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베토벤 4번 협주곡·8번 소나타 ‘울컥’...이태원 슬픔 위로해준 김선욱

키릴 카바리츠 지휘한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와 협연
마스터클래스 인연 스승 안드라스 쉬퍼 ‘응원 품앗이’

민은기 기자 승인 2022.11.09 17:41 | 최종 수정 2022.11.09 18:09 의견 0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키릴 카라비츠가 지휘하는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뒤 지휘자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있다. ⓒ빈체로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지난 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키릴 카라비츠가 지휘하는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와 협연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들려줬다. 김선욱(1988년생)과 카라비츠(1976년생)는 12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절친이다. 2009년 처음 함께 무대에 선 뒤 10년 넘게 돈독한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그동안 다양한 레퍼토리로 약 50회의 공연을 합작했다.

3번 연주를 마친 뒤 앙코르 요청 박수가 계속 이어지자 김선욱은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곡을 준비했다”라며,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2악장을 터치했다. 채 5분이 안되는 짧은 악장이지만,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달래주는 안성맞춤 선곡이었다.

그리고 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김선욱은 다시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춰 이번엔 ‘정식으로’ 4번을 연주했다. 이날 공연은 ‘올 베토벤(All Beethoven)’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갑작스럽게 남편을 잃고 홀로 된 요제피네 폰 브룬스 비크와의 사랑이 고조되던 시기에 작곡됐기 때문에 애틋한 감정을 가득 품고 있는 곡이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키릴 카라비츠가 지휘하는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있다. ⓒ빈체로 제공


“저를 따라 오세요”라는 피아노의 달콤한 귓속말로 1악장이 시작됐다. 관현악 서주 없이 피아노 독주가 홀로 스타트를 끊는 형태는 매우 보기 드문 경우다. “예, 뒤를 따라 갈게요”라며 현악기 파트가 이어지고, 이번엔 관악기까지 가세해 점점 사운드를 키워나간다. 몸집을 키운 음악은 다소 긴장감을 주며 몸을 감싼다. 마지막에 펼쳐지는 화려한 카덴차 부분에선 단원들 모두가 오랫동안 김선욱의 연주를 감상하는 풍경이 이채로웠다.

2악장은 먹먹했다. 오케스트라는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거대한 슬픔을 처음부터 왈칵 쏟아냈다. 이어 피아노와 슬픔을 서로 주고받았다. 이렇게 아픔을 나누면 조금이라도 고통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마음이 읽혀져 콧등이 찡하다. 마지막 부분에 흐르는 애절한 선율에 울컥한다. 서서히 어둠이 몰려오듯 조용하게 악장은 마무리된다.

3악장은 현악기가 리드미컬한 주제를 조용하게 제시하고, 피아노는 유연한 주제로 대응한다. 마지막에 짧은 카덴차가 등장하고 코다로 끝난다.

연주를 마친 뒤 김선욱과 카라비츠는 감사와 존경의 포옹을 나눴다. 단짝 케미의 힘이 아름다웠다. 몇차례의 브라보 환호에 답하며 피아노 앞에 앉은 김선욱은 ‘피아노 소나타 8번’ 2악장을 연주했다. 마음이 몹시 상하고 슬프다는 뜻을 가진 ‘비창(悲愴)’ 소나타다. 역시 아픔을 위로하는 진심을 담은 레퍼토리다.

관객석에 반가운 얼굴도 눈에 띄었다. 6일 롯데콘서트홀 리사이틀에서 마법 같은 4시간의 렉처 콘서트를 선사했던 ‘피아니스트들의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가 제자를 응원하러 왔다. 쉬프는 마스터 클래스를 통해 2008년 김선욱, 2011년 조성진을 만났다. 6일 공연엔 김선욱도 스승을 응원하러 같으니, 사제지간 ‘응원 품앗이’가 멋지다.

키릴 카라비츠가 지휘하는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와 연주하고 있다. ⓒ빈체로 제공
키릴 카라비츠가 지휘하는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가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빈체로 제공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는 1981년 창단했다. 각국의 오케스트라 수석, 저명한 실내악 연주자, 음악 교수 등 약 60명의 단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창단 초기부터 중요한 멘토 역할을 하며 오케스트라를 이끌었고,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도 악단의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야닉 네제 세갱,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안드라스 쉬프도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했다.

40여년의 역사는 엑설런트했다.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는 ‘코리올란 서곡’으로 오프닝을 열었다. 엄청난 파워를 실어 출발한 음악은 사라질 듯한 종결을 보여주며 확실한 대조를 이뤘다. 그리고 ‘교향곡 7번’. 악성이 남긴 9개의 교향곡 가운데 가장 활기차고 밝은 분위기다. 2악장은 레퀴엠을 대신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울림이 크다.

몇 번의 커튼콜이 이어진 뒤 카라비츠는 또렷한 한국어 발음으로 “베토벤 독일춤곡 2번입니다”라고 앙코르곡을 소개해 큰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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