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이안삼 가곡제에 출연한 성악가들이 피날레 곡으로 ‘그대가 꽃이라면’을 합창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이안삼(1943~2020)은 철두철미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작곡에 관해서는 빈틈이 없었다. 새로운 곡을 쓰면 반드시 오케스트라 편곡본을 미리 만들어 놓았다. 당장은 피아노로만 연주하지만 언젠가는 사이즈를 키워 오케스트라로 연주하겠다는 생각을 품고 철저하게 대비를 했다. 이안삼과 음악적으로 깊이 교류했던 장동인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가 그의 곁에서 편곡 작업을 도왔다.

지난해 4월쯤이다. 네 번째 ‘이안삼 가곡제’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김정주 이안삼가곡제운영위원회 사무총장에게 문자가 날아왔다. 보낸 이는 서희태 지휘자. 1년 뒤 열리는 다섯 번째 가곡제는 오케스트라로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딱 맞춰 연락이 왔다. 마치 선생께서 하늘에서 연결시켜준 것처럼 타이밍이 절묘했다.

이심전심! 두 사람 모두 오케스트라 협연으로 이안삼 명품가곡을 더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이 통했다. 선생께서 거의 모든 곡을 오케스트라용으로 마련해 놓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정주 사무총장은 “생전에 가장 많은 협연을 한 지휘자가 서희태 마에스트로였다”며 “곡의 핵심 포인트를 가장 정확하게 알고 표현해 주었기 때문에 선생님도 가장 존경하고 신뢰했다”고 말했다. 서희태 지휘자는 직접 오케스트라를 섭외하고 공연 장소 대관을 알아보는 등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했다.

제5회 이안삼 가곡제에 출연한 성악가들이 피날레 곡으로 ‘그대가 꽃이라면’을 합창한 후 박수를 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콘서트 하나를 무대에 올리려면 많은 사람이 물밑에서 힘을 보태야 한다. 힘든 작업이다. ‘이안삼 가곡제’는 선생이 별세한 뒤 1주기에 맞춰 열리기 시작했다. 1회 때부터 4회 때까지 넉넉하지 않은 예산이었지만 이끼고 아꼈다. 그렇게 해서 ‘실탄’을 준비했다. 하지만 여전히 역부족이었다. 큰돈 유입이 여의치 않은 상황 속에서 이안삼과 오랜 인연을 맺은 시인들이 또 십시일반 주머니를 털었다.

프로그램북을 살펴보니 고영복, 고옥주, 공한수, 김성희, 노중석, 다빈, 서영순(이안삼카페 전 대표), 심응문, 유자효, 이명숙, 이향숙, 장장식, 최숙영, 한상완(이안삼가곡제운영위원장), 황여정(이안삼카페 대표) 등이 후원을 했다. ‘의리의 시인들’이다.

또한 김천고 송설당교육재단, 이시섭, 정희준, 홍익표, 송선례, 최완성, 정덕기, 이명숙 루치아, 리나, 이경희, 정원 이경숙, 김호동, 파랑새동요협회, 유재훈, 김조자, 정혜숙 등도 귀한 정성을 보내주었다. 끈끈한 동지애를 보여준 고마운 사람들이다.

이안삼은 김천고를 졸업하고 김천중·고에서 38년 동안 음악교사 생활을 했다. 이런 인연으로 김상근 송설당교육재단 이사장의 관심과 협조로 김천고 동문과 제자, 기업인 등 150여명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그들 대부분은 고등학교 시절 이안삼에게 배웠다.

제5회 이안삼 가곡제에 출연한 메조소프라노 이주영과 바리톤 송기창이 ‘금빛날개’를 부르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제5회 이안삼 가곡제에 출연한 소프라노 김성혜와 테너 이정원이 ‘연리지 사랑’을 부르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제5회 이안삼 가곡제에 출연한 소프라노 강혜정과 테너 이현이 ‘내 마음 그 깊은 곳에’를 부르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한국 예술가곡의 거장 이안삼을 추모하고 기리는 ‘제5회 이안삼 가곡제’가 지난 22일 서울아트센터 도암홀에서 열렸다. 서희태가 지휘하는 모스틀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맞춰 정상의 성악가 7명(강혜정, 김성혜, 이주영, 임청화, 이정원, 이현, 송기창)이 이안삼 가곡 21곡을 불렀다. 장동인이 편곡과 피아노를 맡았다.

서희태는 “선생님의 한국 가곡에 대한 열정과 사랑은 제가 가진 기억처럼 많은 분들에게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며 “특히 이안삼 가곡은 피아노 반주보다 오케스트라로 연주할 때 더 빛나는 곡이 여럿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섯 번째 가곡제를 오케스트라로 할 수 있게 돼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이안삼은 애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과 청소년도 우리 가곡을 친근하게 만날 수 있도록 클래식(Classic)과 팝(Pop)을 합친 ‘클래팝(Clapop)’을 고안해 냈다. 순수음악에 대중이 좋아하는 화성과 리듬을 도입하면 가곡을 더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만든 새로운 장르다.

