얍 판 츠베덴 “목표는 ‘카멜레온 서울시향’...첫 시즌은 ‘사운드 사파리’ 집중”

첫 기자 간담회서 내년 음악감독 활동 포부 공개
“다양한 색채 연주하는 멀티 오케스트라 만들겠다”
‘오징어게임’ 정재일 작곡가와 현대곡 작업 기대

박정옥 기자 승인 2023.01.17 18:34 | 최종 수정 2023.01.18 08:12 의견 0
서울시향 차기 음악감독인 얍 판 츠베덴이 첫 기자 간담회서 앞으로의 플랜을 설명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카멜레온 같은 다채로운 색을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림에 비유하자면 때로는 렘브란트처럼 무거운 색채를, 또 때로는 반 고흐처럼 화려한 색채를 연주해야 합니다. 그래서 취임 첫해는 ‘사운드 사파리’에 집중할 예정입니다.”

얍 판 츠베덴 서울시립교향악단 차기 음악감독이 앞으로의 구체적인 플랜을 공개했다. 내년 1월 공식적으로 취임해 임기 5년 동안 서울시향을 톱클래스로 이끌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그는 1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서울시향 연습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일단 2024시즌은 ‘사운드 사파리’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버스를 타고 온갖 동물들을 살펴보는 사파리 투어처럼, 여러 가지 소리의 가능성을 실험해 서울시향과 가장 잘 맞는 사운드를 찾아내겠다는 뜻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최종적으로 ‘카멜레온 서울시향’을 만든다. 즉, 작품과 지휘자에 따라 전혀 다른 사운드를 낼 수 있는 멀티 악단으로 키우는 전략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난 츠베덴은 19세에 세계적인 악단인 로열콘세르트헤바우오케스트라(RCO)의 최연소 악장으로 임명돼 16년간 활약했다. 그 당시의 경험을 들려줬다. 그는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가 지휘할 때와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혹은 게오르그 솔티가 포디움에 섰을 때 사운드가 완전히 달랐다”라며 “악단은 지휘자들이 가진 저마다의 개성을 불러들일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게 바로 ‘이상적인 미래의 오케스트라’라고 덧붙였다.

츠베덴은 서울시향의 러브콜을 자랑스러워했다. “서울시향처럼 훌륭한 오케스트라로부터 음악감독 제안을 받은 것은 매우 큰 영광이다”라며 “한국 최고의 악단인 서울시향과 함께 작업한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고 속내를 밝혔다. 그러면서 바이올린 스승인 강효 교수를 언급했다.

서울시향 차기 음악감독인 얍 판 츠베덴이 첫 기자 간담회서 앞으로의 플랜을 설명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16세에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공부할 때 강효 교수님을 처음 만났어요. 바이올린에 관한 모든 지식뿐만 아니라 연주자의 윤리 등을 배웠어요. 제 삶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신 스승님으로 그 어떤 선생님보다 큰 영향을 주셨죠. 한국 클래식의 보물 같은 분이죠. 이번 서울시향 데뷔 공연 때도 오셔서 응원해 주셨습니다.”

츠베덴은 원래 7월에 서울시향을 처음 지휘하기로 돼 있었으나 오스모 벤스케가 다리 골절상을 입어 대타로 지휘봉을 잡았고, 12일과 13일 이틀간 롯데콘서트홀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2012년부터 홍콩필하모닉 음악감독을 맡은 것도 한국행을 거들었다. 그는 “클래식 음악의 미래에 동양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라며 “뉴욕필과 홍콩필은 물론 세계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며 뛰어난 한국(아시아) 연주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한국에 오니 고향에 온 기분이다”라며 웃었다.

츠베덴은 강효 교수뿐만 아니라 자신의 음악 인생에 도움을 준 고마운 은인들에 대해서도 따로 설명했다. “네덜란드 지휘자인 앙드레 프레셔에게 지휘 테크닉을 배웠다”며 “발레 전문 지휘자였는데,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훌륭한 선생이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그리고 로열콘세르트헤바우 시절 만났던 거장들에 대한 기억도 털어놨다.

서울시향 차기 음악감독인 얍 판 츠베덴이 첫 기자 간담회서 앞으로의 플랜을 설명하고 있다. 왼쪽은 손은경 서울시향 대표. ⓒ서울시향 제공


“악장으로서 매주 새로운 지휘자들을 만났고 그들로부터 새로운 가르침을 받는 특전을 누렸어요. 아르농쿠르에게는 바흐·모차르트·베토벤을 연주하는 법을, 솔티에겐 바그너 사운드를 내는 법을 배웠어요. 말러 교향곡 전곡을 함께 완성한 레너드 번스타인도 잊을 수 없죠. 볼프강 자발리슈로부터는 브람스 해석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고요.”

