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니스트 윤 젱이 오는 12월 26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돌체악기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호르니스트 윤 젱은 1999년 중국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호른 연주자였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부드러운 호른 소리에 빠졌다. 여섯 살 때 쓰촨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 호른 주자였던 아버지에게 처음 호른을 배웠다.
어느날 공연 영상을 하나 보게 됐다. 이게 마음을 뒤흔들었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슈테판 도어와 게오르크 슈레켄베르거가 연주한 슈만의 ‘4개의 호른을 위한 소협주곡’ 영상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때부터 베를린 필하모닉의 일원이 되는 꿈을 키웠다. 10세에 쓰촨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아픈 연주자의 대타로 무대에 올라 오케스트라 연주의 매력을 처음 경험했다. 잊지못할 짜릿한 날이었다.
2011년, 베이징으로 건너가 중앙음악원에서 취안 웬의 지도를 받았다. 2019/20 시즌에는 제네바 고등음악원에서 브루노 슈나이더를 사사했다. 이후 콩쿠르에서 잇달아 좋은 성적을 냈다. 2013년 제주국제관악콩쿠르 2위, 2018년 프라하의 봄 콩쿠르 2위, 2019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1위, 2022년 ARD 콩쿠르 2위에 올랐다.
세계적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차이콥스키 콩쿠르 폐막 갈라에서 그를 “가장 놀라운 발견”이라고 극찬했고, ‘뉴요커’는 그의 연주를 두고 “어둠 속에서 빛나며 스러지는 듯한 환상적인 솔로”라고 평가했다.
2022년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수석이 됐고, 2024년에는 드디어 꿈을 이뤘다.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로 꼽히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석 호른 주자로 임명돼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는 약 15년간 공석이었던 라데크 바보라크의 자리를 계승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윤 젱은 차세대 호른계를 대표하는 ‘라이징 스타’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호르니스트 윤 젱이 오는 12월 26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돌체악기 제공
윤 젱이 오는 12월 26일(금)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피아니스트 오다이 이쿠코의 반주로 리사이틀을 연다. 이번 독주회는 호른이라는 악기가 지닌 서정성과 기교, 그리고 시대를 관통하는 매력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특별한 무대다.
프로그램이 알차다. 호른 음악의 전통과 현대성을 동시에 조명한다. 루이지 케루비니의 고전적 선율이 빛나는 ‘소나타 2번’으로 문을 열고,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의 오케스트라 레퍼토리에서 발췌한 3개의 소품으로 호른이 지닌 관현악적 색채를 강조한다.
이어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 모음곡을 들려준 뒤, 벨기에 작곡가 잔 비그네리의 ‘호른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를 통해 섬세하고 진지한 호른 음악의 세계를 선보인다.
특히 이번 무대에서 연주하는 차이콥스키와 프로코피예프 작품은 한국·일본 리사이틀 투어를 위해 윤 젱이 직접 편곡한 초연 버전으로, 그의 해석과 음악적 감각을 가장 생생하게 담아낸 새로운 레퍼토리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이처럼 낭만주의부터 현대에 이르는 폭넓은 작품을 통해 관객들은 호른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우르는 음악적 여정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윤 젱은 연주 활동뿐 아니라 교육에도 큰 열정을 쏟고 있다. 캐나다의 도멘 포르게, 일본의 아키요시다이 호른 캠프, 한국의 곤지암 페스티벌 등 다양한 국제 음악 캠프에서 초청받아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했다.
또한 한스 아이슬러 베를린 음악대학, 함부르크 국립음악연극대학 등 유럽 주요 음악기관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이번 내한 리사이틀은 단순한 독주회가 아니라 세계 최정상 호르니스트의 예술성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자, 국내 관객들에게 호른 음악의 저변을 확장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백브리핑> 서울시향과 환상 케미...객원 호른 수석으로 자주 무대 오르는 윤 젱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호른 수석 윤 젱이 지난 8월 22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독일의 MZ세대 여성 지휘자 루트 라인하르트의 지휘로 서울시향과 협연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호른 수석 윤 젱이 지난 8월 22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독일의 MZ세대 여성 지휘자 루트 라인하르트의 지휘로 서울시향과 협연한 후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호른 수석 윤 젱은 서울시립교향악단의 객원 호른 수석으로 자주 참여했다. 여러 차례 호흡을 맞췄기 때문에 서울시향과는 케미가 잘 맞는다.
그는 “오스모 벤스케 지휘자의 서울시향 음악감독 임기 마지막 2주를 함께 했고,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의 공식 임기 첫 2주 동안에는 말러 교향곡 1번과 바그너의 ‘발퀴레’를 연주했다”며 “서울시향과 함께 한 연주는 언제나 훌륭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영어와 독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단원들이 많아 놀랐다”라며 “리허설을 위해 연습실을 방문할 때마다 항상 개별로, 섹션별로 모두가 열심히 공연을 준비한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소속된 호른 섹션 연주자들이 매번 맛있는 음식을 사줬다”고 덧붙였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호른 수석 윤 젱이 지난 8월 23일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에서 열린 서울시향 실내악 시리즈에서 연주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호른 수석 윤 젱이 지난 8월 23일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에서 열린 서울시향 실내악 시리즈에서 연주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윤 젱은 지난 8월 22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독일의 MZ세대 여성 지휘자 루트 라인하르트의 지휘로 서울시향과 협연했다. 이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호른 협주곡 1번과 2번을 선보였다. 그는 실황으로 접하기 어려운 이 곡들을 탁월한 테크닉과 섬세하고 부드러운 음색으로 선사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윤 젱은 실내악 음악도 선사했다. 8월 23일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에서 ‘2025 서울시향 실내악 시리즈 IV: 윤 젱’으로 관객을 만났다.
그는 베토벤의 칠중주를 연주했다. 이 곡은 현악 사중주(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 베이스)와 목관 삼중주(클라리넷, 바순, 호른)라는 독특한 편성으로 구성된 베토벤 초기 실내악 작품이다. 총 여섯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선율미가 풍부한 주제와 탄탄한 구성, 각 악기의 개성과 색채를 조화롭게 살린 걸작으로 당대 최고의 인기곡 이었다. 유쾌하고 밝은 분위기, 우아한 선율, 악기 간 정교한 대화로 젊은 베토벤의 활력과 재치를 그대로 살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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