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영 연출 “관객 밀착위해 오케스트라 아예 무대 뒤 배치”...소월아트홀의 오페라 새 시험

17·18일 ‘나비부인’ 공연 통해 소극장 흥행 솔루션 모색
성동문화재단 윤광식 대표와 ‘다양한 장르 소개’ 의기투합
​​​​​​​“대중의 오페라 사랑·관심 이끌어내 후배에 전달해줄 것”

민은기 기자 승인 2024.05.17 13:49 | 최종 수정 2024.05.17 15:19 의견 0
김숙영 연출은 소월아트홀에서 공연하는 오페라 ‘나비부인’을 통해 소극장 오페라 흥행 솔루션을 모색하겠고 밝혔다. ⓒ성동문화재단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소극장이라고 깔보면 안됩니다. 결코 단순한 공연이 아니에요. 성악가들의 숨소리와 땀방울까지 바로 앞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생생하죠. 관객과 가까울수록 무대에 서는 가수들은 가창은 물론 내적·외적 연기까지 사실적이면서도 섬세하게 무장돼 있어야 합니다. 대형극장에서 관객과의 거리는 20m~100m까지라고 한다면, 소극장은 1m~ 40m까지입니다. 이 얼마나 매력적인 공간입니까.”

김숙영은 오페라 연출의 베테랑이다. 한국에서 딱 10년을 채웠고, 올해 다시 1년이 시작됐다. 2019년 노블아트오페라단 ‘나비부인’으로 제12회 대한민국 오페라 대상을 수상했고, 지난해에는 라벨라오페라단 ‘로베르토 데브뢰’와 솔오페라단 ‘라 보엠’ 등 굵직한 작품을 맡았다. 누구나 믿고 찾는 연출자다.

그는 17일과 18일 서울 성동구 소월아트홀에서 자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을 무대에 올린다. 일본 나가사키 항을 배경으로 일본인 게이샤 초초상과 미군 장교 핑커톤의 비극적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성동문화재단이 주최하고 뉴월드오페라단이 주관한다.

성동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소월아트홀은 520석 규모의 작은 공연장이다. 빅무대를 누빈 그동안의 커리어와 비교하면 성에 차지 않는 사이즈지만, 16일 전화통화에서 소극장 오페라의 찐매력을 설명하며 들뜬 마음을 드러냈다. 소풍 가기 전날, 설레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닮았다.

김 연출은 스스로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한국에서의 연출 데뷔가 대극장 무대였다. 드문 케이스다. 대극장은 부담이 크지만 덜 고단한 것도 사실이다. 각 분야의 전문인력과 많은 크루들의 어시스트를 받아 오히려 몸이 덜 힘들다. 반면 소극장은 무대 구상부터 의상, 소품 등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연출자의 손이 닿아야 한다. 사실상 ‘시어머니 역할’이다.

그동안 큰 공연장을 누볐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항상 소극장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똬리를 틀었다. 소극장이 전해주는 또 다른 매력과 잠재력에 흥미를 느꼈다. 일종의 ‘무작정 동경’이다. 하지만 건방진 생각이었다.

“기회가 찾아와서 한참 소극장 연출을 망설이고 있는데, 영화감독 선배님이 ‘단순히 소극장을 대극장을 위한 연습단계나 경험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무대에서의 소극장은 독립영화의 절대적 힘과 같은 존재다. 도리어 연출가로 굳건히 다져졌을 때 소극장 무대를 만들어 봐라’라고 조언을 해주었어요. 망치로 한 대 맞았죠. 절대적으로 와 닿는 말씀이었습니다.”

소월아트홀은 오페라 ‘나비부인’을 통해 소극장 오페라 흥행 솔루션을 모색하겠고 밝혔다. ⓒ성동문화재단 제공


김 연출은 경영적으로 힘든 상황에 놓인 단체들에게 소극장 오페라는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소극장 오페라일수록 엄선된 인력과 가수들이 무대를 채워야 한다”며 “접근성 좋고 티켓값 저렴한 것을 앞세워 기대 이상의 재미와 메시지, 소통과 감동을 선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극장을 찾는 관객들은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위해, 다시 말해 대리만족과 해방감을 위해 공연장을 찾는다”며 “이런 역할에 가장 안성맞춤이 소극장이다”고 덧붙였다.

그는 미국의 뮤지컬 산업에서 ‘오페라 필승전략’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1940년대 황금기를 지나면서 모든 프로덕션이 대형화에만 집중했다. 엄청난 물량을 쏟아 부었다. 화려함에만 신경 쓰다 보니 비용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경영 위기가 찾아왔다. 이때 극장 자체는 물론 제작자들 사이에서 돌파구로 찾은 것이 소극장 뮤지컬이다.

“무대 단순화, 인력 축소, 시간 절약, 경비 절감 등으로 티켓가격을 내릴 수 있었어요. 소극장의 특성상 관객과의 가까운 거리는 친근한 소통으로 이어지며 가수들의 연기 스타일에 큰 변화가 나타났죠. 이런 전환은 배우들을 더욱 진지하고 수준 높게 발전시켜 뮤지컬 황금기 이상의 인기를 끌기 시작하며 지금의 브로드웨이를 탄생시켰습니다. 제게 소극장의 의미는 진지하고 섬세한 드라마의 시작이며 오페라의 또 다른 인큐베이팅 시스템입니다. 뉴욕의 뮤지컬이 그랬듯이 소극장 오페라가 대극장 오페라의 붐을 다시 한 번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혼자서 이런 플랜을 구체화하는 것은 외롭다. 든든한 우군이 필요하다.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났다. 바로 성동문화재단 윤광식 대표다. 소월아트홀은 지난해에도 ‘토스카’를 공연했다. 윤 대표는 예산과 인력이 부족한 탓에 최고 수준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문화예술 장르를 지역 주민들에게 보여 주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나비부인’도 이러한 애정에서 출발했다. 이번 공연에는 초초상 이재은, 핑커톤 김태형, 샤플레스 최병혁, 스즈키 황혜재, 고로 이일준, 본조 한호철, 야마도리 장운용, 케이트 박주영 등이 출연한다. 예술총감독 정월태, 단장·음악감독 김지은이 맡는다.

“이미 1주일 전에 ‘나비부인’ 두 차례 공연이 모두 매진됐어요. 아직도 표를 구하는 관객이 많아요. 뜨거운 오페라 사랑을 실감했어요. 러닝타임을 140분에서 100분으로 축소했습니다. 군더더기를 들어내고 핵심만 담았죠. 장담하건데 어디를 잘라냈는지 전문가가 아닌 이상 알 수 없도록 미세하고 절묘하게 ‘컷’을 했습니다. 공연 참여 인원은 줄이지 않았습니다. 출연진뿐만 아니라 무용(신혜령), 아역(허예온), 합창단(위너오페라합창단), 오케스트라(유니버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까지 완벽하게 세팅했습니다. 관객과의 거리축소를 위해 오케스트라는 아예 무대 뒤에 위치합니다. 아마 한국 최초의 시도가 아닐까요.”

김 연출은 ‘오페라단 막내의 일’을 즐긴다. 늘 허드렛일꾼을 자처한다. “나이가 들어가고, 경험이 쌓이고, 식견이 조금 넓어졌다고 생각되니 도리어 무릎 꿇어 소품을 만들고, 무대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한 눈에 들어오는 아담한 공간에서 관객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더 생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본질도 꿰뚫었다. “후배들이나 제자들에게 물려줘야 할 것은 화려한 무대나 획기적인 연출 경험담 등이 아니다. 그들에게 준비해줘야 할 것은 대중들의 오페라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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