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근, 성상은, 양화선, 이용원 4인 작가의 특별기획전 ‘베란다 부엉이의 칸타타’가 오는 10월 2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인사동 제주갤러리에서 열린다. 사진은 박정근 작가의 ‘Echos of Fragility: 깨지기 쉬운 섬세한 것들의 메아리’(2025). 사진. 70x100cm. ⓒ제주갤러리 제공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박정근, 성상은, 양화선, 이용원 4인의 작가가 참여하는 제주갤러리 특별기획전Ⅱ ‘베란다 부엉이의 칸타타’가 오는 10월 2일(목)부터 27일(월)까지 서울 인사동 제주갤러리에서 열린다. 제주특별자치도와 한국미술협회 제주특별자치도지회가 주최‧주관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 4명의 사진, 회화, 영상, 사운드를 통해 현대 도시 속에서 희미해진 자연의 흔적, 감춰진 풍경, 들리지 않는 소리 등을 예술 작품으로 구성해 현대 사회에서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고 마주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자연은 한때 인간 삶의 일부이자 안내자였다. 별을 보고 방향을 읽고, 바람결에 따라 계절을 읽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자연을 풍경으로 소비하며, 자연을 바라보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베란다 부엉이의 칸타타’는 이 잃어가는 자연에 대해 경외하는 마음과 태도를 되찾고자 한다.

이번 전시는 자연을 보호하거나 이상화하지 않는다. 대신 개발과 소비로 인해 지워진 풍경을 기억하고, 결핍과 부재 속에서 자연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자연을 인간이 관리해야 할 대상이 아닌, 고유한 존재로서 존중받아야 할 주체로 바라보며 자연과 인간이 상호 배려하는 관계의 가능성을 살핀다.

전시 제목에 등장하는 ‘부엉이’는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는 상징적 존재다. SBS ‘TV동물농장’에 가끔 나오는 것처럼 베란다에 날아든 부엉이는 자연이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는 신호며, 인간과 자연이 다시 조심스럽게 화음을 맞추기 시작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베란다 부엉이의 칸타타’는 자연 앞에서 우리가 어떤 인간으로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준다.

박정근, 성상은, 양화선, 이용원 4인 작가의 특별기획전 ‘베란다 부엉이의 칸타타’가 오는 10월 2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인사동 제주갤러리에서 열린다. 사진은 성상은 작가의 'Swallow'(2013). pigment print, acrylic, pen on panel, varnish. 53x80cm. ⓒ제주갤러리 제공


박정근 작가는 삶의 흐름을 따라 제주에 정착한 이후, 10년 넘게 사람, 경관, 기억을 사진과 영상에 담아왔다. 그의 작업은 제주 사람들을 역사 속 기념비적인 인물로 고정하기보다는,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존재로 정직하게 마주하는 데서 출발한다. 익숙한 풍경 속에서 드러나는 낯섦, 혹은 낯선 것에 스며든 따뜻한 시선은 그가 포착해내는 삶의 표정과 맞닿아 있다.

박 작가는 신화나 영웅이 아닌 현실 속의 이웃인 해녀의 삶, 제주에 새로운 희망을 품고 이주한 ‘입도조’의 이야기를 꾸준히 기록해왔다. 입도조(入島祖)는 본관이 제주인 고·양·부 삼성 이외의 다른 성씨가 제주에 최초로 들어와 정착해 후손 대대로 제주에 가문을 이루었을 때의 시조를 말한다.

특히 ‘할머니, 무슨 과일 좋아하세요?’와 같은 작업을 통해 제주 4·3의 생존자들을 ‘증언’이나 ‘재현’의 대상으로 삼기보다, 그 존재 자체를 정중하게 응시한다. 이러한 태도는 박정근 작업의 중심을 이루는 따뜻한 애정과 삶에 대한 깊은 존중으로부터 비롯된다.

최근에는 ‘해녀보다 빨리 늙는 바다’ 프로젝트를 통해 해녀의 삶을 둘러싼 해양 환경의 위태로움에 주목하며, 기후위기에 대한 성찰적 눈길을 드러낸다. 그의 시선은 쿠로시오 해류의 흐름을 단서로 삼아, 제주 4·3의 기억까지 통합적으로 확장해나가며 섬의 역사와 생태, 사람과 장소를 하나의 흐름 안에서 연결하고 있다.

