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 때리는 임윤찬의 첫 마디 “우승했다고 실력 늘진 않아...더 연습할 것”

콩쿠르 기간에 유튜브 아예 지워...제 연주 영상도 못봤다
인터넷 없이 악보에만 집중한 옛 음악가들 본받고 싶어
고귀한 음악 연주후 바로 넘어가기 힘들어서 ‘90초 침묵’

박정옥 기자 승인 2022.07.01 00:18 의견 0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인 임윤찬이 30일 기자 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목프로덕션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임윤찬을 향한 열기는 앞으로 더 오랫동안 현재진행형임을 예고했다. 30일 오후 1시 서울 서초구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초캠퍼스 이강숙홀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인 열여덟 살 피아니스트를 보기 위해서다. 핫 셀럽이다. 원래 이틀 전인 28일 기자간담회를 열려고 했으나 미국에서의 입국 상황이 여의치 않아 이틀 연기됐다. 그래도 만석이다.

검은 티셔츠 위에 검은 재킷을 걸치고 무대에 오른 그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먼저 스크랴빈의 전주곡을 연주했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셔터 소리가 요란했지만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어 역시 스크랴빈의 피아노 소나타 2번 1악장을 터치했다. 건반에서 손가락은 춤을 췄지만 표정은 차분하고 침착했다. ‘강심장’이다.

8분에 걸쳐 두 곡 연주를 마친 뒤 임윤찬은 담담하고 겸손하게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첫 마디부터 ‘이 친구 물건이네’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그는 “여태까지 피아노만 치며 살아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라며 “우승했다고 실력이 더 좋아진 건 아니니 더 열심히 연습하겠다”고 입을 뗐다. 콩쿠르 당시에도 하숙집에서 하루 12시간씩 연습한 것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인 임윤찬이 30일 기자 간담회에서 연주하고 있다. Ⓒ목프로덕션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인 임윤찬이 30일 기자 간담회에서 연주하고 있다. Ⓒ목프로덕션


그는 우승 직후 미국 인터뷰에서 ‘단 한 순간도 기쁘지 않았다’ ‘산에 들어가서 피아노만 치고 싶다’ ‘나를 롤모델로 삼지 마라’와 같은 나이답지 않은 소감으로 관심을 끌었는데 이날도 여기에 버금가는 멘트를 자연스럽게 쏟아냈다.

20세기 초 연주자들에 대한 경외심도 전했다. 임윤찬은 “옛 음악가들은 인터넷도 없던 시절 단지 악보와 자신 사이에서 음악을 찾은 사람들이었다”라며 “그로 인해 자기의 생각이 더 드러나고, 더 독창적인 게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저도 유튜브로 다른 사람의 연주를 보고 무의식적으로 따라 하기도 했는데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런 측면에서 옛 음악가들을 본받고 싶다”고 밝혔다.

임윤찬은 평소 독서도 많이 한다. 최근 인상적으로 읽은 책이 있느냐는 질문에 “계속 읽게 되는 책은 단테의 ‘신곡’이다.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라며 “2020년께 리스트의 ‘순례의 해: 이탈리아’를 연주했고 마지막 곡이 단테 소나타였다. 여러 출판사 것을 구입해 읽었고 거의 유일하게 전체를 외우다시피 읽은 책이다”라고 소개했다.

유럽 등 다른 지역 콩쿠르 도전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아직 반 클라이번 콩쿠르가 끝난 지 채 몇 주가 지나지 않아 그 부분은 말하기 힘들 것 같다”고 답했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인 임윤찬이 30일 기자 간담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오른쪽은 스승인 손민수 교수. Ⓒ목프로덕션


본인의 콩쿠르 연주 영상을 본 소감을 묻자 “콩쿠르 기간에는 카톡만 남기고 유튜브 등을 모두 지우고 지냈다”며 “콩쿠르 기간은 물론이고 사실은 지금도 제 연주를 제대로 안 들어봐서 잘 모르겠다”고 답해 웃음을 안겼다.

