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지휘자 루트 라인하르트는 오는 8월 22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서울시향과 함께 한국 데뷔 무대를 갖는다. ⓒ서울시향 제공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최근 세계 주요 콩쿠르에서 MZ세대 젊은 지휘자들이 두각을 나타내며 클래식 음악계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그동안 포디움은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21세기 들어 실력파 여성 지휘자들이 주목받는 ‘마에스트라 전성시대’가 열리면서 세계 유수의 악단들도 여성 지휘자에게 눈을 돌리고 있다.
그 중 한 명이 루트 라인하르트(1988년 출생)다. 그는 2025/26시즌부터 로드아일랜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첫 여성 음악감독으로 활동한다. 80년 역사를 지닌 오케스트라에 다섯 번째 상임지휘자로 임명됐다. 라인하르트는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과 함께 댈러스 심포니에서 부지휘자로 두 시즌을 보냈고, LA 필하모닉의 두다멜 펠로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SPO 8월호’에서 판 츠베덴 밑에서 갈고 닦을 때의 추억을 털어 놓았다.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요. 어떻게 리허설을 해야 하고, 어떻게 내가 원하는 바를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지를요. ‘구름 같다’ ‘노을 같다’ 같은 추상적 표현이 아니라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가령 더 길게 연주하라는 건지, 밸런스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같은 것을 정확히 말하는 법을 익혔습니다. 사소한 것까지 배웠어요. 공연 전이나 쉬는 시간에도 얍과 시간을 많이 보냈는데, 그는 항상 연주할 곡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었어요. 이미 수없이 지휘한 곡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뭔가를 살피고, 메모하곤 했죠. 제게도 그런 습관이 생겼어요. 공연 한 시간 전 공연장에 도착해 예전에 체크한 걸 떠올리거나 리허설에서 새로 발견한 내용을 적어요.”
서울시립교향악단이 8월 여름의 끝자락에서 독일의 MZ세대 여성 지휘자 루트 라인하르트와 함께 한다. 8월 22일(금)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2025 서울시향 브람스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에서 지휘봉을 잡는다. 판 츠베덴이 선택한 라인하르트에게 이번 공연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서울시향 데뷔 무대를 넘어 아시아 무대 진출의 첫걸음을 내딛는 자리다. 프로그램 모두 ‘올 독일 사운드’로 구성됐다.
라인하르트는 특히 동시대 레퍼토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세계무대에서 21세기 여성 작곡가들의 작품을 다수 선보이며 현대음악의 지평을 넓히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그는 “14~15세 때 청소년 현대음악 앙상블(라인하르트는 바이올리니스트 출신이다)에서 활동하며 많은 경험을 했다. 존 케이지나 조지 크럼의 어렵고 실험적인 작품도 연주했다. 이 덕분에 많은 연주자가 느끼는 현대음악에 대한 두려움이 어릴 때부터 없었다”고 말했다. 젊은 감각과 현대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탄탄한 기반을 다져온 그의 향후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공연은 한국 초연으로 선보이는 독일의 현대 작곡가 데틀레프 글라네르트의 ‘넓은 땅’으로 문을 연다. 2013년 올덴부르크 주립 오케스트라의 의뢰로 작곡된 곡으로 브람스 교향곡 4번 선율을 인용해 글라네르트 특유의 색채로 확장하고 있으며, 즉흥적 폭발과 드라마틱한 울림을 통해 장대한 스케일의 관현악 판타지를 보여준다. 브람스의 서정성과 고전적 형식미를 기반으로 현대적 감성이 어우러져 우아하고 그로테스크한 매력으로 넓은 공감과 여운을 주는 작품이다.
라인하르트는 “일반 청중은 눈치 채기 어렵지만, 주의 깊게 들으면 브람스 4번의 처음 몇 음을 느낄 수 있다”며 “무엇보다 따뜻하고 풍부한 음향이 브람스를 닮았다”고 설명했다.
베를린필 호른 수석 윤 젱은 오는 8월 22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서울시향 정기연주회를 협연한다. ⓒ서울시향 제공
이어 세계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호른 수석 윤 젱(1999년 중국 출생)의 협연으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호른 협주곡 1번과 2번을 함께 선보인다. 이 곡들은 실황으로 접하기 어려운 작품으로 탁월한 테크닉과 섬세하고 부드러운 음색을 지닌 윤 젱의 풍부하고 울림 있는 사운드가 기대되는 무대다.
