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윤서, 유재윤, 이재언, 이채은 4명으루 구성된 뷰티플마인드 어린이 중창단이 10일 열린 ‘뷰티플마인드 가을음악회’에서 노래하고 있다. ⓒ뷰티플마인드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올해 만들어진 ‘뷰티플마인드 어린이 중창단’이 무대로 걸어 나왔다. 멤버는 노윤서, 유재윤, 이재언, 이채은 4명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 서기는 난생 처음인데도 전혀 무서워하는 기색이 없다. 강심장이다.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여름엔 여름엔 파랄 거에요/ 산도 들도 나무도 파란잎으로/ 파랗게 파랗게 덮힌 속에서/ 파란 하늘보고 자라니까요”

이들은 동요 ‘파란마음 하얀마음’(어효선 작사·한용희 작곡)을 불렀다. 척척 맞는 화음은 아니다. 오히려 들쭉날쭉 중구난방에 가깝다. 연습 시간이 짧은데다 중창의 묘미를 아직 익히지 않은 탓에 뒤죽박죽이다. 리허설 때는 나름 잘 맞췄는데 실전에서 삐끗 어긋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큰 재미를 선사했다. ‘마이크 쟁탈전’이 벌어진 것. 먼저 재윤이가 마이크에 입을 바싹 들이대며 독차지했다. 재언이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같이 쓰는 마이크인데 이렇게 하면 어떡해’라는 항의를 담아 뺏으려 했다. 그러자 재윤이는 오히려 더 강하게 마이크를 사수했다. 예상치 못한 돌발행동에 관객 모두는 깔깔 표정을 지었다.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 파란 하늘빛 물이 들지요/ 어여쁜 초록빛 손이 되지요” 이어지는 ‘초록바다’(박경종 작사·이계석 곡)에서도 싸움은 끝나지 않고 계속됐다. 그 와중에 재윤이는 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는 듯 마이크를 손으로 툭툭 치며 음향 테스트까지 곁들였다.

특별게스트인 뮤지컬 배우 오만석이 가세해 중창단과 함께 ‘다 잘 될거야’(윤학준 작사·작곡)를 부르면서 긴장관계가 살짝 해소되며 평화 모드로 전환됐다. 객석 1열 앞에서 보이지 않게 아이들을 지휘하던 선생님은 진땀을 흘렸지만, 관객들은 모처럼 큰 웃음을 선물 받았다.

이처럼 연주하는 사람도 즐겁고, 감상하는 사람도 행복한 ‘뷰티플마인드와 함께하는 가을음악회’가 지난 10일 서울 롯데콘서홀에서 열렸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아나운서 김일중과 피아니스트 강소연이 사회를 맡았다. 모든 반주는 피아니스트 김예리가 수고했다.

이 음악회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차별 없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무료 공연으로 2022년부터 롯데콘서트홀에서 진행하고 있다. 매년 가을과 어울리는 다채로운 음악을 선보여 “감탄과 감동이 가득한 공연” “마음이 따뜻해지는 음악회” “공연 내내 눈시울이 뜨거웠다” 등의 호평을 받고 있다. 올해 네 번째 콘서트도 빅히트했다.

첫 주자로 나온 피아니스트 윤시아(10세)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난 더 이상 느끼지 못한다오’의 주제에 의한 6개의 변주곡(WoO 70)을 연주했다. ‘난 더 이상 느끼지 못한다오(Nel cor piu non mi sento)’는 조반니 파이지엘로의 오페라 ‘라 몰리나라’에 나오는 곡이다.

시아는 오른손과 왼손으로 주제를 주고받으며, 각 변주마다 베토벤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과 유쾌한 에너지를 멋지게 표현했다. ‘1번 타자’ 부담감이 컸을 텐데도 미션 클리어했다. 그래도 살짝 부끄러운 지 퇴장 때는 뛰어 들어갔다.

다음은 시각장애인 바이올리니스트 강윤서(11세)가 배턴을 이어받았다. 아르칸젤로 코렐리의 바이올린 소나타 ‘라 폴리아’(Op.5 No.12)를 연주했다. 달력에 스티커를 붙이며 연주할 날을 손꼽이 기다렸다는 윤서는 전통 춤곡 ‘폴리아’를 주제로 한 23개의 개성 있는 변주를 펼쳐보였다.