콩쿠르 당시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공개했다. 임윤찬은 이번 대회에서 준결선의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 전곡 연주와 결선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 무대는 큰 화제가 됐다. 폭발적 에너지와 뛰어난 재능에 찬사를 받으며 현지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그는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은 사람들이 어렵게 느끼는 것 같다. (스승인) 손민수 선생님께서 레슨 때마다 테크닉뿐만 아니라 그걸 넘어서 음악으로 다시 되돌아오는 순간이 초절기교라고 강조했기에 그 점을 가장 생각하면서 연습했다”고 말했다.

바흐, 스크랴빈, 쇼팽의 곡으로 구성한 2차 라운드 연주도 눈길을 끌었다. 그는 첫 곡인 바흐 연주를 마친 뒤 무려 90초 동안 침묵해 보는 이들의 의아함을 자아냈다. 이와 관련해 그는 “당시 첫 곡인 바흐를 내 영혼을 바치는 느낌으로 연주했다”며 “그런 고귀한 음악을 연주하고 바로 스크랴빈으로 넘어가기가 힘들어서 좀 시간을 줬던 것이다”라고 당시를 설명했다.

콩쿠르 심사위원장인 마린 앨솝과 결선 무대를 함께 한 소감도 밝혔다. 임윤찬과의 협연을 지휘한 후 감격스러워하는 앨솝의 얼굴이 포착되기도 했다. 그는 “앨솝 심사위원장은 어렸을 때부터 굉장히 존경하던 지휘자였다”며 “초등학생 시절 지휘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같이 연주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었다”고 말했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인 임윤찬이 30일 기자 간담회에서 연주하고 있다. Ⓒ목프로덕션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인 임윤찬이 30일 기자 간담회에서 연주하고 있다. Ⓒ목프로덕션


그러면서 “이번 콩쿠르 참가 신청 때 앨솝이 심사위원장이란 사실을 알게 된 후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런 마음이 통했는지 좋은 음악이 나왔다”며 “연주가 끝난 뒤 앨솝이 조언도 많이 해줬다”고 웃어 보였다.

이날 기자간담회에는 임윤찬을 12세 때부터 지도해온 손민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함께 참석했다. 임윤찬은 “선생님은 레슨 때 피아노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 한다”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옛 예술가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 등도 가르쳐 주셨다”고 전폭적인 신뢰를 보였다.

손 교수는 “임윤찬 군의 연주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는 걸 보며 음악의 순수함이 많은 사람들과 통한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윤찬이 오늘 간담회 직전 연주 연습하는 걸 봤는데, 왼손만 연습을 하고 있더라”며 “당장 임박한 연주를 앞두고도 음악에 달려들지 않고 차분히 왼손부터 연습하는 모습을 보며 저런 마음이라면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냐는 질문에는 “산에 들어가서 피아노와 살고 싶다고 말할 만큼 이미 윤찬이는 피아노에서는 도사가 된 것 같다”며 “내가 걱정할 필요 없이 잘 풀어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믿음을 드러냈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인 임윤찬이 30일 기자 간담회에서 스승인 손민수 교수와 악수하고 있다. Ⓒ목프로덕션

그러면서 “12살의 윤찬이를 처음 봤을 땐 지금 같은 상황은 상상하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그때도 매주 나에게 (배우려고) 들고 오는 곡들을 보며 정말 다른 생각 없이 음악에 몰두하는 사람이란 걸 느꼈다”고 했다.

챔프를 모셔 가려는 발길이 분주하다. 임윤찬은 7월 미국 아스펜 지역을 시작으로 북미 지역에서 연주회를 열 예정이다.

8월10일에는 소속사인 목프로덕션 창립 15주년 음악회 ‘바흐 플러스’, 8월 20일 롯데콘서트홀 여름 음악 축제 ‘클래식 레볼루션’에서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김선욱 지휘로 KBS교향악단과 협연한다. 지휘자 정명훈의 지휘 아래 8월 26일엔 KBS교향악단, 10월 5일엔 원 코리아 오케스트라와 각각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아트홀, 롯데콘서트홀에서 협연한다.

그리고 오는 12월1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우승 기념 피아노 리사이틀을 연다. 이번 콩쿠르 연주곡들을 선보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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