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80명 눈치코치 케미 빛났다...1913년 폭동 없었지만 ‘지휘자 없는 2022년 봄의 제전’도 쇼킹

어벤저스급 오케스트라 ‘고잉홈프로젝트’ 론칭무대서 실력 발휘

민은기 기자 승인 2022.08.01 17:53 | 최종 수정 2022.08.01 18:12 의견 0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고잉홈프로젝트 론칭 공연에서 트럼페터 알렉상드르 바티와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협연하고 있다. ⒸSihoonKim/고잉홈프로젝트 제공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고잉홈프로젝트 론칭 공연에서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협연하고 있다. ⒸSihoonKim/고잉홈프로젝트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지휘자가 없다는 것은 미리 알고 있었지만 막상 포디엄이 사라지니 왠지 낯설었다. 그 대신에 악장 역할을 맡은 바이올리니스트 스베틀린 루세브가 가장 먼저 걸어 나왔다. 뒤를 이어 80여명의 고잉홈프로젝트(Going Home Project) 단원들이 착착 자리에 앉았다. 금세 무대가 꽉 찼다. 서로 눈빛을 주고받고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태양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이교도들의 춤을 형상화한 발레곡이다.

두 파트로 되어 있는데 파트1은 ‘대지에 대한 찬양’. 바순이 신비로운 선율을 선사하며 스타트를 끊었다. “어라, 소프트하네”라는 잠시의 생각을 단박에 깨뜨리며, 육중한 현악 파트가 거친 사운드를 쏟아냈다. 제1곡 ‘서주’, 제2곡 ‘봄의 태동’, 제3곡 ‘유괴 의식’, 제4곡 ‘봄의 윤무’, 제5곡 ‘적대하는 부족의 의식’, 제6곡 ‘현인의 행렬’, 제7곡 ‘대지에 대한 찬양’, 제8곡 ‘대지의 춤’으로 이어지며 호흡이 점점 가빠졌다. 원초적이고 원시적인 음악이 몰아쳤다.

파트2는 ‘희생’이다. 역시 ‘서주(제1곡)’ ‘처녀들의 신비로운 모임(제2곡)’ ‘선택된 처녀에 대한 찬미(제3곡)’ ‘조상에 대한 초혼(제4곡)’ ‘조상에 대한 의식(제5곡)’ ‘희생의 춤(제6곡)’ 등 귀에 익숙하지 않은 불협화음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가장 유명한 제6곡에서 처녀는 조상의 혼에 둘러싸여 광적인 춤을 춘다. 제물의 죽음을 의미하는 처참한 선율이 트럼본을 통해 표출됐다. 무용수는 없었지만 신께 바쳐지는 처녀의 마지막이 눈앞에서 오버랩됐다.

고잉홈프로젝트 론칭 공연에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연주하고 있다. ⒸSihoonKim/고잉홈프로젝트 제공
고잉홈프로젝트 론칭 공연에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연주하고 있다. ⒸSihoonKim/고잉홈프로젝트 제공


14개국 50개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국내외 연주자들이 주축이 된 어벤저스 오케스트라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고잉홈프로젝트의 창단 첫 음악제 ‘더고잉홈 위크(The Going Home Week)’의 개막공연 ‘봄의 제전’이 7월 30일과 31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렸다. 이틀 모두 똑같은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31일 공연은 ‘먹을 것 많은 소문난 잔치’였다.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며 퍼펙트 음악을 들려줬다. 스베틀린 루세브는 다른 아티스트들에 비해 큰 동작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오케스트라를 ‘리드’했다. 자기 파트가 없을 땐 허공에 손을 그으며 ‘하나의 팀’을 이끌었다.

그는 공연을 앞두고 “수십 명의 연주자들이 만들어내는 수만 가지의 소리 조각들이 무대 위를 돌아다닐 것이다”라며 “서로의 소리를 듣기 위한 귀 기울임, 그리고 눈짓과 몸짓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 등으로 빚은 가장 거대한 음악이 우리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의 말은 사실로 입증됐다. 비록 지휘자는 없었지만 단원들 모두는 ‘눈치코치 케미’로 합을 합쳐 멋진 야성적 음악을 만들어냈다. 깊은 내공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1913년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초연된 ‘봄의 제전’은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빅 스캔들을 일으켰다. 당시 공연이 시작되자 “고정관념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다”라며 작품을 옹호하는 청중과 “뭐 이런 황당한 게 있어”라며 막말을 내뱉는 청중이 충돌했다. 멱살잡이와 주먹다짐이 일어나며 아수라장이 됐다. 상황이 거의 폭동에 가까워지자 경찰이 출동하기까지 했다. 사실 이날 해프닝은 발레에 대한 기존 통념을 송두리째 뒤엎은 바츨라프 니진스키의 파격적인 안무에서 비롯된 측면이 더 크지만, 스트라빈스키의 혁신적인 음악도 한몫했다. 1913년의 폭동은 없었지만 '지휘자 없는 2022년의 봄의 제전'도 쇼킹이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고잉홈프로젝트 론칭 공연에서 트럼페터 알렉상드르 바티와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협연한 뒤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SihoonKim/고잉홈프로젝트 제공