현재 뉴욕필과 홍콩필의 음악감독으로 일하고 있는 츠베덴은 ‘오케스트라 트레이너’로 유명하다. 혹독한 연습 때문에 이런 별명이 붙었다. 그는 “오케스트라가 무대에서 100%의 능력을 발휘하려면 110%를 준비해야 한다”며 “연주자와 지휘자가 공연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려면 철저한 준비가 필수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때론 엄격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중요한 건 모두가 더 나은 연주자가 되는 것이다”라며 “최고의 수준에 오르기 위해선 철저한 엑서사이즈가 뒤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나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스타일보다는 클라우디도 아바도 스타일을 선호한다. “오케스트라 내의 민주주의는 중요하다. 왜나면 우리는 무대 위에서 하나의 가족으로서 연주하고 단원의 화합이 무엇보다 힘이 되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윽박과 닦달이 아닌 경청과 소통의 지휘자다.

“제가 36세에 지휘를 처음 시작한 뒤 여러 악단에서 지휘했지만 음악감독으로서 단 한명의 단원도 해고한 적이 없어요. 음악감독의 임무는 단원 모두가 더 발전하도록 하는 겁니다. 때로는 호랑이 역할을 맡기도 하지만 개인적 감정은 없어요. 결국 중요한 것은 모두가 더 나은 연주자가 될 수 있도록 돕는 리더십입니다.”

바그너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바그너의 세계는 매우 다채롭다. 홍콩필과 녹음한 ‘링 사이클’을 모두 도전할 수는 없지만 일부분은 할 수 있다. 그보다는 ‘탄호이저’ ‘트리스탄과 이졸데’ ‘로엔그린’ ‘파르지팔’ 등 다른 오페라들을 연주하고 싶다”며 “2024년에는 탄생 200주년을 맞는 브루크너를 한 작품 정도 할 수 있고, 첫 시즌인 만큼 모차르트부터 현대음악까지 다양한 작곡가들의 음악을 선보이고자 한다”고 밝혔다.

서울시향 차기 음악감독인 얍 판 츠베덴이 첫 기자 간담회서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동시대 음악을 강조한 그는 한국 작곡가들과의 협업 계획도 살짝 공개했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과 영화 ‘기생충’의 정재일 음악감독을 비롯한 한국 작곡가들에게 신작 위촉을 할 예정이다.

“뉴욕필과는 2주에 한 번씩 신작을 세계 초연하고 있어요. 오케스트라는 재능 있는 작곡가들에게 작곡의 기회를 제공할 의무가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한국의 재능 있는 작곡가들과 접촉해 다채로운 곡을 위촉하고 싶어요. 프로그램의 30% 정도를 신작으로 채우고 싶은데, 작곡가들에게도 시간이 필요한 만큼 아마 두 번째 시즌(2025년)부터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서울시향은 오는 4월 모두 9명의 단원을 공개 채용한다. 2015년 이후 8년 만의 충원이다. 츠베덴도 차기 음악감독 자격으로 평가에 참여한다. 그는 “개인의 연주 능력도 중요한 평가요소지만 전체 오케스트라 사운드에 자신의 소리가 어떻게 녹아드느냐도 중요한 척도다”라며 “내 옆의 단원들의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중요하다”고 팁을 알려줬다.

츠베덴에겐 자폐증을 가진 아들이 있다. 여섯 살 때까지 말을 할 줄 몰랐다. 부부는 아들에게 항상 동요를 불러줬는데, 어느 날 아내가 우연히 가사 하나를 빼고 부르자 아들이 흥분했다. 그때 그는 아이가 노래 내용을 이해하고 있다고 직감했다. 그래서 그 다음에 일부러 가사를 빼고 불렀더니 아들이 다시 흥분해서는 그 가사를 자기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을 보았다.

서울시향 차기 음악감독인 얍 판 츠베덴이 첫 기자 간담회서 앞으로의 플랜을 설명하고 있다. 왼쪽은 손은경 서울시향 대표. ⓒ서울시향 제공


“그렇게 반복해서 노래를 부르다 멈추고 다음 가사를 아들에게 말해보라고 격려했어요. 그랬더니 6개월 만에 아들 입에서 가사가 튀어 나왔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말문이 터진 순간이었죠. 그런 방식으로 아이의 어휘는 계속 늘어났고, 나중에는 말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츠베덴은 음악의 힘에 다시 한번 더 감동했다. 그 후 자폐아를 돕는 ‘파파게노 재단’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오는 4월에는 서울에서 장애 가족을 위한 시민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이 재단은 음악 연주는 물론 스포츠 시절도 갖추고 있다. 한국 축구의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절친' 거스 히딩크도 재단을 돕고 있다.

“서울시향과 처음 만난 지금은 땅에 씨앗을 심는 시간이며, 땅에서 꽃이 피어났을 때도 바로 뽑으면 안 되고 충분히 자라도록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해요. 5년은 서울시향의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이 천국 자체보다 더 아름답다’는 말이 있습니다. 서울시향과 함께 하는 여정이 무척 기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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