 때 처음 들은 음반 중 하나도 글렌 굴드가 연주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었어요. 쇼스타코비치처럼 바흐도 피아노 곡보다는 관현악 합주곡이나 칸타타처럼 큰 규모의 작품들에서 그 위대함이 느껴집니다. 이번 축제 중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전곡 공연은 꼭 감상하려고 합니다.”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말로페예프가 오는 8월 28일(목)부터 9월 3일(수)까지 열리는 롯데문화재단의 ‘클래식 레볼루션 2025’에서 가장 기다려지는 무대로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전곡 연주(8월 29일)를 꼽았다. 카메레타 안티콰 서울과 아폴론 앙상블이 꾸미는 무대다.

말로페예프는 이번 페스티벌에서 쇼스타코비치의 다양한 실내악 작품을 연주(8월 30일 오전 11시30분. 8월 30일 오후 5시, 9월1일 오후 7시30분)한다. 그는 바흐만큼이나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이나 첼로 소나타는 피아니스트인 제가 그의 어두운 심포니적 세계를 느낄 수 있는 소중한 통로입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교향곡 작곡가인데, 첼로나 바이올린을 사용할 때는 거의 전체 오케스트라를 다루듯 합니다.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오중주’의 경우 브람스나 슈만의 오중주에 비하면 음이 많지 않지만, 음악적 긴장감은 상당합니다. 그가 침묵이나 눈빛, 숨소리에서 의미를 만들어내는 작곡가라는 걸 느끼게 하죠. 정신적 강렬함, 비극적 정서, 심리적 무게감이 가득합니다. 쇼스타코비치는 일단 시작하면 빠져들게 만드는 작곡가임에 틀림없습니다.”

롯데문화재단은 8월 28일(목)부터 9월 3일(수)까지 ‘클래식 레볼루션 2025’을 연다. ⓒ롯데문화재단 제공


2020년 시작된 클래식 레볼루션은 매해 독창적인 기획과 깊이 있는 프로그래밍으로 여름철 클래식 비수기를 문화의 계절로 전환시키며, 국내 대표 클래식 축제로 자리매김해왔다. 올해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가 새 예술감독으로 취임하는 첫 해로, 클래식 레볼루션의 방향성과 미학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전망이다.

카바코스가 제안한 올해 축제의 주제는 ‘스펙트럼(Spectrum)’이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전면에 내세웠다. 바흐는 대위법의 정수와 신학적 이상을 바탕으로 한 음악적 질서를, 쇼스타코비치는 정치적 탄압 속에서도 예술의 윤리와 인간성을 음악으로 대변한 작곡가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쇼스타코비치는 생전에 바흐의 ‘푸가의 기법’과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깊이 연구하며, 자신의 ‘24 전주곡과 푸가’를 통해 그 정신을 20세기에 계승한 바 있다.

카바코스는 “음악은 시간과 감정을 초월한 언어며, 바흐의 구조와 쇼스타코비치의 고뇌처럼 서로 다른 시대의 음악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부제로 제시된 ‘바흐에서 쇼스타코비치까지’는 클래식 음악사의 두 축을 잇는 하나의 프리즘을 상징하며, 예술이 시대를 관통해 어떤 성찰과 위로를 줄 수 있는지를 제시하는 무대가 될 것이다.

모두 아홉차례의 공연이 열린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은 세 곡을 연주한다. 제6번(8월 28일 서울시향), 제4번(8월 31일 경기필), 제15번(9월 3일 KBS교향악단)을 선보이고, 평소 듣기 어려운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5중주(8월 30일) 등도 만날 수 있다.

● 이지혜 “카바코스가 들려줄 쇼스타코비치 협주곡 2번 기대”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는 롯데문화재단 ‘클래식 레볼루션 2025’에 출연한다. ⓒ롯데문화재단 제공


체임버 뮤직 무대(8월30일 오전 11시30분) 등에 출연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는 카바코스와의 추억을 공개했다.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에서 활동하던 시절, 특히 인상 깊었던 무대 중 하나가 카바코스와 함께했던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연주였다.