이번에 선보이는 ‘Echos of Fragility: 깨지기 쉬운 섬세한 것들의 메아리’는 제주의 바다, 풍력발전기, 비행기, 그리고 미분양 건축물에서 발생하는 인간이 듣지 못하는 존재음을 포착해, 인간의 감각으로는 인지하기 어려운 생태계의 미묘한 변화를 감각적으로 전달한다. 이 작업은 인간 활동이 자연의 생태적 균형에 미치는 영향을 섬세하게 담아내며, 제주라는 장소의 자연, 그리고 그 속의 우리의 삶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담겨 있다.

성상은 작가의 작업은 자연이 써내는 존재의 언어를 해독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한다. 얼룩이나 자국처럼 사소해 보이는 흔적들 속에 숨겨진 세계를 시각화하는 데 집중한다. 이러한 흔적은 시간과 경험이 물질 위에 남긴 가장 진실한 기록으로, 작가는 여기에 자연의 유기적 형태를 결합해 존재의 다층적인 본질을 드러낸다.

또한 흔적의 기억을 통해 시간의 축적, 생명의 질서, 찰나의 유동성을 보여주며, 일상 속에서 발견한 미세한 자취들은 한 대상이나 공간이 겪은 경험의 층위를 이루고, 응축된 생명의 서사를 담아낸다. 작가는 이 작은 세계를 통해 더 큰 우주를 비추고, 자연을 매개로 모든 존재가 가진 고유한 이야기를 존중하며 인간과 세계, 그리고 그들 사이의 관계를 다시 바라보는 과정을 이어간다.

박정근, 성상은, 양화선, 이용원 4인 작가의 특별기획전 ‘베란다 부엉이의 칸타타’가 오는 10월 2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인사동 제주갤러리에서 열린다. 사진은 양화선 작가의 '구상나무'(2024~2025). 캔버스에 아크릴. 40.9x31.8cm. ⓒ제주갤러리 제공


양화선 작가는 사우스 런던의 재개발 지역에 위치한 작업실에서의 경험을 계기로 도시 재개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를 통해 인간의 이주, 생태계의 변화, 기후위기 등 서로 연결된 문제들을 인식하고 이를 시각화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 ‘이동하는 생태계’는 이주 과정에서 함께할 수 없었던 식물을 매개로, 국경과 경계를 넘어서는 생명의 이동과 생존을 상상한다. 런던, 베를린, 서울에서 사람들이 가꾼 작은 생태계를 재현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이주의 흐름과 생명의 네트워크를 시각화했다.

‘구상나무 시리즈’는 기후변화로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한라산 구상나무의 생태를 기록하며 발아에서 성장, 고사에 이르는 생명의 과정을 세밀하게 담아낸다. 섬세한 손길로만 재배 가능한 구상나무의 생명력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되묻고, 단순한 기록을 넘어 생명체가 택하는 생존 전략과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사유하게 한다.

이용원 작가는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를 기반으로 활동한다. 사운드스케이프는 소리를 통해 환경이나 풍경을 감각적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그는 우리가 주로 시각을 통해 인지하는 공간의 소리로 구성된 세계를 탐색한다. 듣기를 통해 환경과 더욱 섬세하게 관계 맺는 방법을 찾는다.

이번 전시에서는 도시 속 분양가에 따라 자연에 접근이 제한되는 현실을 드러낸다.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점차 밀려나는 자연, 그리고 그와 함께 소외되어 가는 생명들의 흔적을 포착하고자 한다.

이용원은 이러한 현장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그곳의 공기와 온도를 품은 소리들을 채집해왔다. 눈에 띄지 않던 소리들이 하나의 풍경을 이루고, 그 풍경은 다시 하나의 기억으로 남기를 바란다.

이 작가에게 소리는 풍경을 읽는 언어이자 세계를 다시 상상하게 하는 매개며, 자연의 소리를 찾아 듣는 행위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열 수 있다고 말한다.

/park72@classicbiz.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