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이 5월 내한해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버전의 ‘백조의 호수(LAC)’를 국내 초연한다. ⓒAlice Blangero/몬테카를로발레단 제공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프랑스 지중해 동부해안에 위치한 도시국가 모나코는 20세기 초 세르게이 디아길레프(1872~1929)의 ‘발레 뤼스’가 거점으로 삼았던 현대 발레의 성지였다. 1909년 창단된 발레 뤼스는 처음엔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했으나, 나중에는 모나코의 몬테카를로를 홈으로 삼아 활약했다. 디아길레프는 러시아 사람이었기 때문에 발레단 이름도 ‘러시아 발레단’이라는 뜻의 발레 뤼스로 지었다.
발레 뤼스는 ‘불새’ ‘세헤라자데’ ‘페트루슈카’ ‘봄의 제전’ 등의 작품을 공연하며 세계적 발레단으로 이름을 떨쳤다. 든든한 음악가들이 뒤를 받쳐 주었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등이 발레 뤼스와 호흡을 맞추며 발레 음악을 작곡했다.
1929년 디아길레프 사망 후 발레 뤼스는 뿔뿔이 흩어졌다. 디아길레프의 유산을 계승하기 위해 1932년 ‘발레 뤼스 드 몬테카를로’가 결성됐다. 이 발레단은 몇 년 후 내분을 겪었고 일부가 독립해 1936년 ‘오리지널 발레 뤼스’를 새로 창립했다. 분열의 시간이었지만, 두 발레단은 서로 경쟁을 벌이며 1940년대 중반까지 전성기를 보냈다. 오리지널 발레 뤼스는 1952년까지, 발레 뤼스 드 몬테카를로는 1962년까지 존속했다.
● 모나코에 뿌리내린 혁신의 역사 계승한 몬테카를로 발레단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이 5월 내한해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버전의 ‘백조의 호수(LAC)’를 국내 초연한다. ⓒAlice Blangero/몬테카를로발레단 제공
1985년, 모나코 왕 레니에 3세의 큰 딸인 카롤린 공주는 발레를 사랑했던 어머니(모나코 공비 그레이스 켈리)를 기리며 모나코의 무용 전통을 부활시키고자 왕립으로 ‘몬테카를로 발레단’을 만들었다.
이들은 고전 발레의 우아함과 현대 무용의 파격을 절묘하게 결합해 세계 무용계의 트렌드를 선도해 왔다. 특히 1993년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1960년생)가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몬테카를로 발레단은 전통을 답습하는 박물관 같은 발레단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동시대의 감각을 무대 위에 구현하는 가장 뜨거운 예술 단체로 자리매김했다.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는 다이아몬드의 광채나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 그것을 다시 세공해내는 어려운 도전에 성공했다.”(르 피가로)
“‘나를 놀라게 하라(Etonne-moi)’, 이것이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의 좌우명이었다. 그리고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의 ‘백조의 호수(LAC)’는 이 요구에 완벽히 부응한다. ‘호수’가 이토록 서늘한 전율을 선사한 적은 결코 없었다.”(쥐트도이체 차이퉁)
“용감한 무용단, 조각 같은 듀오. 이 ‘호수(LAC)’는 대중적인 성공작이다. 그리고 몬테카를로 발레단은 그들의 눈부신 기량이 맺은 결실을 거두고 있다.”(르 누벨 옵세르바퇴르)
“마이요의 에너지 넘치며 공간을 장악하는 안무는 고전 발레의 언어에 정통해 있으며, 음악과 유려하게 어우러지는 동시에 무용수들의 우아한 테크닉이 지닌 길이감과 유연성을 돋보이게 한다.”(더 타임스)
“차이콥스키의 악보 위에서, 이 매우 직설적인 ‘호수(LAC)’는 흥미진진한 이미지들을 선사한다.”(르 몽드)
“동화의 어두움과 서사의 환상적인 측면을 근원에서부터 되살린 ‘호수(LAC)’는 성공작이다. 섬세하고 정교하게 다듬어진 구성은 드라마에 깊이를 더하고 춤에 의미를 부여한다. 아름답고 창의적인 제스처가 돋보이는 안무에는 짜릿한 자유의 향기가 배어 있다.”(당세)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이 5월 내한해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버전의 ‘백조의 호수(LAC)’를 국내 초연한다. ⓒAlice Blangero/몬테카를로발레단 제공
세계 무용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몬테카를로 발레단이 5월 한국을 찾는다. 이들이 선보일 작품은 마이요의 대표작 ‘백조의 호수(LAC)’다. 라보라예술기획과 영앤잎섬의 주최로 16일(토)과 17일(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한국 초연한다. 13일에는 화성예술의전당, 20일은 대전예술의전당에서도 공연한다. 지난 2005년과 2019년 ‘신데렐라’, 2023년 ‘로미오와 줄리엣’에 이은 마이요의 세 번째 작품이자 네 번째 내한무대다.