강민주는 ‘밤풍경’(박현숙 작사·작곡)을 불렀다. 곡을 쓴 박현숙 씨는 민주의 어머니다. 무대에 오른 작곡가는 “치료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민주가 창밖을 바라보는데 얼굴에 힘든 표정이 가득했다”며 “그날이 마침 열 살 생일이었는데, 엄마로서 아이에게 힘을 주고 싶었다”고 작곡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서두르지 않고 아이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걸어가야겠다”고 그날 다짐했다고 말할 땐, 목소리에 울음이 섞여 있었다.

“내 이름은 강민주/ 나는 꿈이 많아요/ 할줄 아는게 없어도/ 포기하지 않아요” 엄마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민주는 고운 목소리로 어머니를 위로했다.

인간승리의 연주자 클라리네티스트 이상재가 특별출연했다. 태어날 때부터 백내장 증세가 있어 시력이 약했던 그는 일곱 살 때 당한 교통사고로 시력이 급격히 떨어져 열 살 때 완전히 시력을 잃었다.

암흑 속에서도 그에게 희망을 준 것은 맹학교 중등과정에서 밴드부 활동을 시작하면서 배운 클라리넷이었다. 중앙대 음악대학을 수석 졸업한 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 피바디 음대 140년 역사상 최초의 시각장애인 박사 기록을 세웠다.

이상재(퍼스트)는 뷰티플마인드 뮤직아카데미 출신인 엄희준(세컨드), 김범순(서드), 주찬이(포스)와 클라리넷 앙상블을 이뤄 가을 정취를 담은 두 곡(배리 매닐로우 ‘When October Goes’·조제프 코스마 ‘Autumn Leaves’)을 엮은 ‘Autumn Jazz’를 연주했다. 이어 스콧 조플린의 대표적인 래그타임 두 곡(‘The Easy Winner’ ‘Maple Leaf Rag’)을 클라리넷 4중주로 재편곡한 ‘Ragtime in Clarinet’을 들려줬다.

첼리스트 김민주는 ‘뷰티플마인드 최고참’이다. 8세 때 들어와 오랜 시간을 함께 했으며 현재 이화여대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있다. 그는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하다. 스승님들께 받은 은혜를 이제 후배들에게 나눠 주겠다”며 의젓한 모습을 보였다.

김민주(퍼스트)는 조홍희(세컨드), 서윤직(서드), 박유림(포스)과 함께 첼로앙상블을 선사했다. 마이클 키비의 ‘Mellow Cellos Tango’에서는 서로 대화하듯 주고받는 빠르고 강렬한 리듬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네 사람의 케미를 돋보이게 했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은 빠르고 활기찬 도입부와 느리고 서정적인 중간부가 교차하며 강렬한 대비를 이뤘다.

1부의 마지막은 노윤서, 유재윤, 이재언, 이채은 4명으로 구성된 어린이 중창단이 ‘파란마음 하얀마음’ ‘초록바다’ ‘다 잘 될거야’를 선사했다.

2부는 이원숙이 지휘하는 뷰티플마인드 오케스트라의 시간이었다. 1부에서 연주했던 특별게스트 이상재가 다시 나와 카를 마리아 폰 베버의 ‘클라리넷 협주곡 내림E장조(Op.26)’와 찬송가 ‘Amazing Grace’를 연주했다. 그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던 막막한 시기에 클라리넷은 삶의 희망이었고 음악은 축복이었다”고 말해 뭉클한 감동을 안겨줬다.

뷰티플마인드 오케스트라 악장을 맡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박준형은 안토닌 비발디의 ‘사계’ 중 가을(Op.8, No.3) 3악장을 들려줬다. 경쾌한 리듬과 생동감 넘치는 멜로디는 오랫동안 귓전을 맴돌았다.

이어 오케스트라는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빛나게 해준 히사이시 조의 음악을 연주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OST ‘인생의 회전목마’와 ‘이웃집 토토로’의 OST를 들려줬다.

오만석이 다시 나와 노래를 선사했다. 먼저 ‘새들처럼’(지근식 작사·작곡)을 들려준 후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대표 넘버인 ‘Impossible Dream’(미치 리 작곡)을 불렀다. 오만석은 “제목은 ‘이룰 수 없는 꿈’ 이지만 오늘은 마음속으로 ‘이룰 수 있는 꿈’으로 고쳐 부르겠다”고 재치 있는 멘트를 날렸다.

피날레곡은 모든 출연자들이 ‘아름다운 나라’(채정은 작사·한태수 작곡)를 합창했다. 국악과 팝페라적 요소가 어우러져 풍성한 사운드를 전해줬다. 진성민의 타악기가 곁들여져 더 깊은 울림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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