“그때의 강렬한 인상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어요. 이번 페스티벌에서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게 된다는 사실에 큰 설렘을 느끼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른 지금, 카바코스가 들려줄 쇼스타코비치(8월 29일 오후 7시30분 협주곡 2번 연주)가 어떤 새로운 울림을 줄지 기대가 커요.”

이지혜는 말로페예프와 함께하게 될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오중주, 그리고 아폴론 앙상블과 함께하는 페스티벌 체임버 무대 또한 매우 특별하다고 말했다. 그는 “준비 과정부터 음악적으로 깊이 있는 교감을 기대하고 있으며, 이 뜻 깊은 무대들에 함께할 수 있음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두 위대한 작곡가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설명했다.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연주할 때면, 늘 먼저 ‘긴장’이라는 단어가 떠올라요. 그의 작품에는 단순한 슬픔이나 분노를 넘어, 억눌린 감정과 말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저항이 깊숙이 담겨 있어 더욱 그렇습니다. 특히 이번에 연주할 피아노 퀸텟이나 체임버 심포니처럼 밀도 높은 실내악에서는 마치 음표 하나하나에 날이 서있는 듯한 긴장감이 느껴지죠. 긴장과 저항, 그리고 억압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는 과정은 쇼스타코비치를 대할 때마다 늘 깊이 고민하게 되는 부분입니다.”

“바흐의 음악에서는 ‘정화’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하루를 시작하며 바흐를 연습하는 이유도 어쩌면 마음을 정돈하고 정화된 상태로 하루를 맞이하고 싶은 바람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릅니다. 그의 음악은 연주 과정에서 ‘불순물을 걸러내는’ 듯한 세밀한 작업을 요구하지만, 그 과정을 거쳐 마침내 음악이 나를 완벽하게 정돈하고 정화해주는 경험은 어떤 작업보다도 소중합니다.”

“두 작곡가는 ‘숨(breathing)’, 즉 긴장과 흐름이라는 정반대의 결을 지녔지만, 그 깊은 내면에서는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극과 극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됩니다. 이번 무대에서 연주자로서, 그리고 관객으로서 이 감정의 폭을 온전히 만끽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 피아니스트 김태형 “바흐와 쇼스타코비치 실내악 교차 연주 강추”

피아니스트 김태형은 바흐와 쇼스타코비치를 교차로 연주하는 ‘체임버 뮤직 콘서트 II’(8월 30일 오후 5시)를 강추했다. 그는 “바흐를 먼저 듣고 쇼스타코비치를, 그리고 다시 바흐를 감상하고 쇼스타코비치를 들었을 때 귀가 받아들이는 소리들이 더 감각적으로 열리고 새롭게 받아들일 것 같다”라며 “또한 쇼스타코비치가 남긴 첼로, 바이올린 및 비올라 소나타를 한 자리에서 들을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아 관객들도 큰 의미로 다가올 것 같다”고 밝혔다.

폐막 공연(9월 3일 오후 7시30분)에서 바흐의 ‘토카타 d단조’와 ‘코랄 파르티타’를 연주할 예정인 오르가니스트 박준호는 제한된 시간 내에 바흐의 오르간 작품세계를 보여줄 곡을 선정하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폐막 공연은 카바코스의 지휘로 KBS교향악단이 함께 한다.