이번 공연을 이끄는 마이요는 고전을 해체하고 현대적 언어로 재조립하는 신고전주의 서사 발레(Narrative Ballet)의 세계적인 거장이다. 서사 발레는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선다. 고전 발레의 관습적인 연기를 배제하고, 무용수의 움직임 그 자체에 감정과 서사를 녹여내는 독창적인 화법을 구사한다. 이를 통해 관객은 텍스트를 읽는 것이 아니라, 춤을 통해 이야기의 본질과 캐릭터의 심리를 직관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마이요는 1977년 로잔 콩쿠르 우승을 시작으로 존 노이마이어의 총애를 받는 무용수로 활약했다. 부상으로 인한 은퇴 후 안무가로서 더욱 찬란한 꽃을 피웠다. 그의 이력은 현대 무용사의 굵직한 궤적과 같다. 2001년 ‘니진스키상(Nijinsky Award)’을 시작으로 2008년 무용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 최고 안무가상, 2015년 러시아의 ‘골든 마스크(Golden Mask)’ 작품상을 석권했다. 이어 2018년에는 로잔 콩쿠르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 그는 이번 한국 무대에서도 특유의 세련된 미장센과 심리를 파고드는 연출로 한국 관객을 홀릴 예정이다.
● 동화적 환상 걷어낸 흑백 스릴러...인간의 선악이 충돌하는 치밀한 구성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이 5월 내한해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버전의 ‘백조의 호수(LAC)’를 국내 초연한다. ⓒAlice Blangero/몬테카를로발레단 제공
‘백조의 호수’는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의 음악과 마리우스 프티파·레프 이바노프의 안무가 빚은 걸작 발레다. 이번에 선보이는 ‘백조의 호수’는 고전 ‘백조의 호수’를 마이요만의 시선으로 재탄생시킨 수작이다.
마이요가 새로 선보인 ‘백조의 호수’의 원래 제목은 ‘LAC(라크)’다. 프랑스어 LAC는 ‘호수’라는 뜻이다. 다른 버전의 ‘백조의 호수’와 구분하기 위해 제목 옆에 따로 LAC라고 덧붙인다.
2011년 초연된 이 작품은 전형적인 동화 속 사랑 이야기를 거부하고 ‘호수’로 대변되는 사건의 본질을 파고든다. 마이요는 원작을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가족 내의 갈등, 그리고 흑과 백으로 대변되는 인간 내면의 선악이 충돌하는 치밀한 심리 드라마로 변주해 냈다.
이를 위해 마이요는 각 분야 최고의 예술가들과 드림팀을 꾸렸다. 서사의 깊이를 더한 드라마투르기는 프랑스 최고 권위의 공쿠르상을 수상한 작가 장 루오가 맡았다. 무대는 프랑스 스트리트 아트의 대부로 불리는 에르네스트 피뇽-에르네스트가 담당했다. 그는 마이요의 ‘신데렐라’ ‘라 벨르’ ‘로미오와 줄리엣’ 등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상징적인 작품들에서 무대 디자인을 맡아 강렬한 추상적 공간감을 선사해온 무대 예술의 거장이다.
여기에 필립 기요텔의 파격적인 의상은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그는 영화 ‘아스테릭스: 미션 클레오파트라’로 프랑스 세자르 영화제 의상상을 수상했으며, ‘태양의 서커스’의 ‘큐리오스’ ‘드론 투 라이프)’ 등 주요 작품의 의상을 담당한 세계적인 디자이너다. 무대 예술과 패션의 경계를 허문 그의 독창적인 의상은 이번 작품의 시각적인 충격을 극대화할 것이다.
조명의 사뮈엘 테리는 마이요의 거의 모든 작품에 함께 하는데 조명을 활용한 공간 설계가 뛰어나 많은 안무가들이 함께 작업하고 싶어 하는 조명 디자이너다.
무엇보다 오케스트라 지휘는 러시아 예술의 심장부인 볼쇼이 극장에서 활약하는 이고르 드로노프가 맡아 작품의 완성도에서 정점을 찍는다. 1991년부터 볼쇼이 극장에서 지휘자로 활약 중인 그는 정통 클래식과 현대 음악을 아우르는 탁월한 해석력으로 명성이 높다. 특히 그는 마이요가 신뢰하는 음악적 파트너로 잘 알려져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 ‘신데렐라’ ‘백조의 호수(LAC)’ 등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핵심 레퍼토리를 지휘하며 발레단의 음악적 정체성을 확립해 왔다.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국립음악원 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하는 교육자이자, ‘현대음악 스튜디오(Studio for New Music)’의 음악감독으로도 활동 중인 그는 게오르그 솔티, 피에르 불레즈 등 전설적인 지휘자들을 사사했다.
● 마이요 감독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는 한국인 수석무용수 안재용 출연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이 5월 내한해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버전의 ‘백조의 호수(LAC)’를 국내 초연한다. ⓒAlice Blangero/몬테카를로발레단 제공
2019년 ‘신데렐라’ 아버지, 2023년 ‘로미오와 줄리엣’ 티볼트로 분했던 한국 출신의 무용수 안재용이 이번에도 고국의 팬들을 만난다.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2016년 몬테카를로에 입단해 군무(코르 드 발레)로 시작한 안재용은 입단 첫해부터 주요 배역들을 잇달아 연기한 뒤 2017년에는 세컨드 솔리스트로 승급했다.
이후 마이요 감독의 전폭적인 신뢰로 한 번에 두 단계를 승급해 2019년 수석무용수의 영예를 안았다. 이 외에도 한국인으로는 이수연이 2024년 입단했으며, 프랑스 보르도 국립발레단에서 솔리스트로 활약한 신아현이 2025년 합류했다. 마이요와 몬테카를로 발레단이 선보일 21세기형 ‘백조의 호수’에 대한 기대감이 무르익고 있다.
/park72@classicbiz.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