고잉홈프로젝트의 탄생에는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큰 역할을 했다. 출발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손열음이 예술감독으로 있는 평창대관령음악제는 전 세계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연주자를 모아 평창페스티벌오케스트라(PFO)를 결성했다. 플루티스트 조성현, 첼리스트 김두민, 호르니스트 김홍박도 이 악단에 참여해 활약했다.

대관령음악제는 끝났지만 1년에 달랑 한번 짧은 만남으로 끝내기에는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조성현, 김두민, 김홍박 등은 장기적인 음악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 정규 악단 설립의 필요성에 뜻을 모았다. 착실한 준비 과정을 거쳐 지난해 말 고잉홈프로젝트를 론칭했다. 국적으로 연주자를 제한하지 말고 ‘홈’의 의미를 ‘집’ ‘조국’에서 벗어나 ‘음악’ ‘가족’의 개념으로 확장했다. 이 덕분에 더 많은 연주자들이 모였다.

고잉홈프로젝트의 단초를 제공한 손열음도 기쁜 마음으로 참여했다. 빨간옷을 입고 등장한 그는 살짝 재즈 분위기가 느껴지는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들려줬다. 이 곡은 아주 독특한 편성으로 이루어졌다. 오케스트라는 모두 현악기로만 구성됐다. 목관·금관 파트가 없다. 거기에다 피아노 옆에 트럼펫 솔로이스트가 바짝 붙어 서로 주거니 받거니 연주한다. 앙렉상드로 바티가 호흡을 맞췄다.

“역시 손열음”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손가락이 얼음 위를 미끌어 지듯 부드럽게 건반을 휩쓸더니, 어느새 쿵쿵쾅쾅 과격하게 내리치며 트펌펫과 ‘밀당’을 계속한다. 4악장이지만 쏜살같이 지나갔다. 앙코르라도 더 듣고 싶은 아쉬움에 브라바 박수를 퍼부었지만, 한사람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을 경계하는 듯 거기서 연주를 멈췄다.

고잉홈프로젝트 론칭 공연에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연주하고 있다. ⒸSihoonKim/고잉홈프로젝트 제공
고잉홈프로젝트 론칭 공연에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연주하고 있다. ⒸSihoonKim/고잉홈프로젝트 제공


고잉홈프로젝트는 구스타프 홀스트의 ‘세인트폴 모음곡 C장조’도 연주했다. 홀스트는 30년 가까이 세인트폴 여학교에서 근무했는데, 이 학교를 위해 작곡한 곡이다. 현악기를 위한 곡답게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만 등장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는 의자에 앉지 않고 모두 서서 연주했다. 스타카토 반주에 맞춰 바이올린 솔로가 흐르는 3악장은 귀에 감겼다.

더고잉홈위크는 롯데콘서트홀에서 4일까지 계속된다. 1일은 ‘그랑 파르티타’라는 타이틀로 쇤베르크 ‘정화된 밤’과 모차르트의 관악을 위한 세레나데 10번 ‘그랑 파르티타’를 들려준다. 함경(오보에), 조인혁(클라리넷), 유성권(바순), 김홍박(호른) 등이 출연한다.

2일 ‘볼레로:더 갈라’는 14명의 협연자가 차례로 등장해 협주곡을 들려주는 릴레이 콘서트다. 피날레 곡은 라벨의 ‘볼레로’다. 3일 실내악 공연 ‘집으로’는 시반 마겐(하프), 김두민(첼로), 손열음(피아노), 스베틀린 루세브(바이올린) 등이 출연해 레니에의 ‘환상적 발라드’, 드보로자크의 ‘피아노 오중주’ 등을 연주한다.

4일 폐막 공연은 후안호 메나가 지휘봉을 잡아 브루크너의 교향곡 6번을 연주한다. 김홍박이 협연하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호른 협주곡 1번도 선보인다.

/eunki@classicbiz.kr

저작권자 ⓒ ClassicBiz,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