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오페라앙상블은 오는 12월 5일과 6일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서울 오르페오’를 공연한다. ⓒ서울오페라앙상블 제공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11월과 12월에 걸쳐 글룩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가 전국의 팬들을 만난다. 춘천, 대구, 서울에서 잇따라 무대에 올리는데 각각의 공연 모두 뚜렷한 색깔을 가지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오리지널 고음악에 충실한’ 춘천, ‘세계의 눈도장을 찍은’ 대구, ‘국악·양악 퓨전의 현대적 감성 덧입은’ 서울 등 삼색 재미를 선사한다.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룩(1714~1787)은 오페라 개혁의 선구자였다. 대표작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Orfeo ed Euridice)’는 복잡하고 장식적인 바로크 오페라에서 벗어나 음악과 극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인간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전달한 첫 작품으로 평가된다. 오페라 속 아리아 ‘에우리디체 없이는 무엇을 하리오(Che faro senza Euridice)’는 불멸의 히트곡이다.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나무와 바위까지 감동시키는 하프의 명인 오르페우스는 갑작스럽게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잊지 못해, 그를 찾아 지하세계까지 내려간다. 아내를 데리고 그곳을 빠져나가지만, “지상에 도착하기 전까지 절대로 뒤돌아보지 말라”는 신의 경고를 어겨 결국 비극적 결과를 맞이한다.

하지만 글룩의 오페라에서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오르페오가 신을 감동시켜 에우리디체와 함께 무사히 지상으로 올라간다. 등장인물의 이름도 ‘오르페우스’에서 ‘오르페오’로, ‘에우리디케’에서 ‘에우리디체’로 바꿨다. 이탈리아식 표기다.

제28회 춘천국제고음악축제 폐막공연으로 11월 2일에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가 열리는 가운데 마지막 연습을 하고 있다. ⓒ춘천국제고음악축제 제공


춘천에서 먼저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가 스타트를 끊는다. 양주시립교향악단 지휘자 권성준과 한국 오페라계의 베테랑 연출 장수동이 손을 잡았다. 제28회 춘천국제고음악축제 폐막공연으로 11월 2일(일) 한림대 일송아트홀에서 공연한다.

이 공연은 고전주의 오페라 시대를 열어젖힌 작품의 오리지널 형식을 되살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고음악 전문단체인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이 오케스트라 파트를 맡는다. 당대의 악기와 연주법을 재현해 음악의 원형이 지닌 순수함을 전달한다. 쳄발로(하프시코드), 류트, 비올라 다 감바, 바로크 바이올린 등의 고악기의 매력을 즐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카운터테너 지필두(오르페오 역), 소프라노 이효진(에우리디체 역), 소프라노 정꽃님(아모르 역) 등 실력파 성악가들이 나온다. 백영태 강원대 교수의 발레단 ‘백영태 발레 류보브’와 강원대 학생들로 구성된 합창단 ‘콜레기움 보칼레 KNU’이 뒤를 받쳐준다.

이어 대구에서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를 이어 받는다. 제22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의 폐막작품으로 관객을 만난다. 11월 7일(금)과 8일(토) 이틀간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된다. 대구오페라하우스가 자체 제작한 작품으로 지난 7월 에스토니아 사아레마 오페라 축제에서 선보여 기립 박수를 받는 등 큰 호응을 얻었다. 해외에서 이미 눈도장을 받은 셈이다.

지휘 조정현, 연출 엄숙정. 메조스프라노 김정미(오르페오), 소프라노 오희진(에우리디체), 소프라노 이정현(아모르)이 캐스팅됐다. 디오오케스트라, 대구오페라콰이어, 카이로스댄스컴퍼니가 힘을 보탠다. 죽음마저 초월할 수 있다는 믿음의 영원성을 가장 순수하게 담아낸다.

서울오페라앙상블은 오는 12월 5일과 6일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서울 오르페오’를 공연한다. ⓒ서울오페라앙상블 제공


마지막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는 서울오페라앙상블의 공연이다. 오는 12월 5일(금)과 6일(토)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열린다. 오리지널 음악을 바탕으로 국악과 양악을 융복합해 현대적으로 편곡한 작품이다. 타이틀도 ‘서울 오르페오’로 달고, 내용도 각색했다.

거리의 악사 바라(오르페오)는 지하철 사고로 목숨을 잃은 연인 세화(에우리디체)를 되찾기 위해 광화문지하철역과 환상의 섬 이어도를 잇는 저승길을 떠난다는 스토리가 기본 골격이다. 세화를 잃고 통곡하는 바라 앞에 노숙인 차림의 종달(아모르)이 나타나고, 바라의 간곡한 사랑에 감복해 다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 단, 세상 밖으로 나올 때까지 새화를 돌아보면 안된다는 약속과 함께. 그리스 신화를 이어도 신화와 씻김굿 등 한국적 정서와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현대 오페라다.

바라 역은 메조소프라노 현서진이 맡는다. 지난 8월 공개오디션을 통해 당당하게 주역을 꿰찼다. 세화 역은 소프라노 손주연과 김은미, 종달 역은 소프파노 이한나와 이주리가 번갈아 맡는다. 지휘 권성준, 연출 장수동, 국악편곡 신동일. 권성준·장수동 콤비는 춘천에 이어 서울 공연에서 다시 호흡을 맞추지만, 극단적으로 서로 다른 성격의 작품을 동시에 선보인다.

‘서울 오르페오’는 역사가 있다. 서울오페라앙상블은 2010년부터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를 수차례 공연한 바 있으며 특히 2015년 밀라노세계엑스포 초청공연, 2018년 한국오페라70주년 기념오페라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해 주목을 받았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전체적인 구성은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를 따르고 있지만 제주 신화 ‘바리데기’와 민간 신앙 ‘씻김굿’ 등을 융합해 실험적 양식의 새로운 오페라로 탄생시켰다. 이게 2022년 CJ아지트 대학로에서 공연한 ‘오르페오-그 영혼의 노래’다. 오는 12월에 선보이는 ‘서울 오르페오’는 그동안의 업그레이드를 반영한 최신 버전이다.

춘천·서울 공연의 연출을 맡은 장수동은 “올해 춘천국제고음악제 테마는 ‘Un Ricordo D’Amore(사랑의 기억)’이고, 대구국제오페라축제 테마는 ‘Per Sempre(영원)’이고, 서울오페라앙상블의 주제는 ‘불멸의 사랑’이다”라며 “세 곳에서 펼쳐지는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는 사랑의 고귀함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서로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페라는 지금까지 다양성을 통해 진보해 왔다”며 “이번 시즌의 세 가지 색깔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는 공연 생태계의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한국오페라의 방향성에 긍정적인 마중물이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park72@classicbiz.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