이번 음악회에서는 특히 클래팝 범주에 속하는 두 곡을 듀엣송으로 선사해 눈길을 끌었다. 이주영·송기창은 ‘금빛날개’(전경애 시)에서 흥겨움 넘치는 탱고리듬의 묘미를 잘 살려냈고, 김성혜·이정원은 ‘연리지 사랑’(서영순 시)에서 엔드리스 러브를 어루만지는 섬세함을 보여줬다. 또한 강혜정·이현은 이안삼 최고 히트곡 ‘내 마음 그 깊은 곳에’(김명희 시)를 연주했는데, 한 사람이 노래하면 뒤에서 화음을 넣어주는 아름다운 케미가 일품이었다.

제5회 이안삼 가곡제에 출연한 소프라노 강혜정이 노래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제5회 이안삼 가곡제에 출연한 소프라노 김성혜가 노래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소프라노 강혜정은 박경리 작가에 대한 흠모의 마음을 담은 ‘여름 보름 밤의 서신’(한상완 시)과 봄을 기다리는 애틋함이 가득한 ‘매화연가’(황여정 시)로 인사했다. ‘그대가 꽃이라면’(장장식 시)은 강혜정의 시그니처 노래로 통한다. “하늘에서 왔으니 앉을 곳을 가렸겠나/ 돌밭이라도 길가라도 애써 가렸겠나”에서 언터처블 보이스를 뽐냈다. 그는 “그동안 계속 해외에 있어 이안삼 가곡제에 참여하지 못해 송구했는데 이번에는 함께하게 돼 다행이다”라며 “노래하는 내내 선생님이 생각나 많이 울컥했다”고 고백했다.

소프라노 김성혜는 ‘마음 하나’(전세원 시) ‘위로’(고옥주 시) ‘어느 날 내게 사랑이’(다빈 시)를 들려줬다. “사랑할 때는 눈빛 하나 손짓 하나로/ 꽉 차 오르던 마음/ 왜 한 외로움은 하나의 위로로는/ 턱없이 부족한 걸까/ 그래서 세상은 사랑이 넘쳐나야 하지” 특히 플루트 선율이 귀를 사로잡은 ‘위로’는 관객 마음을 적시는 힐링송 역할을 톡톡해 해줬다. 김성혜도 “선생님을 생각하면 늘 감사한 마음뿐이다”라며 “저도 ‘위로’를 부르며 셀프 위로를 얻었고, 이번 음악회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것이 쏟아지는 순간이 유난히 많았다”고 밝혔다.

제5회 이안삼 가곡제에 출연한 소프라노 임청화가 노래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제5회 이안삼 가곡제에 출연한 메조소프라노 이주영이 노래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소프라노 임청화는 ‘오월의 노래’(공한수 시)에 이어 지금 시즌에 딱 들어맞는 ‘가을 들녘에 서서’(최숙영 시)와 ‘가을을 보내며’(이향숙 시)를 선사했다. 드레스 센스도 빛났다. 2부에서는 “이제 고운 단풍 빛으로 물들어 있는 나를 봅니다” “밤새도록 밤하늘 기대어 선 나무들, 물든 잎새”를 연상시키는 색깔의 옷을 입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맺지 못할 슬픈 운명이라 항상 그대 곁에 머물고 싶다는 ‘천년 사랑’(김성희 시)과 단풍잎 밟고서 돌아가신 어머니의 품을 그리워하는 ‘우리 어머니’(오문옥 시)는 메조소프라노 이주영의 목소리에 실려 관객 마음속에 내려앉았다.

제5회 이안삼 가곡제에 출연한 테너 이정원이 노래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제5회 이안삼 가곡제에 출연한 테너 이현이 노래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제5회 이안삼 가곡제에 출연한 바리톤 송기창이 노래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테너 이정원은 ‘고독’(이명숙 시) ‘솟대’(김필연 시) ‘사랑하는 아들아’(유자효 시)를, 테너 이현은 ‘다시 묻지 않으리’(노종석 시)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문효치 시)를, 바리톤 송기창은 ‘나지막한 소리로’(고영복 시) ‘주목’(심응문 시·장동인 편곡)을 불렀다. 세 성악가 모두 선생이 주최하거나 주관한 음악회에 빠지지 않던 붙박이 가수들이다.

제5회 이안삼 가곡제 사회를 맡은 장장식 시인이 이날 연주된 이안삼의 21곡 제목을 활용해 만든 재치 가득한 시를 낭독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모든 출연자와 관객은 피날레 곡으로 ‘그대가 꽃이라면’을 합창하며 음악회를 끝마쳤다. 사회를 맡은 장장식 시인이 마지막 한방을 터뜨렸다. 이날 공연된 이안삼의 곡 21곡으로 한 편의 시를 만들어 관객을 감동시켰다. 재치가 넘쳤다. 훈훈한 마무리다.

<‘어느 날 내게 사랑이’ 천년의 ‘주목’같은 ‘솟대’ 위에서
‘사랑하는 아들아’, ‘우리 어머니’
‘나지막한 소리’로 밀려와
‘매화연가’ 되고, ‘오월의 노래’ 되고
‘여름 보름밤의 서신’으로 ‘위로’ 할 때,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금빛날개’를 펼쳐라
‘가을 들녘에 서서’ 기도했다네.

그리고 이제는
‘가을을 보내며’
오늘의 ‘마음 하나’
‘그대가 꽃이라면’
‘내 마음 그 깊은 곳에’
‘천년사랑’ 될까
‘연리지 사랑’ 될까
‘다시는 묻지 않으리’
‘다시는 묻지 않으리’>

/eunki@classicbiz.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