슈트라우스의 호른 협주곡 1번은 슈트라우스가 열아홉 살인 1883년에, 2번은 일흔여덟 살인 1942년에 탄생했다. 협주곡 2번은 교향시와 오페라의 대가 슈트라우스 만년의 걸작 가운데 첫 번째 작품으로 호른 솔로의 팡파르로 출발하지만 밝고 온화하며 여유로운 목가적 정취가 가득하다. 협주곡 1번은 그의 아버지 프란츠를 염두에 두고 작곡한 곡으로 호른의 영웅적이고 장대한 음색을 강조하면서도 서정적인 선율과 조화를 이루는 낭만주의 색채가 돋보인다.
윤 젱은 서울시향의 객원 호른 수석으로 자주 참여했다. 여러 차례 호흡을 맞췄기 때문에 서울시향과의 케미가 크게 기대된다. 그는 “오스모 벤스케 지휘자의 서울시향 음악감독 임기 마지막 2주를 함께 했고,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의 공식 임기 첫 2주 동안에는 말러 교향곡 1번과 바그너의 ‘발퀴레’를 연주했다”며 “서울시향과 함께 한 연주는 언제나 훌륭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영어와 독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단원들이 많아 놀랐다”라며 “리허설을 위해 연습실을 방문할 때마다 항상 개별로, 섹션별로 모두가 열심히 공연을 준비한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소속된 호른 섹션 연주자들이 매번 맛있는 음식을 사줬다”고 덧붙였다.
2부에서는 ‘브람스의 에로이카’로 불리는 브람스 교향곡 3번으로 잔잔한 여운과 울림을 선사한다. 이 곡은 브람스가 남긴 네 편의 교향곡 중 가장 규모가 작고 길이도 짧지만 간결하고 밀도가 높은 작품으로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가 돋보이며, 브람스 인생의 깊은 내면적 성찰을 담은 걸작이다.
마치 강물이 굽이치듯 흘러가는 1악장은 바그너 음악의 요소가 녹아있고, 북독일 색채가 가득한 2악장은 숲을 산책하는 동안 떠올랐던 이런저런 상념들이 흐른다. 웅대하고 호쾌한 기상과 절제된 긴장감을 지나 목가적인 분위기가 흐르며, 우수 어린 부드러운 선율로 영화 ‘굿바이 어게인(Goodbye Again)’에 삽입되며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3악장이 이어진다. 마지막 4악장은 브람스 전성기의 열정과 강렬한 의지가 펼쳐지다가 고요하고 명상적인 분위기로 마무리한다.
‘2025 서울시향 브람스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티켓은 좌석 등급별 1만~10만원이며, 서울시향 누리집과 콜센터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서울시향 누리집 회원은 1인 4매까지 10% 할인받을 수 있고, 만 24세까지 회원은 본인에 한해 40% 할인 혜택도 제공한다.
● 실내악도 선사하는 윤 젱...슈베르트·베토벤 곡 연주
호른 연주자 윤 젱은 실내악도 선사한다. 8월 23일(토) 오후 8시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에서 ‘2025 서울시향 실내악 시리즈 IV: 윤 젱’으로 관객을 만난다. 2022년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호른 수석에 이어 2024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호른 수석으로 입단한 윤 젱이 웅장하면서도 부드러운 호른의 음색을 실내악 무대에서 선보인다.
첫 무대는 슈베르트의 대표적인 실내악 작품인 피아노 오중주 ‘송어’로 연다. 1819년 여름 오스트리아에서 쓴 작품으로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로 구성된 다섯 악장의 곡이며, 특히 4악장은 슈베르트의 가곡 ‘송어’의 선율을 주제로 삼아 다채로운 변주가 전개된다. 전반적으로 밝고 경쾌한 분위기가 흐르며, 슈베르트 특유의 유려한 선율미와 풍부한 화성, 생기 넘치는 리듬이 돋보인다.
다음으로 호르니스트 윤 젱이 협연하는 베토벤의 칠중주가 이어진다. 이 곡은 현악 사중주(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 베이스)와 목관 삼중주(클라리넷, 바순, 호른)라는 독특한 편성으로 구성된 베토벤 초기 실내악 작품이다. 총 여섯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선율미가 풍부한 주제와 탄탄한 구성, 각 악기의 개성과 색채를 조화롭게 살린 걸작으로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유쾌하고 밝은 분위기, 우아한 선율, 악기 간 정교한 대화로 젊은 베토벤의 활력과 재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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