“바흐의 가장 유명한 작품(BWV 565)과 일반적으로 덜 알려진 대규모의 변주곡(BWV 768)을 카바코스에게 전달했고 동의를 받았습니다. 오르간은 단독으로 가장 넓은 범위의 음역과 다이나믹, 또한 다양한 음색을 만들어낼 수 있고 그로 인해 작곡가의 상상을 어느 정도 구체화 할 수 있어 바흐에게 매우 친밀한 악기였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의 오르간 곡의 텍스트는 즉석에서 실내악이나 오케스트라로 성부를 분담해 완성도 있는 연주로 이끌어내는 것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바흐의 오르간 작품이 가지는 특성은 ‘수많은 다양성을 조화롭게 배치한 작곡가의 놀라운 지적 능력과 음악적 영감의 결합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 카바코스·양인모 동반무대...파가니니·시벨리우스 콩쿠르 우승자들 특별한 조우

많은 프로그램 가운데 특히 8월 31일(오후 7시) 카바코스와 양인모가 아폴론 앙상블과 함께하는 듀오 공연은 클래식 레볼루션 2025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들은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d단조(BWV 1043)’를 함께 연주한다. 이 작품은 ‘더블 콘체르토’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두 바이올린이 완전히 대등하게 주고받는 대화 구조 속에서 서로의 개성과 해석을 반영할 수 있는 대표적인 레퍼토리다.

흥미로운 것은 카바코스와 양인모가 모두 ‘시벨리우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와 ‘파가니니 콩쿠르’의 우승자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의 우승으로 한국인들에게 더욱 익숙해진 시벨리우스 콩쿠르는 단순한 기교를 넘어선 음악적 절제, 구조 감각, 깊은 서정성을 요구하는 세계적 명성의 무대로 잘 알려져 있다. 카바코스는 1985년, 양인모는 2022년 각각 이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더욱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또한 카바코스는 1988년, 양인모는 2015년에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동일한 음악적 전통을 공유하면서도 각각 다른 세대와 경험의 간극을 지닌 두 연주자가 바흐의 더블 콘체르토에서 만나는 순간은, 단순한 협연을 넘어 세대 간의 예술적 대화이자, 해석의 교차점을 드러내는 특별한 장면을 선사한다.

이번 공연은 카바코스의 깊이 있는 톤과 양인모의 명료한 표현력이 어떻게 교차하며 균형을 이루는지, 각자의 음악 여정에서 축적된 통찰이 어떻게 바흐의 작품 속에서 수렴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진귀한 무대다.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양인모는 첫 BBC 프롬스 공연을 앞둔 특별한 일정 속에서 런던 체류 중 잠시 귀국해 이번 공연에 참여하는 열정을 보인다.

양인모는 이번 공연에 참여하며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인 카바코스와 한 무대에 설 수 있어서 가슴이 벅차다. 그는 어릴 때부터 존경했던 바이올리니스트이고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걸 배우게 되는 음악가다. 특히 최근 몇 년 그와 함께 보낸 시간들이 음악에 많은 영향을 주었기에 이번 연주는 더욱 뜻 깊은 자리가 될 것 같다”고 벅찬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 아티스트들의 음악적 교감, 예술적 동반자들이 펼치는 긴밀한 호흡

카바코스는 이번 축제에서 단순한 예술감독의 역할을 넘어서, 오랜 음악적 파트너들과 직접 무대에 올라 그 어느 때보다도 진정성 있는 하모니를 만들어간다. 그는 예술감독직을 수락한 직후부터 전 세계에서 활약하는 연주자들에게 러브콜을 보내 클래식 레볼루션 무대에 함께해줄 것을 청했다.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전곡을 연주할 아폴론 앙상블은 카바코스가 창단한 단체로, 특히 고음악 해석에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공연은 카바코스가 직접 출연을 제안해 더욱 의미를 더한다. 이 밖에도 피아니스트 말로페예프,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등 그와 직간접적으로 교류해온 아티스트들이 바쁜 일정 가운데에서도 한국행을 택하며 깊은 음악적 신뢰를 통해 축제를 더욱 빛낸다.

클래식 레볼루션 티켓 가격은 오케스트라 공연은 R석 12만원, S석 9만원, A석 7만원, B석 5만원이다. 체임버 공연은 R석 9 / 7만원, S석 5만원, A석 5/ 4만원이다. 더 많은 관객들이 부담 없이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매 회차 CREV석을 1만 5000원에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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